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전시 검색을 하다 간송미술관 특별전 소식을 알게 되었다. 7년 만에 열리는 전시가 6월 5일까지라 서둘러 가보자 하고 홈페이지를 들어가니 전회 매진이다.
이런! 역시 또 늦었다 싶었다. 2주간의 예약을 금요일 오전 10시에 하는 시스템이라 아침 9시 50분에 알람을 맞추어 놓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10시! 오픈 시간에 들어가니 다행히 찰나의 시간에 마감되지는 않아 예약을 완료했다. 얼마만인가? 오랜만에 친구와 함께 성북동 나들이도 해 볼 생각이다.
예약 날 도착한 간송미술관. 미술관 인근 피자집에서 친구를 만나 점심을 한 후 한가하게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오랫동안 굳게 닫혀있었던 문이 7년 만에 열렸다. 간송미술관은 등록 미술관이 아니었던 관계로 전시일 수 의무가 없었다. 매년 봄가을 특별전만 두 차례 열어 한 네 시간인가를 기다려 전시를 봤던 기억이 난다.
간송미술관은 간송 전형필 선생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이다. 1938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건축가인 박길룡 선생이 설계하고 최고급 자재로 완성된 서양식 건축물로 사실 지금 봐도 낡았을 뿐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이 사립박물관은 그 당시 화려한 보물을 모아둔 집이라는 의미로 '보화각'이라 불렀다. 1962년 정성스레 전 재산을 들여 우리의 문화유산을 모았던 간송 전형필 선생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보화각의 기능이 일시 정지되기도 했다. 간송의 아들뿐 아니라 문화계 지인들이 모여 1966년 한국민족미술연구소를 설립하였고 이후 간송미술관으로 개칭한 후 1971년부터 유물을 일 년에 두 번 일반에게 공개하였다.
간송미술관은 2013년이 되어서야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설립되었고 개인 후원자들의 후원금을 받기고 하고 후손들 개인 명의의 소장품을 재단에 귀속시키면서 변화를 시도하였다. 다소 폐쇄적이었던 간송미술관의 운영에 변화를 시도하며 2019년에야 미술관으로 공식 등록을 마쳤다. 문화재청으로부터 47억의 예산을 받아 수장고를 신축하고 잠시 동대문 DDP에서 전시를 열기도 하였다.
80년이 넘은 건물치고 아직도 세련된 느낌이지만 전시장으로서는 다소 작고 협소해 이 좁은 공간에서 다닥다닥 사람들이 붙어 유물을 보자면 앞사람 등짝과 뒤통수만 봤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신윤복의 <미인도>를 봤던 감동이 10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남아있으니 이것이 바로 간송미술관 유물의 힘이 아닐까 한다. 어찌 되었던 이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 간송미술관의 건물은 2019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고 지금은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다.
전시 제목은 <보화수보(寶華修補) - 간송의 보물 다시 만나다>이다.
‘간송의 보물을 수리하고 보수했구나.’ 어떤 보물이 나왔을지 궁금했다.
정문을 지나 돌아서니 단정하게 정리된 마당에서 삼층석탑과 비로자나불 좌상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세련되고 깔끔했던 건물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사람도 80년이 지나면 삐그덕 거리니 수많은 사람들을 맞이했을 이 건물도 많이 상했나? 하는 생각이다.
건물 입구에서 예약을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서니 관람객이 전시장에 가득했던 옛 생각이 났다. 그 와중에도 루뻬를 끼고 찬찬히 유물을 관찰하던 관람객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예약 탓인지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사람도 적지만 전시 작품도 그리 많지 않다. 32점이라는데 그보다 더 적게 느껴진다. 전시장이 촬영 금지라 사진으로 남길 수 없어 아쉽지만 일단 우리가 교과서나 매체를 통해 한번은 들어봤을 만한 조선시대 대화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천재화가로 영화까지 제작되었던 장승업, 풍속화 하면 떠오르는 김홍도, 문인화가 이인상, 조선 말기 민영익, 김명국, 심사정, 대나무 그림으로 익숙한 이정, 신사임당의 작품이 있다. 신사임당의 작품은 <묵포도도>로 우리가 수없이 보는 앞면에 있는 바로 그 그림이다.
1층 전시장을 돌고 2층으로 올라간다. 2층은 촬영이 가능합니다라는 멘트에 어떤 작품을 사진으로 담을까 하는 기대로 올라간 2층. 허걱 아무것도 없다. 비어있는 전시장만 덩그러니 있다. 사람들은 이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기도 하는데 사진을 찍어 남기고 싶은 마음보다 아쉬운 마음이 더 크다 보니 뭘 해야 할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 그래 이 모습이라도 사진에 담아보자. 리모델링 전의 간송미술관을 기억하기 위해........'
이번 전시 이후 간송미술관은 보수 정비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코로나 시국에 참 여러모로 이슈가 많았다. 경영난을 이유로 지난 3년간 불교 문화재 4건을 경매에 출품했다. 유찰된 2건은 국립중앙박물관이 구입했고 나머지 한건은 블록체인 커뮤니티인 헤리티지 다오(DAO)가 사들여 간송미술관에 기증했다. 국보 훈민정음해례본을 NFT로 제작하여 1억에 100점을 판매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절반 정도 팔았다고 하는데 이 또한 갑론을박이 있었다. 대구 간송미술관 건립에 국비와 지방비 400억 원이 투입되는 등 다양한 간송의 기사들이 문득문득 뉴스면을 장식했다.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국가나 국민들은 간송미술관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일들이 나에게는 호의적으로 해석되지는 않는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 왜 미리 경영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을까? 간송 소장품이지만 국보라면 개인의 보물이 아닌 나라의 보물인 것을......
이번 전시 역시 다소 실망스러워 시간 되면 한번 더 와볼까? 라든지 친구에게 꼭 가봐라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이번 나들이는 전시 관람보다는 미술관 전에 들렀던 피자가 더 생각날 것 같다.
다만 간송미술관의 건물이 새로운 모습으로 리모델링을 하여 우리에게 다시 오픈될 때 간송미술관이 새로운 경영철학으로 거듭나기를 이 무지렁이 관람객은 감히 바라본다.
#간송미술관 #성북동 #DAO #전형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