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웅티 Sep 26. 2022

공기업 포기한 백수의 이모티콘 승인 도전기

백수는 아니고 이제 '지망생'입니다


'이제 그만 백수하자'



올해의 나의 한 문장이다.


2022년 올해는 내게 새로운 것들이 많았다. 공기업 준비 포기, 연애, 집안 문제, 인턴... 하나씩 겪다 보니 확실하게 자리 잡은 생각은 '아 이제 그만 백수하고 싶다.'라는 것이었다. '독립하고 싶다'라고 하기엔 준비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한 난, 캥거루 새끼처럼 살아왔기에 독립은 멀어도 한참 멀었다. 



나의 진정한 백수 시기는 2020년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1년 반 정도 공기업 준비를 했다. 그리고 최종 면접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시고, 나름의 교훈을 얻고 털고 나왔다. 여기서 더 하면 '끈기'가 아니라 '회피'인 것 같았다. (mbti 만물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원활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적자면) 누워있기 좋아하는 isfp인 나는 나름 열심히 준비를 했었긴 했다. 어쨌든, 공기업 준비생 타이틀을 버리고 나니 나는 무려 스물일곱 살이 되어있었다.



내가 지금부터 다시 할 수 있는 건 뭐지?라는 고민으로 시간을 많이 보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지금 내 이력으로 할 수 있는 것, 나아가고 싶은 것.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 내 이력의 주는 '마케팅'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콘텐츠'였다. 하지만 애매했다. 난 미대, 예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묵직하게 한 길만 판 것도 아닌, 그저 그런 경영학과 졸업생이었다. 



그렇지만 그저 그런 다양한 모양의 조각을 흩뿌려놓은 나라는 사람도 퍼즐을 이제는 맞추기 시작해야만 했다. 이런저런 강의도 찾아보고 고민해본 끝에 결정한 직무는 '콘텐츠 마케터'. 그렇다면 콘텐츠 마케터라는 하나의 완성된 그림이 되기 위해 난 기존의 것들을 짜 맞춰서 누가 봐도 어떤 그림이겠거니 예상할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새로운 퍼즐을 많이 얻어내서 빈 곳을 메꾸어나가야 했다. 그래서 기준을 낮추고 나에게 맞는 주어진 남은 올해의 목표 두 가지를 세웠다. 1. 마케팅 인턴 수료 2. 이모티콘 승인 도전




그리고 이 글은 두 번째 목표인 '이모티콘 승인 도전'의 첫 발자국을 내딛는 글이다.








2017년도에 카카오톡의 움직이는 이모티콘 제안에 도전했다가 기술적 구현의 한계로 잠정 중단했던 것을 2022년 하반기에 다시금 시작했다. 당시에도 한 장 한 장 순서대로 그려내면서 시퀀스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알고 있었지만, 왠지 부자연스러운 모양새가 아쉬웠다. 막일 작업으로도, 애프터 이펙트로도 구현하기엔 무언가 다른 세심하고도 귀여운 몸동작을 어떻게 구현해내는 건지에 대해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그 어디에도 정보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게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움직이는 이모티콘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여지는지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운 좋게도 현재 sba아카데미에서 주관하는 '이모티콘 크리에이터 교육 과정'에 합격하여 매주 수, 토요일마다 이모티콘 제작에 대해 배우고 있다.



과정의 첫 번째 목표는 '멈춰있는 이모티콘'을 제안하는 것. 이모티콘의 꽃은 '움직이는 이모티콘'이지만, 아직은 내게 기술이 없다.. 하지만 곧 과정을 통해 '애니메이터' 툴을 배우며 캐릭터를 움직이게 하는 방법을 배울 예정이다. 멈춰있는 이모티콘은 총 32개의 캐릭터 이미지를 제작해야 했다. 5개 플랫폼(카카오톡, 라인, 밴드, OGQ, 모히톡)의 가이드에 맞춰 각기 다른 규격에 맞춰 제안하면 된다.



이모티콘 작가들의 로망이자 낭만인 '카카오톡' 기준으로 모든 것을 제작하는 것이 먼저였다. 하지만, 크리에이터 지망생인 나는 카카오톡에만 매달릴 수는 없기에 카카오톡 외 4개의 플랫폼에도 내보아야 했다. 수익적인 면에서 카카오톡이 남다르기도 하고 한국인들 중 카카오톡을 안 쓰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니 일순위는 카카오톡이다. 하지만 카카오톡은 점점 레드오션이 되어서 승인 확률도 무지 낮아지고 있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시장에서의 뜨거운 감자는 언제나 이러하다.



'이걸 승인해준다고?', '이게 승인이 안된다고?'






32개로 양산해낼 나만의 이모티콘 캐릭터와 주제, 타깃 등을 정해야 했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는 평소에도 가지고 있었지만, 막상 진짜로 내야 한다고 생각이 드니 신중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실제 출시되어있는 이모티콘들을 많이 봐야 했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시장에도 '트렌드'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B급 감성, 관계형, 공감형, 단순 리액션형이 주인 이모티콘 플러스의 순서로 발전해왔다. 특이한 것이 승인이 나면 그것이 트렌드가 될 수도 있다. 근본적으로 캐릭터 자체가 귀엽고 잘 짜여서 많이들 찾으면 그것이 또 다른 트렌드가 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멈춰있는 이모티콘만의 감성은, 'B급 감성'과 잘 어울릴 것 같단 생각에 그것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mz세대로서.. 개그와 유머에 대한 욕망이 나름 있었다. 곧바로 난 예전부터 끄적거려왔던 낙서를 이것저것 찾아보았다. 




왠지 무심하면서도 맹한 얼굴이 맘에 들었다.





수많은 낙서 중 덩그러니 그려진 얼굴 하나. 여기에서 발전시켜 '원숭이' 캐릭터를 만들기로 했다. 요즘엔 동물 본연의 모습이 아닌 많이 변형시킨 모양새도 작가 본인이 그렇다 하면 그렇게 된다. 예를 들어 '찌오'는 이게 오리인가 싶은데, 오리라고 하니 사람들은 오리라고 받아들인다. 그럼 원숭이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외향적인 친구들(파워 E)과의 단톡방에서 영혼 없이 리액션하는 나 자신(파워 I)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스스로 웃기기도 하고, 나 같은 사람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isfp인 나는 평소 이 말들을 엄청 자주 썼다


내향인이 아니어도 많이들 하는 리액션 아닐까? 사회생활하는 사회인이라면, 사람들에게 잘 대해주고는 싶지만 어쩔 수 없이 피곤하고 기 빨리는 순간들이 많을 것이다. 일명, 영혼 없는 리액션이라고 하면 와닿을 것이다. 콘셉트를 정하 고나니 네이밍은 의외로 쉽게 다가왔다. 원숭이와 내향인의 리액션을 연결 지어보자는 생각으로 정해진 네이밍. [내향적인 원숭이, 내숭이]








콘셉트와 캐릭터를 정했다면 이제 시안을 제작하면 된다. 사실 별거 없다. 타깃을 정하고 주제를 정하면 바로 그려도 된다. 하지만 그래픽 작업 이전에 구체적인 시안은 필수다. 그래야 퀄리티 있게 이미지를 제작할 수 있고, 오히려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최대한 세세하게 시안을 그릴수록 본 작업에서 무척 편해진다. 이미 그래픽 작업으로 돌입하고 나면, 어렵게 완성한 후에 수정하는 것만큼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없다. 처음에 잘해야 한다.






일러스트레이터 아트보드 32개 위에 문구를 작성한다

우선 어떤 문구로 32개를 제작할지 먼저 정했다. 평소 내가 단톡방에서 어떻게 리액션하는지, 그리고 내향인들이 어떻게 대답하는지를 중점적으로 생각해서 짜 봤다. 스스로 적으면서도 하찮기도 한 문구들을 모아 놓고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별로 다르지도 않은 이 말들을 어떻게 하면 캐릭터와 합쳐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












생각나는 대로 하나씩 이미지를 채워본다

그다음, 리액션 하나하나씩 어울리는 모션을 문구와 맞추어 짜 나간다. 무려 32개나 되니 시안 그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려본 사람은 알겠지만, 32장? 정말 많다. 막상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많게 느껴지진 않겠지만.. 시안 제작도 꾸물꾸물하다 보니 4~5일 정도 소요되었다. 아무래도 문구와 모션을 각기 다르게 만들어야 했기에 좀 까다로웠다. 미묘한 표정의 차이, 말의 차이를 생각하면서 b급 감성 살려보려고 애쓰는 과정이었다.









여차저차 완성..

그렇게 완성된 32개의 시안. 교육과정에 따라 진행되는 거라 서둘러 그래픽 작업을 착수해야 했기에 교육과정 담당 선생님께 시안 피드백을 요청드렸다. 답장은 걱정과 다르게 무척 긍정적이었다. 내 생각엔 선생님은 B급 감성을 좋아하시는 듯했다.











현직 크리에이터 사이에선 고퀄리티 작업과 비교되는 'b급 감성 이모티콘 승인'에 대해 적잖은 충격이 몇 번 있어왔다고 한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리스트를 보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이모티콘도 몇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전해보면서 드는 생각은 하찮아 보이는 이모티콘 역시 많은 고뇌의 산물이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절대 쉬운 건 없다. 그리고 과정 중에 잊을 수 있는 한 가지 사실. 승인이 난다고 끝이 아니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선택은 역시 소비자의 몫이며, 대중에게 선택받지 못하면 월 매출 몇천의 신화? 그런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제 오래 묵혀둔 나의 오랜 친구인 액정 태블릿을 활용한 그래픽 작업에 돌입한다. 난 크리에이터로서의 첫걸음을 시작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앞으로 찬찬히 기록해보려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