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의 모든 해외 여행을 파트너와 함께 했다. 그와 나는 성격이 많이 다르고, 취향도 다르며, 잠버릇도, 여행 스타일도 모두 다르다. 우리는 함께 여행을 할 때마다 한 번씩 크게 싸우기 일쑤고, 그리고 나선 두 번 다시 함께 다니지 않겠다고 서로에게 엄포를 놓는다. 하지만 냉전은 얼마 가지 못하고 봄눈 녹듯 이내 스르르 풀려 또다시 함께 여행 가방을 싼다. 그는 다름아닌 우리 엄마다.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알게 됐다. 엄마가 나 못지 않게 몽상가인데다, 낯선 사람과의 만남과 대화를 사랑하며,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 나이와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호기심이 강하고, 처음 보는 사람과도 기꺼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있다는 걸. 낯선 환경에서 막막할 때 소심해지기보다 기꺼이 모르는 이에게 도움을 요청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엄마라는 사실을. 나는 여행을 함께 하고나서야 엄마에 대해 더 알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만큼 대책없는 점 또한 우리 엄마의 모습 중 하나다. 7년 전쯤 함께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난생 처음 밟아보는 유럽이어서 우리는 자유보다는 안전을 택하기로 하고 단체여행을 예약했다. 가이드와 단체여행객 스무명 가까이가 8박9일간 동고동락하는 일정이었다.
유럽이 처음인 건 엄마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처음 보는 고풍스런 건물과 풍경, 평생 처음 와보는 낯선 나라를 걷는 설렘, 버스로 국경을 넘는 긴장과 신기함이 뒤섞여, 마치 말로만 듣던 곳을 처음 온 초등학생처럼 와!와! 거리며 들떠 있었다. 그 떨림은 두브로브니크에서 절정에 치달았다.
가이드는 사람들에게 그곳을 티비프로그램 ‘꽃보다누나’에 소개된 유명한 곳이라고 설명했지만, 사실 엄마와 난 그 프로그램을 본 적도, 관심도 없었다. ‘유명인, 연예인이 왔다간 곳’이라는 수식어에 심드렁한 우리는 그와 상관없이 바다가 그토록 진한 코발트 빛깔을 지닐 수 있다는 것, 하늘도 미세먼지 하나 없이 말끔하고 시원할 수 있다는 것, 바다를 배경으로 벽돌색 건물로 둘러싸인 도시 전체가 영화의 배경이라도 된 듯 고풍스럽고 낭만적일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떨렸다. 하지만 설레던 것도 잠시, 어느 순간 옆을 돌아봤을 때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가이드가 허락한 자유시간은 한 시간 남짓. 갑자기 엄마를 잃은 나는 낯선 타국 골목길에서 엄마를 찾아나서야 했다. 방향감각이 둔한 나는 한 번 갔던 장소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나는 내가 미아인지, 엄마가 미아인지 헷갈려하며 어떻게든 허락된 시간 안에 엄마를 찾기 위해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맸다. 가슴 떨리던 낭만은 어느새 골목 어딘가에 놓고 온 기분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엄마는 사라지기 얼마 전부터 지나치게 흥분돼 보였다. 내 눈을 피해 도망간 게 틀림없었다.
나는 이 곳이 갔던 길인지, 아닌지 계속 헷갈려하며 그 근방을 몇 번이나 돌아다녔다. 점점 같은 곳을 빙빙 돌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보이는 길 전부를 한 번씩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중간중간 같은 여행팀 일행들도 보였다. 그런데 우리 엄마만 감쪽같이 보이질 않았다. 남들은 여유있게 사진도 찍고 즐겁게 다니는데, 정신없이 엄마를 찾아다니는 내 모습에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어느덧 가이드가 말한 약속 시간이 가까워졌다. 이대로 엄마를 못찾으면 어쩌나 암담해하던 중 한 광장에 들어섰고, 갑자기 춤과 노래로 한창 들뜬 축제의 한 가운데에 이르렀다. 그때였다. 하얀 전통의상을 입고 춤추는 크로아티아 사람들 틈새에서 익숙한 실루엣의 동양인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
시끄러운 틈새에서 엄마를 힘껏 불렀지만, 분명 엄마는 나를 봤음에도 계속 춤을 출 뿐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나는 춤추는 인파 속을 파고 들어갔다.
“여기서 뭐해?!!”
결국 엄마를 억지로 끌고 나왔다. 엄마는 더 놀고 싶은데 왜 그러냐며 고집을 부리면서 내 손에 질질 끌려 나왔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나는 지금이 몇 시인 줄 아냐고, 내가 얼마나 놀라서 엄마를 찾았고, 이 근방을 몇 번이나 돌았는지 아냐고 엄마한테 소리를 질렀다. 그때만 해도 나는 엄마가 노는데 정신이 팔려 몰랐을 뿐 의도는 없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엄마는 적반하장식으로 나한테 더 성질을 냈다.
“여기서 더 놀고 싶은데 왜 벌써 가야해?!! 벌써 가기 싫단 말이야!!”
너무나 의외의 말에 갑자기 냉정을 찾은 나는 목소리를 낮춰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여행객 한 명이 사라지면 가이드가 힘들어진다. 엄마를 못찾을 경우 일이 커진다. 가이드가 무슨 죄냐, 그리고 다른 일행들에겐 무슨 민폐냐. 그런데 돌아온 엄마의 대답은 너무나 황당무계했다.
“만약 나 혼자 떨어져서 연락 안되면 대사관에 연락하면 되지. 내가 국제 미아 될 줄 알고?!”
그 말을 들었을 땐 솔직히 엄마를 버리고 오고 싶었다. 두브로브니크의 낭만은 사라진 채 우리는 길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보던지 말던지 소리소리 지르며 싸웠다. 그리고 다짐했다. 두 번 다시 엄마와는 여행하지 않겠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이후 두 번의 태국 여행과 최근 필리핀 보라카이를 함께 다녀왔다. 작년 여름 휴가 때 처음 혼자서 태국 여행을 다녀왔지만, 맘 한 구석이 찝찝하고 돌덩이가 있는 듯 무거웠다. 여행 가방을 싸고 나설 때부터 좋은 곳을 보고 좋은 음식을 먹을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엄마였다.
함께 다닐 땐 정말 안맞는다 싶으면서도 또 다시 함께 여행길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세상 밖을 나설 때마다 누구보다 초롱초롱해지는 엄마의 눈빛과 표정이 마치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신기한 것을 마주한 아이의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 좋은 것들을 젊은 나는 오래 누릴 수 있지만, 점점 나이들고 약해지는 엄마에겐 더없이 소중할 수밖에 없기에. 그 마음을 나도 알고 엄마도 안다. 그래서 우린 싸우면서도 늘 함께 여행 가방을 싼다.
망고와 망고스틴 같은 열대과일을 좋아하고, 물놀이를 가장 좋아하는 엄마의 여행 취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 그런 내가 화를 내고 짜증을 내도 언제나 기꺼이 함께 여행길에 나서주는 엄마. 우리의 바람은 앞으로도 서로에게 가장 좋은 여행 파트너로서 함께 세상 곳곳을 누비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가벼운 통장잔고에도 다음 여행 계획을 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