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망고, 그리고 태국
우리 엄마는 입맛이 까다롭다. 음식을 평가함에 있어서 맛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하게 여기는 건 다름아닌 위생상태다. 조금이라도 더럽거나 찝찝한 곳에서는 물 한 잔도 마시기 싫어하는 사람이 우리 엄마다. 강박에 가까운 그녀의 위생 관념은 먹는 것뿐만 아니라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런 엄마를 데리고 나는 5년 전 태국으로 8박9일 여행을 갔다. 습하고, 무덥고, 길거리 음식이 즐비한 방콕으로. 다 큰 내가 엄마 손을 붙잡고 처음으로 제대로 떠난 첫 여행이었다. 출발 전, 엄마에게 다양한 즐거움과 추억을 만들어주고팠던 나는, 태국 여행가이드 책을 열심히 뒤적이며 방콕 시내 곳곳에 있는 유명한 맛집 리스트를 조목조목 체크하고 계획표를 짰다. 100년된 오리고기 국수집부터 각종 디저트 가게, 전통 태국 식당, 길거리 음식들까지.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처럼 가이드북에 포스트잇을 잔뜩 붙여가며, 좋아보이는 곳이면 하나라도 놓칠세라 빠짐없이 기억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다.
“엄마, 여기가 100년된 유명한 식당이래. 맛있어?”
“그냥저냥, 뭐…먹을만 하구먼.”
“엄마, 태국은 식당보다 길에서 파는 음식이 진짜 맛있댔어. 한 번 먹어볼까?”
“아휴, 저 음식 만드는 아줌마 손 좀 봐! 손톱에 때낀 거 보여? 드러워서 안먹을란다!”
“엄마, 태국 음식에는 고수가 들어가야 맛있대. 엄마도 먹을거지?”
“난 안 먹을래.”
“엄마, 태국에 왔으니까 길에서 파는 쌀국수는 먹어보자!”
“난 쇼핑몰에서 파는 쌀국수가 더 좋은디. 길에서 파는 건 더러워서….”
“진짜 엄마랑 같이 못다니겠어!”
엄마랑 난 여행뿐만 아니라 음식 코드도 맞지 않았다. 엄만 어느새 ‘더워서 힘들다, 다리 아프다, 호텔에 들어가서 쉬고 싶다, 그만 다니고 싶다’ 등등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열심히 준비한 내 맘도 못알아주는 엄마가 야속했다. 추억을 만들어주려고 시작한 여행은 어느덧 싸움으로 끝나는 여행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 삐져서 말 한 마디 안하며 호텔로 돌아가는 길, 허름한 재래시장을 지나가던 중 우연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싱싱하고 노오란 빛깔을 띤 먹음직스러운 망고였다. 서툰 발음으로 “하우 머치?” 묻자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과일행상 할머니는 비닐봉지 하나가득 담은 망고에 우리돈 만원도 안하는 금액을 불렀다.
마치 횡재를 한듯한 기분이 든 나는 엄마한테 “엄마 우리 호텔가서 망고 먹자!”라고 웃으며 말했다. 과일이라면 자다가도 눈을 번쩍 뜨는 엄마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열대과일에 호기심을 보였다. “그래!” 엄마와 내가 처음으로 의견일치를 본 순간이었다.
호텔로 돌아와 룸서비스로 망고 컷팅을 주문하자, 잠시 후 벨보이는 탐스럽고 보기좋게 담긴 망고를 커다란 접시에 하나 가득 담아왔다.
먹음직스런 망고를 한 입 맛 본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배시시 웃기 시작했다.
“이게 망고야? 진짜 맛있다!! 우리 한국 가기 전까지 매일 먹자!!”
그렇게 위태롭던 우리의 태국 여행은 잘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노오랗게 익은 망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