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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5월의 어느 하루

Written by 수진


“번데기 탕, 바퀴벌레 튀김, 메뚜기 튀김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오늘도 일을 마친 후 저녁을 먹으러 야시장에 왔다. 찌는 듯한 더위에 차마 불 앞에서 요리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아 저녁은 주로 야시장에서 먹는다. 10년 전만 해도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날이 많았는데 40도까지 올라가는 극한의 날씨에는 불 앞에 서 있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야시장은 저녁을 먹으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야시장은 대만에서만 즐길 수 있는 문화인 줄 알았는데 날이 더워지자 사람들은 낮에는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고 선선한 밤이 되어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밤에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밥을 사 먹는 사람이 늘어나자 한국에서도 자연스레 동네마다 야시장이 서기 시작했고 이제는 대만의 야시장 못지않게 붐비는 장소가 되었다. 


찌는 듯한 날씨와 함께 무기력한 나날이 많아지고 열정과 패기는 언제 적 일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희미한 듯 사라졌다. 특별히 나쁜 일도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좋은 일도 없는 하루가 지속되는 요즘. 나는 이유모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날은 허한 속을 단단히 채워줄 음식을 먹어줘야 한다며 단골 곤충집을 찾았다. 여기는 문을 연 지 5년이 된 꽤 이름난 곤충집이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땐 사람들은 징그럽다며 근처에 발도 안 디뎠는데 지금은 줄을 서야만 먹을 수 있는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바쁘게 다니는 사장님을 보며 ‘나도 회사 때려치우고 여기서 장사를 해볼까?’ 생각을 하다 사장님은 또 사장님 나름의 고충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생각을 거뒀다.


눈앞에 있는 번데기탕 국물을 떠서 먹었다. 청양고추가 들어가 칼칼한 것이 오늘의 스트레스를 싹 날려주는 듯하다. 곧이어 바퀴벌레 튀김을 집었다. 바퀴벌레 튀김을 입에 넣으며 생각했다. ‘내가 너를 먹게 될 줄이야.’ 10년 전만 해도 내가 바퀴벌레와 각종 애벌레들을 먹게 될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곤충이 미래 먹거리가 될 것이라 떠드는 각종 논문이나 영상을 보면서도 나는 차라리 굶어 죽으면 죽었지 곤충은 절대 먹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내 생각을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고온과 이상저온이 반복되고 남극의 빙하가 녹으며 거대한 빙하가 가두고 있던 전염병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코로나 이후로도 여러 차례 전염병이 돌았다. 급작스러운 기후변화와 전염병에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받은 것은 동물이었다. 대부분의 동물은 그 개체 수가 10분의 1로 줄었고 인간들의 단백질 공급을 책임지던 소, 돼지, 닭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후위기의 시대, 극한의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개체를 유지한 것은 바퀴벌레였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의 가격은 줄어든 개체의 수만큼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값비싼 육고기와 기후변화에 늦게나마 대응하기 위해 온실가스를 줄이려는 수요가 맞물리면서 대체식품으로 곤충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


죽어도 곤충은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나는 얇은 지갑에 의해 현실과 타협했고 눈 딱 감고 한 번만 먹어보자 시도했던 것을 시작으로 곤충을 먹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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