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걱정은 아들의 등교였다. 복직을 하기 직전까지 아들은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무지 힘들어했고 등하교까지 오로지 내게 의존하며 나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버스를 타고 일찍 가는 연습을 해보자는 나의 제안이 무색하게 마지막날까지 나를 철저히 이용했다. 그리고 내가 출근한 첫날. 그렇게 깨워도 깨지 않던 아들은 출근 전 일어나 알아서 등교를 했다. 역시 나를 불안하게 하던 것은 결국 아이가 아닌 미처 독립시키지 못한 나의 마음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잘할 수 있는 아이의 마음을 끝내 붙잡고 있었던 것은 이를 믿어주지 못하는 내 마음이었던 것이다. 이제 내가 적응할 일만 남았다.
복직 첫날. 잠을 설쳤다. 새벽에 30분 간격으로 여러 번 잠이 깼다. 깰 때마다 휴대폰을 뒤적이다 다시금 잠들곤 했다. 일 년 만에 찾은 나의 일터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좀 변했으면 하던 것들까지 변하지 않은 채로 나의 적응을 돕고 있었다. 그곳의 그들은 모두 바쁘게 쳇바퀴를 돌리고 있었고 나 혼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내 몫을 해내는 일만 남아있었다. 내가 일 년간 쉬고 온 사실조차 모르는 이도 있었다. 역시 직장이란 곳은 생각보다 내게 관심이 없었고, 내가 없이도 너무도 잘 돌아가는 곳이었다. 내가 없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휴직을 신청하기까지 너무도 깊이 고민했던 시간이 조금 허무하게 느껴졌다.
나는 재무부서의 경리팀장으로 발령이 났다. 대부분 연차가 높은 팀장들이 오는 자리인데 경력이 많지 않은 내게 그 자리가 맡겨졌다. 누군가는 무한한 신뢰를 보였고 누군가는 의아함을 표했다. 내가 잘 해내는 것만이 어떤 시선이든 증명하는 일이기에 부담감이 더 늘었다. 이곳은 복직을 했다는 변명으로 적응기를 기다려줄 만큼 여유로운 곳이 아니었다. 첫날부터 결재할 문서가 쏟아졌다. 첫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업무를 처리한 담당자를 전적으로 믿는 일밖에 없었다.
오래 앉아 있는 것과 계속해서 모니터를 보는 것과 오래 집중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 와중에 유일하게 별다른 적응기가 필요치 않았던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손이다. 문서 작성을 위해 키보드를 치는데 나도 모르게 단축키를 능수능란하게 쓰고 있었다. 나의 몸은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이 보였다. 잠재력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이 하나라도 있는 것이 어딘가 싶었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의 옷을 세탁하고 대충 정리를 마친 후 침대에 뻗으니 밤 열 시였다. 운동을 다녀온 신랑이 널브러진 내 모습을 보더니 안쓰러움을 담아 웃었다. 그렇게 힘들면 그만두라는 농담에 내가 냉큼 알겠다고 대답을 했다. 신랑 얼굴에서 웃음이 싹 가시더니 이제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라도 하는 듯한 눈빛을 보였다.
둘째 날은 저녁 무렵 호우주의보가 발령될 예정이라 비상근무가 있을 예정이란다. 각종 축제나 행사 근무, 비상근무는 부서별로 순번을 정하여 서게 되는데 전임팀장을 대신하여 들어가게 된 내가 이번 근무자가 되었단다. 나는 직장이 있는 곳과 한 시간이 걸리는 곳에 거주한다. 그런 탓에 집에 갔다가 비상근무 명령 시 다시 돌아올 상황이 되지 않기에 퇴근을 못하고 무작정 기다렸다. 첫 주부터 비상근무를 할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편한 옷도 준비하지 못했다. 그냥 불편한 옷을 입은 채로 다급히 렌즈만 빼고 책상에 엎드려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저녁을 지나 자정, 새벽이면 비상근무 명령이 떨어지려나 하며 기다린 것이 새벽 6시. 결국 그날 비상근무 명령은 나지 않았다. 비가 생각보다 많이 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른 사무실도 몇 곳 불이 켜진 것을 보니 나와 비슷한 상태로 밤을 보낸 듯하다. 비상근무도 아닌 밤샘을 한 상태로 다음날 연가를 내고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허무했다. 집에 와서 다시금 뻗었고 침대에서 세 번째 날 하루가 다 갔다.
네 번째 날은 커피를 네 잔이나 마셨다. 커피가 목까지 차서 찰방찰방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습관적으로 무언가가 빌 때마다 커피를 마셨다. 커피만이 지금 내가 무언가를 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고 있다는 유일한 증표가 되기도 했다.
일이란 것이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일만 있다면 크게 어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역시 가장 문제는 언제 어디서 만날게 될지 모르는 '변수'다. 우리의 일은 이를 얼마나 대범하고도 능숙해 보이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한 번도 없었던 케이스의 일을 마주하고 당황하는 팀원에게 경험으로 알려줄 수 있는 해결책이 없어서 조금 답답해졌다. 한 달만 딱 지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그랬다면 나는 조금 더 대범하거나 또는 능숙해 보이게 팀원을 도울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다섯 번째 날은 회의를 하고 결재를 하고 법령을 찾고 편람을 뒤지고 나니 하루가 다 갔다. 우아한 원피스를 입고 갔는데 비가 많이 와서 치맛단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웠다. 저녁엔 혹사당하는 몸이 안쓰러워 몸을 위한 일을 하고자 힘을 내 운동을 하러 갔다. 그러곤 아이들이 새벽 늦도록 잠들지 않고 노는 것도 모르고 제일 먼저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토요일. 일어나니 입술에 물집이 잡혀있다. 하루종일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누워 있는 것만으로는 피로가 가시지 않아 잠이 올 때마다 잤다. 그래도 피곤했다.
토요일 저녁엔 아는 동생 J의 전화가 왔다. 그녀는 종종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전화를 해선 형식적으로 나의 안부를 짧게 묻고는 이내 자신의 근황을 들려준다. 아주 가끔 일 때문에 힘들고 가끔을 제외한 모든 경우 신랑 때문에 힘들어한다. 그녀가 결혼생활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들어왔으니 거의 10년은 된 것 같다. 지난번엔 여행을 간 곳에서 이제 진지하게 이혼까지 생각한다는 전화를 하더니 이번엔 그냥 냉장고 정리를 두고 다툰 듯하다. 지난번보다는 소소하다.
사건의 발단과 그 사건이 이르는 결론이 조금씩 다를 뿐 늘 같은 문제를 놓고 다투는 그들이다. 그렇게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한결 같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싸우는 그들을 보며 그들은 서로에게 항상 변수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늘 변수 같은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해 다툰다. 늘 어떻게 처리해 낼 것인가가 문제인 내게 받아들이는 것조차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새롭다.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날이 오지 않겠냐는 말을 지금 10년째 해오는 중이다. 그들에게 서로는 변수이자 어쩌면 상수이다.
일요일 아침엔 불같은 동생 H의 전화가 왔다. 팀장님과 성향이 너무 맞지 않아 이번엔 팀을 옮기기를 그렇게 고대했는데 결국 이번 인사에서도 같은 팀에 남게 되었단다. 성과를 위해 뒷일은 고려하지 않고 대책 없이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 늘 삐걱이는 사이였다고 했다. 이번 인사가 그 팀장님과 유일하게 헤어질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것이 무산되었단다. 너무 화가 나서 소내 인사가 난 당일 조퇴를 하고 다음날은 연가를 내고 출근을 하지 않았단다. 역시 불같은 그녀다. 하지만 그녀는 불같이 이는 만큼 감정의 수습도 빠르다. 내가 위로할 틈도 없이 알아서 제자리를 찾아간다.
전날은 술을 진탕 먹었고 오늘은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산 후 마음을 다잡기로 했단다. 역시 멋진 그녀. 앞으로 그녀에겐 팀장님과 마주하는 모든 순간이 예측하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 될 것이다. 변수가 즐비한 삶. 다이내믹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동생인지라 크게 걱정이 되진 않는다. 그녀는 어떤 변수는 가볍게 무시할 것이고 어떤 것은 가볍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녀에게 변수는 삶을 조금 더 생동감 있게 만들어주는 소스 같은 것일 뿐이다.
그녀들이 들려주는 소란한 안부에 그저 끄덕이며 듣거나 그들을 진정시키는 것이 내가 한 전부였지만 끊고 나니 조금 편안한 기분이 되었다. 그들의 날뛰는 변수 앞에 나의 변수는 소소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역시 그녀들은 나의 안부를 묻고 나를 위로하기 위해 연락을 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녀들에게 대적할만한 건수를 만들려면 조금 더 노력해야겠다는 터무니없는 다짐마저 해본다.
# 사진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