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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원 Mar 26. 2024

무엇이 그리 두려운가

7년 만에 논문 쓰는 대학원생. 실은 박사 아닌 석사.


“주원 씨, 논문 썼어?”


2024년 새해를 맞이하며 목표와 할 일을 정하느라 분주하던 나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주어졌다. 


나는 7년 전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대학원 입학은 직업을 전향한 후 제일 먼저 실행한 대업이었다. 대학 시절 원하던 분야를 전공하지 못한 나에겐 항상 목마름이 있었다. 비전공자로서의 아쉬움과 갈증에 허덕이던 어느 날, 충동적으로 대학원 입학원서를 낸 덕분에 다시 캠퍼스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동기는 나 포함 4명. 3명의 동기들과 함께 대학원 생활을 시작했다. 


500만 원이란 한 학기 등록금을 직장인의 유리지갑으로 감당하기엔 꽤 벅찼다. 그래도 행복했다. 대학교에서 착실하게 공부하지 못한 아쉬움도 채울 수 있었고, 동기들과의 만남과 수다도 일상 속 즐거움이었다. 시험 기간엔 연차를 쓰고 도서관에도 갔다. 순간순간 20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행복했던 대학원 생활은 졸업이 아닌 수료로 마무리되면서 맘 한 구석 돌덩이가 되었다. 마지막 학기, 나는 논문을 완성하지 못했다. 동기 4명 중 제 때 논문을 완성하고 졸업한 사람은 단 한 명, 우리 동기 중 가장 어린 동생이었다. 다음 해엔 다른 한 명이 논문을 통과하고 졸업했다. 그다음 해엔 또 다른 한 명이 논문 대신 한 학기 수업을 더 듣고 졸업했다. 우리 대학원은 졸업을 위해 논문을 쓰거나, 6학점 수업을 더 듣고 졸업할 수 있는 선택사항이 있었다. 나는 반드시 논문을 쓰고 졸업하겠다고 버텼다. 중간중간, 다시 논문을 쓰겠다고 교수님을 찾아갔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중도 포기했다. 언젠가부터 논문만 떠올리면 머릿속이 답답해 외면해 버렸다. 사는 게 팍팍하다 핑계를 대며.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현주 언니를 만났다. 언니는 5년 전쯤 지역 모임에서 알게 됐는데, 한동안은 코로나로 가끔 전화 통화로 안부만 묻고 살았다. 그 사이 언니는 대학원에 다시 들어가 공부하고 있었다. 결혼 전 이미 중국에서 박사과정까지 공부해놓고 다시 석사과정을 밟다니. 언니가 대단해 보였다. 


그동안 못 나눈 대화를 서로 이어가던 중, 갑자기 언니가 물었다. 논문은 썼냐고, 대학원 마친 거냐고. 나는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로 언젠간 쓸 거라고 말끝을 흐렸다. 


“당장 논문부터 써. 여기저기 교양강좌 듣는 거 그만하고. 본인 커리어엔 그게 진짜 도움이 되는데 왜 쓸데없는 일만 벌이고 있어!”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걱정이 앞섰다. 논문 기한이 언제까지였더라?

언니는 내일 당장 학교에 전화해서 논문 제출 기한이 남았는지, 돈은 얼마나 내야 하는지, 필요한 절차가 무엇인지 확인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논문을 쓰는 게 어려우면 자기에게 참고문헌 목록을 정리해 보내라는 말도 덧붙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올해 안에 끝내라고. 


나는 갑자기 걱정이 앞섰다. ‘언젠간 써야지’ 생각만 했지, 논문 기한이 남았는지조차 확인도 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제출 기한을 넘겨서 불가합니다”라고 하면 어쩌지? 

‘어이구 바보야, 대체 넌 뭐 하고 사는 인간이냐!’  그저 나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오전 9시가 넘자마자 학교 행정실에 부리나케 전화했다. 아무도 받지 않는다. 방학이라 그런가 싶으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제발 논문만 쓰게 해주세요.’ 

나는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오전 11시가 넘은 후에야 담당자와 겨우 통화가 됐다. 


“원우님, 1년 남았네요. 수료생 몇 명 안 남았어요. 올해 두 학기 내에 논문 완성하셔야 해요. 한 학기 남으면 메일 보내드리는데, 그래도 일찍 연락해 주셨어요. 지도 교수님께 메일부터 먼저 보내세요.”


하아, 이 기가 막힌 타이밍이라니. 

전화를 끊자마자 너무나 기쁜 나머지 나는 이미 논문이 통과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절묘한 시점에 현주 언니를 만나게 됐고, 그 일을 계기로 정신을 번쩍 차리게 만들어 준 모든 상황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나는 그날로 당장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해 비밀번호부터 재설정하고, 참고 논문 검색에 들어갔다. 이후 지금까지 논문과 씨름을 벌이고 있다. 어느 날은 피곤하고, 어느 날은 바쁘고, 어느 날은 참고논문 한 장 펼치기 싫은 날의 연속이지만, 그 와중에 나는 한 줄씩 논문을 쓰고 있다. 그래도 힘이 들 땐, 졸업식 날 석사모를 하늘로 던지는 상상을 잠시 해본다.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졸업장을 받아보련다. 한여름 땀에 흠뻑 젖은 졸업가운을 입고 활짝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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