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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Jan 29. 2024

이탈리아 여행 1일차

2023.12.27 / 론다니니의 피에타


지난 연말 회사의 배려로 삼월과 보름이 넘는 기간 동안 이탈리아에 다녀왔다. 여행 기간 2023년 12월 26일 ~ 2024년 1월 11일. 시간을 지나 다시 예전처럼 현실을 살고 있노라면 이탈리아의 기억이 꿈처럼 느껴진다. 아득하고도 다시 꿀 수 없는 꿈. 속상한 마음을 달래며 꿈을 다시 복기해본다.




이탈리아로 가는 12시간의 비행 동안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했다. 다음에는 반드시 돈을 많이 벌어 비즈니스 석에 앉아 한국을 떠나리라. 좁은 좌석에 몸을 구기며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 항공사에서 꼬박꼬박 내어주는 기내식은 맛있었다. 선택지가 있었고, 와인이나 라면도 제공해 주었다. 영화도 볼 수 있었다. 영화를 세 편, 가져간 책을 반쯤 읽고 불편한 자세로 꾸벅꾸벅 졸다 보니 어느덧 로마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유럽은 내게 생소한 곳이었다. 가기 전부터 걱정이 많았다. 소매치기, 인종차별이 가장 대표적이었고 그 뒤로는 유럽의 겨울 날씨, 통하지 않는 언어 등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로마 테르미니 역 근처 숙소에 짐을 두고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웬 남자들에게 '니하오'라는 말을 들었다. 국적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대뜸 어느 국가를 단정 지어 인사를 건네다니. 이렇게 무례할 수가. 무시가 답이라고 여긴 나와 달리 여행의 동반자였던 삼월은 매서운 눈으로 'NO.'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는 그녀의 담대함이 믿음직스럽기도 했고, 행여 해를 당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으나 사실상 의지를 많이 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우리는 기차를 타고 밀라노로 향했다.  기차 내에서도 도난 사고가 흔히 발생한다기에 우리는 준비해 간 자물쇠로 우리의 캐리어를 고정해 두고 나서야 안심하고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약 2시간의 이동. 그동안 기차에서 흘러나오는 이국의 언어와 창밖으로 지나가는 이국의 풍경. 내가 타국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하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어떠한 해방감을 만끽할 정신도 없이 숙소까지 무사히 가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리 체크인을 흔쾌히 허락해 준 밀라노 숙소의 호스트는 눈동자가 푸른 백발의 노인이었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환영했다. 그러나 그녀는 영어를 하지 못했고, 우리는 이탈리아 어를 알아듣지 못해 결국 번역기까지 동원을 하게 되었다. 도중에 그녀의 딸이 도착한 덕분에 체크인 과정을 끝마칠 수 있었다. 숙소는 아늑하고 푸근했다. 오래 머물지 않을 예정이라는 사실이 아쉬울 정도로.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우리는 본격적인 첫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첫 행선지는 스포르체스코 성이었다. 도시에서 새로운 도시로 이동하는 날에는 시간을 준수해야 하는 티켓이라던가 가이드를 신청해 두지 않아 비교적 여유롭게 도시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산책을 할 수 있었다.

사랑스러웠던 숙소


이곳에서 우리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유작인 미완성 피에타를 볼 계획이었다. 대부분의 유명한 관광지는 대성당을 중심으로 밀집되어 있어 대성당 앞까지만 무사히 도착하기만 하면 도보로 이동이 가능한 곳이었다. 그전에 '패션의 도시' 밀라노 답게 두오모 광장으로 이어지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 역시 구경을 안 하고 지나갈 수 없었다. 거대 아케이드형 쇼핑몰인 그곳은 이탈리아의 통일에 공을 세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밀라노에서 시작된 프라다 본점을 비롯해 샤넬, 구찌 등 한국의 백화점에서 보던 명품 매장들이 줄지어 있는 그곳을 지나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했다. 천장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유리 돔과 아치형 입구, 모자이크 바닥. 화려함의 극치에 압도될 틈도 없이 인파에 깔리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한다는 점이 아쉽긴 했지만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는 웅장함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


점심을 먹기 위해 '스폰티니'라는 피자집을 찾았다. 두툼한 도우 위 넘치듯 흐르는 치즈. 다양한 종류의 토핑. 그곳은 서서 먹는 테이블로 이루어져 있어 회전이 빠른 편이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과 긴 테이블을 함께 써야 했기에 약간의 머쓱함을 무릅쓰고 식사를 해야 했다. 피자 한 조각이 워낙 커서 둘이 한 조각을 주문해 맥주와 먹었다. 나폴리식의 얇은 도우는 아니었지만 빵의 겉면이 바삭하고 속은 폭신했다. 우리 둘 다 사람이 많은 장소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그런지 갤러리아를 지나고 피자를 먹는 동안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듯했다. 그래도 갈 길은 가야지.



그곳에서 20분 정도를 걸어 도착한 스포르체스코 성.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도나토브라만테가 제작에 참여한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로 셈피오네 공원과 이어져 있어 꼭 전시를 보러 오지 않아도 주변을 걷기 위해, 바람을 쐬기 위해 들를 이유는 충분했다. 원형 분수, 필라레테 탑을 지나 론다니니 피에타 박물관에 전시된 미켈란젤로의 유작을 보러 곧장 향했다. 예상외로 티켓을 사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고 방문객들도 얼마 없었다. 우리는 통합 입장권을 구매해 성 내 다른 박물관도 관람이 가능했다.

원형 분수와 필라레테 탑(시계탑)


론다니니 피에타 박물관 각각의 작은 방에 장례 제단 조각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가장 넓은 중앙에는 오로지 그 작품만이 관람객을 반기고 있었다. 론다니니 궁전에서 발견이 되었다는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사망 6일 전까지 조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1564년 2월 18일 만 89세의 나이로 로마에서 사망했다. 우리는 그 공간에 발을 들이자마자 바깥의 소음이 뚝 끊긴 고요와 완전해지지 못하고 멈춰 선, '돌이자 돌이 아닌 것'을 볼 수 있었다. 작품 주변으로 걸음의 속도를 늦추며 찬찬히 작품을 보는 동안, 나는 그가 하나의 큰 대리석에서 예수와 마리아를 조각하는 것이 아니라 캐내는 즉, 꺼내는 과정을 목격한 것만 같았다.


우리는 보통 완성된 작품을 본다. 작가가 완성을 확정하고 이름을 지었을 작품을. 그러나 그날 우리는 미완성의 작품을 보았다. 미켈란젤로가 쇠약해진 몸과 정신으로 힘겹고도 강인하게 창조하다 결국은 멈추고야 말았을 시간을 본 셈이다. 그가 그토록 경외하던 신의 곁으로 가기 전까지 말뚝과 끌로 깎아 내려갔던 거친 면면은 일정 방향으로 깎여나가 있었다. 부드럽고 매끈하게 연마된 예수의 하반신, 그 외 형체를 갖추다 만 예수의 얼굴과 상반신, 마리아는 다소 둔탁했다. 이후 알게 된 사실은 그가 왼손잡이었다는 것인데, 이 정보를 알고 보았다면 조금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아쉬운 마음이 든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론다니니의 피에타'



박물관을 나오면 당시 공작들이 거주지로 사용했던 건물과 뜰을 볼 수 있었다. 마치 도장 깨기를 하듯 고대 미술, 목제 조각, 악기 박물관을 차례로 관람했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영어 설명도 적혀 있지 않아 정보를 알고 보는 대신 작품 자체를 눈으로 훑는 방식으로 보아야 했는데, 많은 작품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대부분은 성경 속 이야기였고 그중에서도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표현한 그림들을 수백 점은 본 듯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이후 피렌체에서 우피치 미술관 가이드 투어를 하면서 격렬히 깨닫게 되었다. 알고 봤다면 쉽게 지나치지 않았을 작품들도 있었을 텐데, 못내 아깝다. 가벼운 마음으로 입장했던 스포르체스코 성에서 우리는 거의 세 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는데, 초반의 의욕을 앞세워 걷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탓에 마지막에는 지친 몸을 이끌고 나와야 했다.



이탈리아에서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적자면 책 한 권을 써도 모자랄 정도라 이 방대한 생각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고, 기록하고 기억할 것이 충만하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한다. 이후 이탈리아에 대한 그리움을 상기하며 틈틈이 적어 갈 예정.



아. 이날 저녁은 숙소 1층에 있던 아시아마켓에서 컵라면을 사서 먹었다. 역시 라면은 한국이 최고.

현지 까르푸에서 산 가지구이는 개인적으로 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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