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20살이 할 수 있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 해가 지나고 1월이 돌아오고 나니 요즘 술집 거리에는 앳된 얼굴을 한 아이들이 시끄럽게 붐빈다. 어쩌면 그런 적 없던 집 앞 편의점 사장님이 유독 이 시기에 나에게 의심의 눈초리로 민증을 요구해도, 늦은 새벽 창 밖의 갑작스러운 고성이 단잠을 방해하더라도 우리도 전부 이 시기를 지나왔기에 이 하찮은 불편함을 한 두 달쯤은 견뎌줄 수 있는 관용을 가지고 있다.
2019년의 1월. 드디어 나는 20살이 되었다.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을 것이라는 설렘을 안고 친구들과 졸업가운을 걸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그 인사가 마지막이었던 친구들 또한 있었지만 청춘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나이인 우리에게 혹시 모를 상황을 미리 섭섭해할 여유 따윈 없었다.
20살이 되자마자 내가 가장 처음 기대했던 것은 당연 술집이었다. 사실 돌아보면 어른들의 술문화가 아닌 그저 술집의 출입 그 자체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몇 달, 아니 며칠이 지나 당연시해진다. 1월 막바지가 되자 나는 성인이란 건 생각보다 시시하다는 것을 벌써 느끼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기숙사에 갇혀 정해진 일과만 반복하였는데, 사실 성인이 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점은 없구나'. 하지만 내 스무 살에는 한 가지 특별한 추억이 있다.
다른 친구들이 개강을 하고 대학 캠퍼스로 떠날 때쯤,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던 나는 집에 남아 고민에 빠졌다. 정말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이 뭘까. 소심하고 낯을 많이 가리던 나는 20살이라는 버프에 제대로 심취하여 빨리 내 청춘을 보상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 강했다.
고민 끝에 여러 사람을 많이 만나고 싶고 내 힘으로 돈도 벌어보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결심했다. 당장 알바구직 어플을 깔아서 그날 밤새 알바자리를 찾은 끝에 호프집에 홀서빙으로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게 되었다. 경력 하나 없는 20살이지만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아왔던 학창 시절과 면접이라면 학교에서 밥 먹듯이 지독하게 준비해왔기에 사실 그런 면접자리는 거만하게도 조금은 우스웠다. 당당하게(?) 합격한 뒤 처음으로 출근이란 것을 했다.
저녁 7시에 출근하여 마감인 새벽 5시까지 주 5일을 일했다. 3개월을 채 끝내지 않고 떠났지만 그 이상으로 추억이 많았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만나 생기는 크고 작은 인간관계, 갈등, 사회생활, 정말 짧은 누군가의 인생을 경험해 보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에게 의미 있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또 그 관계들 속에 호기심이 생기고 그 호기심이 설레고 재미있었다.
이제 갓 성인이 된 친구들이 다양한 경험을 원한다면 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은 아르바이트를 해보았으면 좋겠다. 물론 20살이라는 장점도 존재했다. 어린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경험했거나 처음부터 똑 부러지는 일머리 있는 친구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나처럼 어리바리하고 일을 못했던 아이들도 어느 정도 이해받는 것이 바로 20살이라는 나이 덕이다.
사실 나는 대학진학은 하지 않았지만 19살 때부터 취업을 확정 지었다. 취업을 하고 싶기에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것인지 대학 진학을 하고 싶지 않기에 취업을 한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결단력과 고집이 강했다. 중학교 2학년 때 교장선생님이셨던 친할아버지의 조언을 듣고 그날 부모님께 나는 대학 진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대신 마이스터고라는 특목고에 진학하여 남들보다 앞서가는 인생을 살겠다고 설득했다. 결국 마이스터고에 진학하고 우여곡절 끝에 운이 좋게도 부모님이 좋아하실 만한 기업에 합격하여 19살에 입사를 확정 지었다.
20살 5월, 회사 입사일이 다가오자 알바를 그만두었다. 처음부터 내 상황을 잘 아시던 사장님이었기에 흔히 있다던 그만둘 때의 갈등은 없었다.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기에 모두 나를 축하해주며 작별하였다.
입사일까지는 아직 3주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따분하게 집에서 쉬던 어느 날, 문득 유튜브로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의 브이로그를 보았다. 현재에도 여행 중에 있으며 꾸준히 영상을 업로드하는 중인 것이다. 왠지 모르게 그날은 하루종일 가슴이 뛰어서 그 유튜버의 전편을 다 보았다. 나도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나에게 해외여행은 고2 때 학교에서 떠났던 일본여행 2박이 전부였다. 이제 회사생활을 시작하면 평생 기회가 좀처럼 있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갑작스러운 조급함까지 들었다. 같이 떠날 친한 친구들을 찾았지만 아무도 없었고 결국 혼자라도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그날 당장 여행배낭을 주문하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로 모았던 돈은 전부 부모님께 드렸는데 다시 돌려달다 부탁했다. 해외로, 이왕이면 가장 멀리 가보고 싶었고 유럽배낭여행을 택했다. 부모님은 당연히 갓 성인이 된 20살짜리 애가 혼자 유럽일주라니 절대 반대하셨고 떠나기 전 날까지 날 설득하셨다. 하지만 결국 내 고집을 꺾지는 못하셨고 그렇게 14박 15일의 유럽일주 계획을 세워 다짜고짜 런던으로 들어갔다.
세계여행은 확실히 그동안의 경험과 달랐다. (여행일기는 천천히 자세하게 기록하고 싶다) 특히 낯설고 힘든 환경 속에서의 나는 더 단단해질 수 있다는 것을 가장 크게 느꼈다. 여행을 하면서도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수많은 외국인들, 또 한국 교환학생들, 20년 인생 살며 처음 듣는 나라에서 온 동갑내기 친구, 인종차별주의자, 사기꾼 등 별의별 사람들을 만나며 순간순간에 나 자신이 느슨해지고 단단해졌다.
그렇게 밤낮을 바꾸어 하루 10시간 맥주를 나르며 뼈가 빠지게 고생하여 벌었던 돈을 전부 써버렸다. 사실 고생해서 모았던 나의 잔고와 그 돈을 버느라 힘들었던 상황들이 여행 중간중간 눈에 아른거리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20살에 떠났던 이 해외여행이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능력이 완성되기 전인 어린 내가 '여행'이라는 가치를 깨달았던 계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능력에 맞지 않게 시도 때도 없이 떠나는 여행가들을 보며 속으로 낭만주의자들이라 비판했다. 능력과 본인이 원하는 성취를 이루지도 못한 상태에서의 여행이라는 즐거움은 그저 사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행의 중반부에서야 사실 그건 나의 시기질투였으며 나도 모르게 부정적으로 합리화시켜버린 그 사람들의 용기에 대한 동경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여행을 한다는 것은 뛰어난 가치를 지닌 행동이 아니었다. 그저 여유가 필요한 어느 순간에 누군가는 침대에 편안히 누워 넷플릭스를 보고, 누군가는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하며 얼큰하게 취할 때, 누군가는 비행기 표를 끊고 기꺼이 새벽에 일어나 배낭을 메고 공항에 나가는 정도인 것이다. 딱 그 정도인 것이다. 이후 시선을 바꾸니 풍경은 더욱 또렷했다.
여행을 마치며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린 시절부터 여행을 떠날수록, 즉 능력 없는 것이 당연한 자신이, 분수에 맞지 않게 과감한 소비와 투자를 할수록 우리가 흔히 비판하며 두려워하는 낭만주의자가 될 확률이 줄어들 것 같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청춘이다. 20대 중반에 들어섰지만 아직 어린 나는 여전히 기회만 된다면 자주 멀리 여행을 떠난다. 조금의 과소비를 해서 그저 휴양이 목적인 여행지가 아닌 적당히 고생할 곳, 적당히 불편할 곳을 찾아 떠나고 경험하길 원한다. 20살에 떠났던 여행에서 느낀 나의 경험으로 나는 오히려 낭만에 빠져 살지 않을 힘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