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와 불평등에 맞선 그린뉴딜" (김병권 저)
Written by 리나
장기적인 경제 침체 위에 코로나 19라는 크리티컬 일격을 맞은 한국 정부는 작년에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하며 이것이 한국이 나가야 할 방향이며 돌파구임을 천명했다. 나도 아주 큰 기대는 아니지만 살짝의 관심을 갖고 살펴봤는데, ‘그린뉴딜’을 검색해 보면 ‘그린뉴딜 테마주,’ ‘그린뉴딜 정책 수혜 사업 안내’ 이런 것들이 검색 결과 앞 페이지들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 결국 그린뉴딜이든 블루뉴딜이든 돈 버는 일이 제일 우선인 게지... =_=
그나저나 대체 그린뉴딜이 정확히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고나 보자 싶어서, 제레미 러프킨의 ‘글로벌 그린뉴딜’ 완독을 위해 몇 차례 시도하였으나 결국 실패하였다... (ㅠㅠ) 그러다 우연히 이 책("기후위기와 불평등에 맞선 그린뉴딜")을 발견했는데, 그린뉴딜의 내용 및 글로벌 흐름과 동시에 한국의 현 위치를 같이 보여주는 책이었다. 무엇보다 책이 두껍지 않았음 (이 책을 고른 매우 중요한 이유)
거두절미하고 과연 ‘그린뉴딜’이란 무엇인가.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이해한 그린뉴딜의 핵심은 ‘탄소 기반의 산업 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을 대전제로 하여, 불평등을 고착화시킨 실패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재편하는 것’이다. 증기기관 발명과 화석연료 사용을 통한 1차 산업혁명 이후로 지금까지의 경제와 산업 성장은 화석연료 사용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이 뿌리가 흔들리면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모든 산업, 자산, 기득권, 관련 제도와 시스템도 같이 흔들린다. 이것은 단순히 산업의 변화와 같은 물질적인 변화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기득권과 고정관념이 무너지면서 사회 개혁을 할 수 있는 정신적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린뉴딜을 통해서, 지금까지 당연하지만 괴롭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시장경제에 뿌리를 둔 이 사회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행동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 그린뉴딜은 점진적이거나 단계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지금 인류가 처한 상황이 전시 상황과 결코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에 맞는 급진적이고 과감한 결정과 행동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속가능한 성장’과 같이 친환경적 정책 수단을 적절히 선택하여 배열하는 식이 아닌, 탄소 배출 목표와 기간을 아주 명확히 특정하고 밀고 나가는 식이다. 화석연료 사용 중단과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와 운영에 대한 목표도 정확히 설정한다. 공공투자를 대규모로 동원해서 짧은 시간 내에 에너지, 건축, 운송을 포함한 산업 구조 개편을 전격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없어지는 일자리와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투자자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새로운 일자리와 투자 기회가 생길 것이다.
또한 그린뉴딜은 책임이 비대칭적임을 분명히 한다. 전 지구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문제이지만 그것이 곧 전 세계 모두가 1/N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며, 전 세계 탄소 배출 50%에 해당하는 양을 배출하는 세계 인구 10%가 전적으로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적 변화의 실무적 주체는 누구인가? 혁신적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 건전한 시민 의식으로 무장한 개인들의 집합이나 시민 단체? 아니, 바로 국가이다. 그린뉴딜은 전례가 없는 새로운 대규모의 시도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실패 및 그로 인한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따라서 민간이 아닌 공공자본이 초기에 위험성 있는 자본집약적 투자를 일단 하고 국가가 핵심 기초 기술을 제공하는 것으로 기본 터를 닦으면 그제서야 민간은 계산기를 두들겨 보면서 그 분야로 들어와 비즈니스를 시작할 것이다. 미국, 독일, 중국과 덴마크에서 이미 이 방식으로 재생에너지 비즈니스를 크게 성장시켰으며, 이는 비단 재생에너지 부문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저자가 그린뉴딜 및 기후위기가 정치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주장하는 바와 맥락을 같이 한다.
한국은 어느 수준까지 와 있을까? 예상대로 지금까지 이렇다 할 성과도 없었고, 앞으로의 계획과 관련해서도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2019년 발표한 정책기획위원회의 <혁신적 포용 국가 미래비전 2045>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는데, 앞으로 20년 이상이 지난 2045년에 가서야 재생에너지 비율 45%를 목표로 하고 그 밖에 ‘미세먼지 해결 등 쾌적한 환경 조성’ 등을 한다는 두루뭉술한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10년 내 탄소 배출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IPCC 보고서가 2018년 송도에서의 IPCC 총회에서 채택된 판에, 2045년 목표로 미세먼지를 언급하고 있다니… (믈론 미세먼지도 중요한 의제이기는 하지만..)
그 외에 이 책에서는 ICT 산업이 잠재적인 탄소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점, 금융 업계가 보는 기후 위기에 대한 분석, 그린뉴딜을 위한 재정 조달 등 그린뉴딜과 관련한 여러 분야의 사안들을 언급한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기후위기와 불평등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전격적인 분석까지는 하고 있지 않다. 책 도입부에서 기후 위기는 사실은 환경 이슈가 아니며 불평등한 사회 경제 체제가 원인이며, 따라서 불평등이 고착된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치유해야 하는 문제라고 언급되어 있었기 때문에 숨겨져 있는 둘 간의 상관관계가 밝혀지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었다. 물론 이 2가지 문제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기존 경제 시스템의 결함에서 시작한 문제라는 것, 개선되지 않고 불안정과 위험도가 계속 쌓여가면 나중에는 감당 불가의 결과가 온다는 것, 많은 정책 결정자들이 해결하겠다는 약속은 했지만 잘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 맞는 이야기이지만 둘 간의 상관관계 까지는 잘 알 수가 없다.
잘 알려진 2018년 IPCC 보고서의 결론처럼 지구 기온의 1.5도 상승을 막기 위해서는 10년 내에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단순히 문자로만 ‘배출량 절반’이라고 읽었을 때에는 어느 정도로 막대한 수치인지 막연할 수 있지만, 한국 사회가 고통스럽게 겪어내었던 1998년 IMF 금융 위기 때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997년에 비해 약 14% 감소한 것에 불과했다고 한 설명을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1998년은 무려 -5.1%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해이다. 그런데 10년 내에 탄소 배출량을 50%로 줄여야 한다면 그동안 금융 위기에 버금가는 경제 성장 후퇴를 몇 번을 겪을 만큼의 변화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거대한 배출량 감소 과제 앞에서 저자는 그린뉴딜의 성공적 이행에 희망을 걸고 있다.
과연 세상은 어디까지 변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또 얼마나 변할 수 있을까? 기후위기와 불평등 문제가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심각해진 지금까지 세상은 방치하고만 있었다고 생각하면 사실 변화의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볼 수만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역사에서 봐 왔던 수많은 사례에서처럼 발등에 불 떨어졌다는 것을 자각하면 어떤 식으로든 인간은 상황을 개선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또 어떤 식으로든 인간이 적응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우리가 개선의 의지와 능력이 있는 인간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