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원 Aug 31. 2021

1화. 다시 돌아가도 기자가 될까?

오늘도, 이 기자! - 서른중반 늦깎이 신입기자의 좌충우돌 성장기1

프롤로그


다시 돌아가도 기자가 될까?



내가 ‘기자를 하고 싶다’고 마음먹은 때는 서른다섯 살의 어느 가을 날이었다. 그 생각을 품으면서도 누가 알면 미쳤다고 할 것 같았다. 아무도 모르게 찾아간 기자 아카데미에서도 같은 반응이었다. 어렵게 등록을 결심하고 찾아간 아카데미에서 난 퇴짜를 맞았다. 나이가 많은데다 여자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 아카데미 원장님은 서른 다섯 넘은 여성을 신입기자로 채용한 곳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했다. 그는 수강생 한 명이 아쉬운 팍팍한 아카데미 살림에도 수업료 180만원을 고사하며 나의 등록을 거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포기하지 않았다. 안 돼도 좋다, 나중에 책임지라고 하지 않겠다, 일단 수업만이라도 듣게 해 달라, 물러서지 않는 나에게 원장님은 주저하며 마음을 열어주셨고, 이후엔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돼 주셨다. 덕분이었을까, 늦깎이 기자 지망생은 이듬해 꽃피는 봄 날 첫 기자 명함을 갖게 됐다.(이 정도면 선방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지금 생각해보면 평탄한 날보다 롤러코스터 같은 날들이 더 많았다. 남 몰래 눈물 흘린 적도, 이를 간 적도 많다. 그러면서도 ‘기자’라는 직업은 일류 재단사가 만들어준 옷처럼 기분 좋게 들어맞았다. 그 일은 어릴 적 자신감이 없고 항상 위축돼 있던 나에게 날개를 달아주었고, 자존감도 많이 회복시켜줬다. 기자로 일하면서 알게 됐다. 나란 사람이 생각보다 멋지고, 괜찮고, 능력 있는 존재란 사실을.


이 원고는 정확히 3년 전인 2018년 12월에 완성했다. 독립출판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라 디자인 작업과 인쇄만 끝내면 당장 세상 빛을 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안 했냐고? 배신감과 번아웃에 다신 쳐다도 보지 않겠다던 기자직에 예상과 달리 복직하게 되면서 출간을 해도 될 지 망설였기 때문이다. 마치 모두가 심증은 있지만 물증을 찾지 못한 미제사건의 결정적 단서를 세상에 폭로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늘 찝찝했다. 이 책을 출간하지 않은 일이 나에겐 또 하나의 미제 사건이 되어가고 있었다. 원고는 노트북 안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3년 만에 먼지가 폴폴 앉은 듯한 원고 파일을 다시 열었다. 클릭 몇 번이면 간단한 이 일에 무려 3년이 걸렸다. 비밀 일기같은 원고를 다시 읽자 그 때로 돌아간 착각이 들었다. 혼자 울기도, 웃기도 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만 아는 비밀을 공개하기로. 


설레면서도 두렵고 부끄럽다. 앞으로 이곳에서 쓸 글에는 여러 이야기가 나오지만, 어쨌거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기자로 살면서 정말 행복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제는 신입 때의 펄떡거리는 생생함은 보기 힘들어지고 후배들에게 좋은 선배가 되는 일을 고민하는 위치가 됐다. 그리고 전에는 알 수 없었던, 보이지 않던 선배들의 고충을 하나씩 이해하게 된다. 가끔 순수함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점점 때가 묻어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씁쓸하지만 이 또한 자연스런 내 모습이라 생각하며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가끔씩 떠올리며 미소짓는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던 세상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들던 나의 모습을.



2021년 09월

그대의 미래는 그대가 원하는 대로

이 기자 드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