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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원 Mar 07. 2024

나의 베스트 여행 파트너

벌써 5년쯤 됐나보다. 두브로브니크의 코발트 빛깔 바다가 지금도 그립다.


나는 거의 모든 해외 여행을 파트너와 함께 했다. 그와 나는 성격이 많이 다르고, 취향도 다르며, 잠버릇도, 여행 스타일도 모두 다르다. 우리는 함께 여행을 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아 한 번씩 크게 싸우기 일쑤고, 싸우고 나선 두 번 다시 함께 다니지 않겠다고 서로에게 엄포를 놓는다. 하지만 냉전은 얼마 가지 못하고 이내 봄눈 녹듯 스르르 풀려 또다시 함께 여행 가방을 싼다. 그는 다름아닌 우리 엄마다.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알게 됐다. 엄마가 나 못지 않게 몽상가인데다, 낯선 사람과의 만남과 대화를 사랑하며,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 나이와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호기심이 강하고, 처음 보는 사람과도 기꺼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있다는 걸. 낯선 환경에서 막막할 때 소심해지기보다 기꺼이 모르는 이에게 도움을 요청할 줄 아는 대범한 사람이 바로 엄마라는 사실을. 나는 여행을 함께 하고나서야 엄마에 대해 더 알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만큼 대책없는 점 또한 우리 엄마의 모습 중 하나다. 7년 전쯤, 함께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난생 처음 밟아보는 유럽이어서 우리는 자유보다는 안전을 택하기로 하고 단체여행을 예약했다. 가이드와 단체여행객 스무명 가까이가 8박9일간 동고동락하는 일정이었다. 


유럽이 처음인 건 엄마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처음 보는 고풍스런 건물과 풍경, 평생 처음 와보는 낯선 나라를 걷는 설렘, 버스로 국경을 넘는 긴장과 신기함이 뒤섞여, 마치 말로만 듣던 곳을 처음 소풍 온 초등학생처럼 와!와! 거리며 들떠 있었다. 그 떨림은 두브로브니크에서 절정으로 치달았다. 


가이드는 사람들에게 그곳을 티비프로그램 ‘꽃보다누나’에 소개된 유명한 곳이라고 설명했지만, 사실 엄마와 난 그 프로그램을 본 적도, 관심도 없었다. ‘유명인, 연예인이 왔다간 곳’이라는 수식어에 심드렁한 우리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바다가 그토록 진한 코발트 빛깔을 지닐 수 있다는 것, 하늘도 미세먼지 하나 없이 말끔하고 시원할 수 있다는 것, 바다를 배경으로 벽돌색 건물로 둘러싸인 도시 전체가 영화의 배경이라도 된 듯 고풍스럽고 낭만적일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떨렸다. 하지만 설레던 것도 잠시, 어느 순간 옆을 돌아봤을 때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가이드가 허락한 자유시간은 한 시간 남짓. 갑자기 엄마를 잃은 나는 낯선 타국 골목길에서 엄마를 찾아나서야 했다. 방향감각이 둔한 나는 한 번 갔던 장소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나는 내가 미아인지, 엄마가 미아인지 헷갈려하며 어떻게든 가이드가 허락한 시간 안에 엄마를 찾기 위해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맸다. 그러다보니 가슴 떨리던 낭만마저 골목 어딘가에 놓고 온 기분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엄마는 사라지기 얼마 전부터 지나치게 흥분돼 보였다. 내 눈을 피해 도망간 게 틀림없었다.  


나는 이 곳이 갔던 길인지, 아닌지 계속 헷갈려하며 그 근방을 몇 번이나 돌아다녔다. 점점 같은 곳을 빙빙 돌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보이는 길 전부를 한 번씩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중간중간 같은 여행팀 일행들도 보였다. 그런데 우리 엄마만 감쪽같이 보이질 않았다. 남들은 여유있게 사진도 찍고 즐겁게 다니는데, 정신없이 엄마를 찾아다니는 내 모습에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어느덧 가이드가 말한 약속 시간이 가까워졌다. 이대로 엄마를 못찾으면 어쩌나 암담해하던 중 한 광장에 들어섰고, 갑자기 춤과 노래로 한창 들뜬 축제의 한 가운데에 이르렀다. 그때였다. 하얀 전통의상을 입고 춤추는 크로아티아 사람들 틈새에서 익숙한 실루엣의 동양인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


시끄러운 틈새에서 엄마를 힘껏 불렀지만, 분명 엄마는 나를 봤음에도 그곳에서 나오지 않고 계속 춤만 추고 있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나는 춤추는 인파 속을 파고 들어갔다.


“여기서 뭐해?!!”


결국 엄마를 억지로 끌고 나왔다. 엄마는 더 놀고 싶은데 왜 그러냐며 고집을 부리면서 내 손에 질질 끌려 나왔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나는 지금이 몇 시인 줄 아느냐고, 내가 얼마나 놀라서 찾았는 줄 아냐고, 이 근방을 몇 번이나 돌았는지 아냐고 엄마한테 소리를 질렀다. 그때만 해도 나는 엄마가 노는데 정신이 팔려 몰랐을 뿐 의도는 없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엄마는 적반하장식으로 나한테 더 성질을 냈다. 


“여기서 더 놀고 싶은데 왜 벌써 가야해?!! 벌써 가기 싫단 말이야!!”


난 거기서 조금 이성을 되찾고 목소리를 낮춰 차근차근 설명했다. 이렇게 여행객 한 명이 사라지면 가이드가 힘들어진다. 엄마를 못찾을 경우 일이 커진다. 가이드가 무슨 죄냐, 그리고 다른 일행들에겐 무슨 민폐냐. 그런데 돌아온 엄마의 대답은 황당했다. 


“만약 나 혼자 떨어져서 연락 안되면 대사관에 연락하면 되지. 내가 국제 미아 될 줄 알고?!”


정말 그때 솔직한 심정은 엄마를 버리고 오고 싶었다. 두브로브니크의 낭만은 사라진 채 우리는 길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보던지 말던지 소리소리 지르며 싸웠다. 그리고 다짐했다. 두 번 다시 엄마와는 여행하지 않겠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이후 두 번의 태국 여행을 더 함께 했고, 코로나19 기간 중단했다가 최근 필리핀 보라카이를 함께 다녀왔다. 작년 여름 휴가 때 처음 혼자서 태국 여행을 다녀왔지만, 맘 한 구석이 찝찝하고 무거운 돌덩이가 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여행 가방을 싸고 나설 때부터 좋은 곳을 보고 좋은 음식을 먹을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엄마였다. 


함께 다닐 땐 정말 안맞는다 싶으면서도 또 다시 함께 여행길을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세상 밖을 나설 때마다 누구보다 초롱초롱해지는 엄마의 눈빛과 표정이 마치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신기한 것을 마주한 아이의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 좋은 것들을 젊은 나는 오래 누릴 수 있지만, 점점 나이들고 약해지는 엄마에겐 더없이 소중할 수밖에 없기에. 그 마음을 나도 알고 엄마도 안다. 그래서 우린 싸우면서도 늘 함께 여행 가방을 싼다. 


망고와 망고스틴 같은 열대과일을 좋아하고, 물놀이를 가장 좋아하는 엄마의 여행 취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와, 그런 내가 화를 내고 짜증을 내도 언제나 기꺼이 함께 여행길에 나서주는 엄마. 나의 바람은 우리가 앞으로도 서로에게 가장 좋은 여행 파트너로 함께 세상 곳곳을 누비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가벼운 통장잔고에도 다음 여행 계획을 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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