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을 함께 살던 반려견이 세상을 떠났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스터디카페에 막 들어와 앉는 도중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준아, 똘이 보냈다."
"시험기간이라 얘기 안 했는데 결국 오늘이 마지막이더라"
똘이는 작은 말티즈이고 성격은 좋지 않았다. 당시 우리 시골집 앞에는 작은 밭이 있었는데 항상 멧돼지가 내려와 받을 해 집고 농작물을 먹고 달아나기에 할아버지께서 특단의 조치로 밭을 지킬 수문장을 두고자 유기견센터를 방문하셔서 데려왔다. 다 필요 없고 이 중에 가장 성질 더러운 놈으로 달라는 투박한 할아버지의 말에 모든 사납고 덩치 큰 유기견들을 다 제치고 똘이가 선택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작지만 성격이 까다롭고 사나웠다.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이끌려와 밭에 묶여 하룻밤을 보냈는데 아침에 가보니 간 밤에 많이 지쳤는지 거의 실신상태로 축 쳐져있는 모습이었다. 그저 밭을 지키는 역할을 못했기에 할아버지께서 집 안으로 들이셨다. 당연하게도 실내에서 키우는 자그마한 강아지가 사료가 아닌 사람이 먹다 남긴 잔반을 섞어 먹고 모기에 뜯겨가며 꿋꿋하게 밭을 지키기에는 무리였다. 그렇게 내가 10살 때 우리 집에 오게 되었고 그게 첫 만남이었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땐 우리 가족들을 잘 따라주지 않았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건 누구든 집 밖을 나갈 때마다 항상 조용히 달려 나와 슬픈 눈을 하며 올려보곤 했다.
14년을 함께 살았고 빼놓을 수 없는 가족이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모든 어린 시절을 함께 했지만 성인이 되고 본가를 나와 멀리 떨어져 지내게 되면서 점점 멀어지며 똘이 또한 자연스레 노견을 넘어서는 나이가 되었다. 2년 전쯤인가 엄마에게서 갑자기 똘이가 많이 아프다는 전화를 받고 퇴근 후에 밤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마산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던 적이 있다. 늦은 밤 링거를 맞은 채 누워서 움직이지는 못했지만 반갑다며 꼬리만 세차게 흔들던 모습이 생각난다. 이때부터 우리 가족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다음 날 동물병원에서는 나이가 많아 당장이라도 마음의 준비를 하라며 냉정하게 말했지만 결국 2년을 더 버티다 세상을 떠났다.
이별을 하면서 만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예고 없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조용히 카페를 나와 혼자 공원을 산책했다. 당장이라도 집에 뛰어가고 싶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닥치니 그러지 않았다. 굳이 당장 실감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눈물이 났지만 주체할 수 있었다. 그저 마지막으로 함께 산책을 나갔던 때처럼 느릿느릿 아무 공원을 걸었다. 그리고 벤치에 앉아 '주인이 죽게 되면 먼저 떠났던 반려견이 가장 먼저 마중 나온다는 이야기', '무지개다리 너머 주인을 기다린다는 이야기' 등의 반려견의 죽음에 대해 완곡하게 표현한 글들을 읽었다. 다리 너머에는 늙지 않고 병들지 않으며 맘껏 뛰어놀면서 주인을 잊지 않고 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자신을 버린 첫 번째 주인쯤은 잊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나를 기다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때에는 주인들에게 품었던 불평불만들을 가득 쏟아낸다고 하는데 가장 유력한 것은 아무래도 왜 이렇게 흔해빠진 이름을 주었냐고 한 마디 하지 않을까 싶다.
점차 먹먹한 마음이 환기되고 난 후 슬퍼하는 가족들이 생각났다. 14년 동안 아들들을 대신해서 하루도 빠짐없이 똘이와 매일 같이 잤던 엄마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울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부모님께 슬픔에 잠긴 티를 내지 않으며 말했다.
"이번 주말에 내려갈게, 집에서 좀 쉬고 싶다!"
똘이는 우리 가족에게 이별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