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의 RM도 이승기도 찾아본다는 그 작가
누군가 나에게 “좋아하는 작가 있으신가요?”라고 묻는다면 한치의 망설임 없이 말하고 싶은 작가가 바로 윤형근이다. 그런데 윤형근이라고만 하면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림에 검은 기둥을 그린 화가입니다.”라고 말해도 호응이 없다.
그렇다면 “화가 김환기의 사위되는 분입니다.”라고 하면 김환기라는 말에 얼굴을 끄덕이기도 한다.
사실 나와 같은 중장년층에게 미술에 대한 주제로 큰 호응을 얻기는 어렵다. 미술을 많이 접하지 않아서 즐기는 문화로 생각하지 않거나 서양미술에 익숙해 있거나 미술책 속의 작가들에 치우쳐져 있어서 그런 듯한데 이것은 우리나라 근대 이후의 작가들에 대해서는 딱히 어디서 배워본 적이 없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찌 되었던 내가 좋아하는 이 윤형근의 작품을 연예인도 그것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이 좋아한다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RM은 평소 미술애호가로 크고 작은 전시회에 자주 나타나거나 전시회에 다녀간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기도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거액의 기부금을 내기도 하고 신진작가 발굴에도 적극적이며 전시를 보는 것을 넘어 작품 구매도 망설이지 않는데 특히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구매한다고들었다. 그런 RM도 좋아하는 작가라니 내 안목에 괜히 어깨를 한번 들썩이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좋아해도 나와는 전혀 클래스가 다르다.
나는 그저 우리나라 그것도 서울에서 열리는 윤형근 전시를 열심히 찾아보는 정도인데 방탄의 RM은 전 세계를 다니며 윤형근 전시를 찾아본다. 이탈리아 베니스 포르투니 미술관뿐 아니라 미국 뉴욕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서울, 청주 등 윤형근 전시가 열리는 곳을 다니는 범위가 전 세계적이라 감히 나도 좋아하는 작가인데 라는 말을 하기가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다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과 강도가 다를 뿐이지라는 위로와 함께 누가 뭐래도 내 마음속의 최상의 작가는 윤형근이다라고 말한다.
늘 작가 소개를 하자면 어디에서 태어나고 어느 대학을 나왔고 가 먼저다. 청주 태생이다. 어릴 때부터 물론 그림을 잘 그렸지만 여러 형편상 청주 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직장생활을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만두고 1947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한다. 재학 당시 시위에 참여하여 제적을 당하고 그 후 홍익대학교 회화과로 편입한다. 이렇게 대학교 시절 김환기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후에 김환기 딸과 결혼까지 한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청주여고 교사를 했지만 정치적 문제로 수차례 복역을 하기도 한다. 1966년 첫 개인전 때는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한 듯한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이 검은 기둥 그림이 아니었다. 오히려 빨강, 초록, 노랑 등 다양한 색의 번짐으로 수채화 같은 느낌으로 표현을 많이 한다.
이후 작가와 교사의 길을 걷던 윤형근은 1970년에는 숙명여고 미술교사 시절 재벌가의 부정입학에 대한 이의제기로 다시 옥살이를 하고 이후 미술교사를 그만두었다.
오히려 이 일을 계기로 더욱 작업에 몰두하게 되었고 작품에 다양한 색이 사라지게 된다.
나는 미술사를 다 공부하고 작가 연구를 다 한 후에 이 그림이 좋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처음 그림을 봤을 때 너무 좋아서 또 보고 또 보고 나서야 그 후에 작가를 알아본다.
엄버와 울트라 마린으로 색을 칠하고 또 칠하고 칠하며 검은 기둥을 완성해가고 그 검은 기둥으로 자신만의 그림을 만들었다. <엄버>라는 색은 갈색 계통을 이르는 물감으로 <번트 엄버>는 엄버를 태운 색이라고 한다. 땅에서 얻은 색으로 지구의 색이라는 낭만적 표현을 쓰기도 하고 제조사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철과 망간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인간의 첫 번째 물감이라고 할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색인데 윤형근은 이 안료 이름 자체를 작품 제목으로 사용하였다.
윤형근의 작품 제목 <Umber-Blue>, <Bunt Umber>, <Ultramarine> 다시 말해 청다색 또는 다청색 시리즈, 다색 시리즈, 청색 시리즈에서 알 수 있듯이 푸른색과 암갈색이 섞인 기둥, 암갈색만으로 칠하고 칠해서 거의 검은색으로 보이는 기둥, 또는 청색으로 그려진 기둥이 대부분이다. 반듯하게 서 있거나 비스듬하게 서 있거나, 기둥이 하나이거나 여러 개 이거나, 그림이 크거나 작거나 할 뿐이다.
작가는 블루는 하늘, 엄버는 땅의 색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천지(天地)라 명명하였다.
면이나 마포에 오일을 충분히 섞어서 색을 칠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번지면서 문(門)과 같은 형태의 작품이 나오게 되고 윤형근의 이러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잔소리를 싹 빼고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라고 표현했다.
처음 윤형근의 작품을 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아무 형태도 없는데 그저 짙은 갈색 기둥만 있었을 뿐인데 그림이 주는 압도감이 대단하다. 그림의 색에서 느껴지는 중압감, 엄숙함, 장엄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어떻게 이렇게 색이 카리스마가 있을까?라는 느낌에서 무슨 그림이지? 누가 그린 그림이지? 이 작가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렸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 기사를 보면 윤형근의 작품이 어둡고 침울해서 요즘 분위기에 적절하다는 표현이 있었다. 이런 점이 젊은 세대들에게 공감이 되어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우울보다는 안정과 엄숙이라는 느낌을 느끼고 싶다.
우연히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가수 이승기 씨의 집이 공개된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거실에 딱 걸려있는 윤형근의 작품을 보면서 미술관이 아닌 집에 걸려있는 윤형근의 그림은 어떤 느낌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오랜 기간 미술관을 다니며 그림을 보고 즐기고 감동을 받아 온 나로서 요즘같이 미술시장이 활황인 때는 ‘어휴 나도 좋아하는 그림 하나 사둘걸’이라는 생각을 잠깐이나마 하게 된다. 미술관에서 보고 즐기는 동안 그림의 가치는 하늘 높이 올라가버렸다. 그래도 나는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