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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상준 Feb 27. 2023

날 것 그대로를 기록하는 방식

떠나면서도 남는 것

고프로를 샀다.


나는 잠들기 직전 휴대폰 속 내 갤러리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내 추억들을 되돌아보는 것이 온전히 행복하고 어쩔 때는 너무 오랜 시간 빠져버려서 다음날 하루를 망쳐버리기도 한다.


늦은 저녁이었던 그날도 어김없이 친구들에게 본인들은 굳이 찾아보지 않고 있을 법한 과거 사진들을 전송해 주며 킥킥대고 있었다. 물론 답례로 나의 엽기적인 사진들을 가득 되돌려 받았지만 그러다 문득 내 갤러리에는 내 스스로가 추억할만한 것들이 나의 잘 포장된 웃고 있는 사진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여행을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예쁜 풍경과 장면이라고 생각해서 카메라를 들었던 순간에는 내 스스로 더욱 예쁘게 담고 담기려고 노력했다. 남들에게도 예쁘게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컸으니까. 더 정확한 다른 이유를 들자면 내가 이 순간 여기에 있는 예쁜 사람이라는 것을 뽐내고도 싶었으니까. 어느 순간 보여짐을 의식하여 기록하기 꺼려하는 내가 되고 있던 것이다.


사람들의 SNS 게시물을 보면 정말 예쁜 사진들이 많지만 유독 보여지는 것에 치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멋있게 차려입고 미소 지은 채 멈춰있는 그 사람들의 하이라이트 신들을 보며 나는 제멋대로 상상한다.


"한 스무 장은 찍고 고르고 골랐겠지?"

"여기서 사진 찍으려고 줄을 거진 두세 시간은 섰겠지?"

“돈을 정말 얼마나 쓴 걸까?”


부질없는 비하인드가 궁금했지만 그 노력에 실례가 될까 기꺼이 빨간 하트를 보내며 스크롤을 내리곤 한다.


물론 그것이 SNS의 목적이기에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리고 추억한다는 목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니까. 하지만 나는 가장 예쁜 하이라이트만을 모으기에는 '추억'이라는 표현이 어디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문득 날 것 그대로를 담을 수 있는 동영상을 많이 찍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다음 달 휴가 때 떠날 터키, 이스라엘 여행을 계획 중이었는데 이번 여행은 최대한 입체적인 모습을 담고 남겨두고 싶었다.


다음 날 퇴근 후 바로 용산전자상가에 갔다.

뭐든 간에 쉽고 편리하게 내 모습을 생생하게 담을 만한 카메라를 사고 싶었다. 그렇게 거기서 조언을 들으며 목적에 맞는 카메라를 찾았고 고프로 11을 구입하였다. 가격은 꽤나 비쌌지만 여행을 떠날 때 설레하며 비행기 표를 끊는 것처럼 아깝지는 않았다.

직접 사용해 보니 동영상을 찍는 목적에서는 휴대폰보다 꽤나 편리했고 오래 여행하는 동안에도 정말 알차게 사용했다. 그렇게 휴가 동안 가득 채웠던 영상들을 옮기고 틀어보니 그동안에 사진으로는 느낄 수 없었던 순간들의 감정이 전해졌다.


예를 들자면 비행기를 타기 직전 게이트 앞의 순간에서, 사진으로는 떠나기 전에 활짝 웃고 있는 나를 보며 설레는 감정만이 느껴지지는 것이 다였다. 하지만 그 사이 과정인 여러 번의 짐검사와 출국심사, 공항의 소음, 수백 미터를 걸어 도착한 게이트 등 설렘만을 느꼈던 순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동영상이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기록이 아닌 흔적으로 남았기에 충분히 미화될 수 있던 순간들에게 ‘사실 그게 아니었다'며 찬 물을 끼얹어버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기록이고 추억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정답을 찾은 것처럼 기뻤다. 비로소 나는 내가 만족할 추억과 기록하는 방법을 알았다.


가끔은 멋있게 보이고 싶기에 예쁜 사진을 고르고 골라 SNS에 올리더라도, 날 것 그대로를 모아두는 것은 조금 더 가식 없는 내가 될 수 있을 것도 같으니까.


"그런 사소한 상황들 귀찮게 다 기억해서 뭐 하려고?"라고 한다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기억은 아이클라우드가 해주고 나는 한 번씩 꺼내 보면 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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