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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May 11. 2023

“함 해보입시더.”

<퍼펙트게임>


 나는 야구에 대해 잘 모른다. 처음 야구 경기를 관람한 때는 아마도 2019년. 나와 함께 사는 삼월의 손에 이끌려서였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롯데 자이언츠의 열렬한 팬이라고 했다. 본인 입으로 팬까지는 아니라고 하는데, 롯데의 성적이 부진할 때는 누구보다 성을 내고 롯데가 2023년 KBO에서 연승 행진을 이어가는(갔던) 요 근래 또 열심히 롯데를 응원하는 걸 보면 팬이 확실하다. 나는 특별히 응원하는 야구팀이 없다. 어릴 적 아빠가 티브이에서 야구 경기를 보았던 것도 같은데 나란히 앉아 본 기억은 없다. 야구는 내게 먼 스포츠였고 그다지 관심도 없었다. 다만 현재 롯데의 지역인 부산에 거주를 하고 있는지라 롯데 자이언츠의 유능한 투수와 타자가 누구인지 정도는 얼추 알게 되었다. 연고지와 지역 야구팀의 상관관계 역시 이해를 잘 못 했다. 도대체 그들은 왜 우리 팀이 못 한다고 욕을 그렇게 하면서 놓지를 못 하는가.


 “실력 좋은 팀을 응원하면 되잖아?”

 “니는 한국하고 일본 경기할 때 일본이 잘한다고 일본 응원하나.”


 … 경남 지역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롯데의 피가 흐르나 보다.



*퍼펙트게임: 야구에서 한 명의 투수가 선발 등판해 단 한 명의 타자도 진루시키지 않고 끝낸 경기를 일컫는 야구 용어.


지난 주말 2011년 개봉 영화 ‘퍼펙트게임’을 봤다. 조승우와 양동근이 각각 롯데의 최동원 선수 해태(기아)의 선동열 선수를 연기한 작품으로, 보게 된 결정적이고 중대한 계기는 없다. 단지 최동원이 어떤 사람이기에 전설적인 선수로 기억되고 있느냐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스토리 상 극적인 효과를 위해 어느 정도 과장된 부분도 있겠으나 스포츠라는 장르가 주는 꿈과 열정이 잘 나타난 영화였다. 특히 지금이라면 범접할 수 없는 제작비가 들어갈 만큼 유명한 배우들이 다수 등장한다. 조승우, 양동근, 조진웅, 마동석 외에 지나가는 얼굴로 박서준, 오정세까지 볼 수 있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격동의 1980년대.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당시 정부가 정치로부터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3S 정책을 내놓았고 더불어 지역 갈등을 조장을 목적으로 성립된 해태 타이거즈 선동열과 롯데 자이언츠 최동원의 대결을 그렸다. 작품 내에서 최동원과 선동열의 성격 차이와 관계성을 명확히 보여주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몇 주 전 조승우 주연의 신성한, 이혼을 본 터라 조승우에게 유난히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하늘색 유니폼에 최동원 선수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독특한 금색 뿔테 안경. 그 사이 평소에도 선이 수려하다고 생각했던 높다란 코를 보다 보면 ‘잘생겼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최동원 선수의 능력과 인품, 자부심과 선수로써의 욕심과 긍지를 보여 주면서 한편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모를 고통을 감내하는 이면을 처절할 정도로 담아 나는 더욱더 최동원이 어떤 사람이었는가 호기심이 생겼다. 뿐만 아니라 당시 선수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열정과 끈기로 운동을 했는지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었는데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캐릭터가 마동석이 맡은 ‘박만수’라는 인물이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팀의 포수지만 늘 벤치 신세였던 그가 중요한 순간 타자로 나가 홈런을 치며 존재감을 어필한다. 현재 선수들의 노력을 얕보려는 건 아니지만, 그때보다 시스템이 발전하고 인식 역시 변화된 것은 사실일 터. 과거의 그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를 했었는가 잠시나마 헤아려 본다. 결국 정부의 목표는 실패했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들 사이의 분란을 부추기려 했던 그들의 의도와 달리 스포츠로 지역과 이념을 뛰어넘어 하나가 되는 시민들의 모습이 뭉클했던 영화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최동원 선수에 대한 이야기들을 찾아보았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 1982년 서울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선수. 1983년 최약체 팀인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해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따내 롯데를 우승 팀으로 만들었다. 야구에 대해 잘 몰라 설명을 들어보니 보통 선발 투수들은 1회~5, 6회 정도까지 공을 던진다고 한다. 보기에 공 하나 던지는 것 같지만 전신의 힘과 근육을 모두 끌어 모아 던지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고. 그런데 최동원은 1984년 한국 시리즈에서 51경기에 출전해 14차례 완투를 했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그런 그가 1988년 선수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를 결성하려 했으나 7개 구단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무산되었고, 이후 구단의 눈밖에 나 삼성 라이온즈의 김시진과 트레이드되었다고 한다. 요즘이야 트레이드가 흔한 일이지만 그 당시 롯데의 연고지였던 부산에서 태어나 롯데에서 활동을 하던 최동원을 삼성으로 보낸다는 것은 곧 ‘버린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결국 그는 팀을 위해 열렬히 헌신을 했음에도 성대한 은퇴식 없이 32살의 나이에 쓸쓸히 마운드를 떠났다. 은퇴 후에도 롯데에서 코치나 감독을 희망했으나 끝끝내 받아주지 않았다고 하니, 롯데 왜 그랬냐. 지금 사직 구장 앞에는 최동원 동상이 있고, 그의 번호는 영구결번으로 남았다. 그러나 이는 그가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난 후의 변화들이다. ...롯데 왜 그랬냐.


그러고 보면 올림픽이나 월드컵 기간이 되면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점철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모여 화합을 한다. 스포츠의 순기능이다. 잊고 있던 국가, 우리. 그리고 뜨거움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게 만든다는 것이다. 요즘 스포츠 선수들의 구설수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오로지 뛰어난 실력과 높은 연봉이 그들을 완성하는 게 아니다. 자부심이 오만으로 둔갑해서는 안 될 일이다. 당신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따르는 팬들이 있어야 함을 알고 항상 기억해야 한다.


여담이지만 엊그제 오랜만에 사직에 가서 경기를 관람하며 맥주를 마셨다. 술이 술술 들어가더라.


최동원 연기한 조승우 멋있으니까 네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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