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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Oct 19. 2023

나락도 락이란다

2023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 후기

9월, 10월이 되면 여기저기서 ‘락페’가 개최된다. 끈덕진 더위가 가시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이기에 그럴 테다. 이맘때면 유난히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게 된다. 무더운 여름 견디다 보니 잊고 살던 하늘이 유독 파랗게 느껴지는 때다. 올해도 어떻게, 잘 살았구나. 안도인지 한탄인지 모를 것들을 중얼거리는 때이기도 하다. 짧은 가을. 눈 깜짝할 새 사라져 버릴 계절을 즐기기 위해 밖으로 나돌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하는 시기 따라 작년에 이어 올해도 방문한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에서 한 달치 체력을 모두 소진하고 왔다.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은 넓은 삼락 공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돗자리는 필수라고 할 수 있다. 행사장에 입장하면 피크닉 존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그곳에는 돗자리가 장판처럼 깔려 있다. 사람들은 돗자리 위에 짐을 두고 다닌다. 빈 돗자리에 주인 없는 가방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어도 누구 하나 신경을 쓰지 않고 놀기 바쁘다. 이런 락페의 시스템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던 까닭에는 대한민국의 건전한 시민 의식이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 행사에서는 그렇게 놓인 가방을 훔쳐간 이들이 있었다고 하니 안전한 행사의 시대도 가는가 싶어 내심 서글프다.- 휴식이라 칭했지만 밤 늦게 귀가해 곧장 쓰러져 자느라 정신이 없었다. 실상 돗자리에 누워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낮에는 평화롭게 낮잠을 자고 메인 스테이지에 서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려는 사람들도 있으나 나는 중간중간 어디선가 언뜻 들어보았을 이름의 주인공들을 보기 위해 넓은 땅을 누비고 다녔다. 특히 올해는 무대와 무대 사이의 거리가 멀어 많이 걸었다. 아마 만보기가 있었다면 만을 초과한 숫자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년 가을, 삼월에게 락페에 가자고 했을 때 그녀의 반응이 어땠던가 회상해본다. 음악 페스티벌은 나의 20대 초반 망아지처럼 뛰어다녔던 기억을 토대로 깨나 아름다운 시간으로 재단이 되어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었다. 단풍이 물들기 전, 푸른 계절의 모호하고도 시원한 공기와 숲처럼 뻗어 나온 음악을 말이다. 허나 나의 낭만이 그녀에겐 없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을 만큼 그녀의 표정은 시큰둥했다. 가는 날마저 ‘너 때문에 간다.’ 하는 태도를 고수했던 삼월이 새소년의 무대를 보며 함박웃음을 지은 채 긴 팔을 휘적거리던 영상이 내 휴대폰에 아직 남아 있다. 그녀는 한동안 새소년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형언이 어려우나 그날의 모든 요소가 청춘과 낭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타오르는 노을이 가라앉는 하늘과 음악,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추는 사람들. 그곳은 나이와 상관없이 열려 있는 세계다. 누가 몸을 어떻게 흔들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왜 이곳에 왔느냐고 묻지 않는다. 억압하고 절제해야 했던 이성을 한 가닥 수치 따위 모르는 체하며 내던질 수 있는 곳. 우리는 락이란 것을 잘 알지 못한다. 단지 삶의 일부를 즐기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가는 것이다. 올해도 즐거웠다. 


우리가 참여하던 날 새소년이 방문하지 않아 썩 내키지 않는다며 부루퉁하던 삼월은 이날 터치드의 연주에 펄쩍펄쩍 점프를 하며 비명을 질렀다. 엄지와 검지, 새끼 손가락을 어색하게나마 펼쳐 하늘 높이 치켜들고 심장박동처럼 울리는 베이스의 선율과 내지르는 보컬의 목소리를 따라 홀린 듯이 움직였다. 어느덧 숨이 차올라 목구멍 안에서 들숨과 날숨이 할딱거려도 개의치 않고 말이다. 축제는 밤까지 이어졌다. 해가 지고 찬 바람에 몸이 움츠러들 때에는 더더욱 멈출 수 없다.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음악에 의존해 열심히 뛰어야 했다. 대책 없이 실행하는 무모함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이날 유독 기억에 남았던 무대는 Phoenix 라는 밴드였다.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배경과 어우러진 음악은 격렬하거나 거칠지 않아 누구나 즐길 수 있었다. 노래 중간중간 그들이 숨겨 놓은 트릭을 발견하느라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드라이브를 할 때 찾아 듣게 될 노래가 늘었다. 노래를 통해 그날의 분위기가 형상화되는 기쁨을 만끽하며, 내년 10월까지 버틸 작정이다. 나락으로 떨어져도 뭐 어떤가. 뛰다 보면 빠져 나올 수 있겠지! 부락. 내년에도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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