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11월 런던출장썰
세 번씩이나 이 거지같은 섬에 버려지다니
런던이 싫고, 일하는 것도 싫은데, 런던에서 일하는 거지 같은 사태가 발발. 어쩌다 런던을 극혐하게 됐는고- 생각을 좀 해봤는데 몇 가지 트라우마 유발 요인들이 있는 듯.
고교 시절. 암울한 급식기. 그럭저럭 잘한다고 생각했던 영어 실력이 인정사정없이 벽에 부딪히고, 어릴 적 영어권 국가에서 거주했던 많은 학우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걸 보며, 오오 나 영어 잘 못하는구만-하고 일찌감치 포기한 바. 그래도 잼민이 때부터 딱히 잘하는 게 없어서 오직 공부만 팠던 터라 축적된 절대 학습 시간이란 게 있었기에, 당시 내신 영어 과목이나 모의고사 외국어영역(이었지 그땐)에서 요구된 1등급 하한선에 점수를 맞추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단 말임. 수능 영어를 정말 '영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영어를 그럭저럭 한다는 건 절대 좋은 일이 아님. 실력의 절대적인 부족함을 스스로 알고 있으나 주변에서는 썩 잘하지 않나-라며 기대치를 높게 잡아주니까. 이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겠지만, 애초에 그런 유형의 인간은 못 되기 때문에, 영어 좀 하냐?-못해요-에이 잘하지?-못한다고요-겸손하고만?-아니라니깐-실력 좀 볼까?-아니 잠깐만요(근데 또 시킨 걸 어느 정도는 해낸다는 게 함정)의 개미지옥에 빠지고 마는 거임.
학부 시절. 혼돈의 학식기(혹은 고졸기). 미국 문리대(LAC)를 모델로 예수회 사제가 설립한 모교는 전통적으로 영문학이 강성이고 대단히 상징적인 교수진 아래 재학생의 영어 실력도 뛰어나다…고 하는데, 본인 포함 영어를 그닥 잘 못하는 학우들도 분명 존재했던 것 같음.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으나 당시 수시라는 다소 기형적인 대입 제도를 통해 제 실력으로는 못 들어갈 학교에 운 좋게 들어갔는데, 전교생 공통 1학기 필수 교양 영어 성적은 B 수준이었지 아마. 수강 신청 대참사로 인문대 동기들이 주로 선택한 수업에서 튕겨나간 결과, 영어보다 C언어가 낫다는 오타쿠 컴공과부터 한국말보다 영어가 편한 재외국민특별전형 불문과까지 다채로운 학과 편성을 자랑하는 오전 9시 수업에 강제 배정된 탓에 내 영어 수준이 정말 중간은 가는 줄 알았는데 웬걸. 영문과 원어민 교수의 강의에서 다들 웃을 때 나만 웃지 못하는 대참사를 겪은 후 다시금 스스로에 대해 겸손해질 수 있었음. 평균 미달의 어중간한 영어 수준이, 학부시절 내내 그닥 노력도 않았으니 당연히 늘지 않는 실력만 탓하는 무능함이, 은밀하게 거대하게 외국어에 대한 혐오를 조장한 듯. 영어를 못하니 영어권 국가들과 외국인도 싫은 건 당연지사.
끊임없이 런던과의 본격 체험판 악연은 학부생 때 한 번쯤은 계획적으로 실행하는 장기 유럽 여행으로 시작된 게 틀림없음.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떠올려보면 아파야 청춘인지라 끊임없이 열정을 불사르며 사서 고생을 못해 안달 난 20대들이 발언권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지금처럼 각자의 사정이 반영된 서로 다른 속도에의 이해나 죽도록 무리할 필요 없이 워라벨을 맞추려는 느긋한 태도, 그리고 번아웃에 대한 적극적인 우려가 있었을 리가. 활화산처럼 폭발적으로 식식대며 활동하는 선후동년배들을 -오오 불카누스 오오- 보기만 해도 피곤함이 밀려오곤 했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애초에 용암 자체가 흐르지 않았던 뒷동산은 젊음과 인생을 낭비하는 게으름뱅이라는 지탄의 대상. 그리고 첫 유럽 여행의 동행은 열정이란 개념을 그림으로 그린 듯한 인물이자, 자기 성향과 다른 이를 얕잡아보는데 결코 주저함이 없었던, 급식이 시절부터 웃어른 같았던 오랜 벗.
첫 단추부터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는 이 여행의 첫 입국지가 바로 런던이었단 말임. 애초에 영국이란 섬나라에 썩 관심이 없었고 유로화에 추가로 파운드 환전을 따로 해야 하는 게 퍽 귀찮아, 그냥 대륙 본토만 돌아다니면 어떠할지 제안해 봤지만 당연히 씨알도 안 먹힐 일이었음. 막 분출한 용암처럼 뜨겁기 그지없는 동행인은 이왕 유럽에 진출한 김에 최대한 많은 국가와 도시를 방문해 현지인인 척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다 하고 싶은 듯했고, 아마 그 계획 중에는 해저로 연결된 유로스타를 타고 영국과 대륙을 횡단하는 것도 있었던 모양. (이외에도 밀라노에 있는 개구리 정원을 피렌체에서 찾는 대환장파티 등등) 더불어 절약정신의 표본과도 같았던 그는 특히 식비와 숙박비마저 절감하고자 애쓰는 가성비파였는데, 런던이 첫 타가 된 것도 당시 그렇게 플랜을 짜면 항공권이 약간 저렴했기 때문이었을 공산이 큼. 그때 나는 선택을 해야만 했는데, 격렬한 논쟁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내고 내 취향을 반영하느냐, 아니면 귀차니즘의 뛰어난 대변자답게 동행자가 하자는 대로 따라 편의를 도모하느냐 사이에서 후자를 선택. 결국은 내가 판 내 무덤.
마음에 드는 도시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깨끗한 숙소에서 편안하게 쉬는 느긋한 일정 따윈 당연히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바. 런던부터 반강제로 시작된 내돈내산 강행군은 그 도시의 이미지를 다소 삐딱하게 각인시키기 충분했음. 그 와중에도 대영박물관과 테이트모던에서 본 작품들은 쥐뿔도 아는 게 없던 그때도 충격적일 만큼 인상적이었고 꽤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 현재의 전공에 어마무시한 영향을 미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 다음은 타의에 의한 EPL 직관.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던 SON이 영국으로 넘어가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함에 따라 그의 홈경기를 보기 위한 목적지는 더 이상 쾰른/레버쿠젠이 아닌 토트넘의 연고지 런던으로 변경. 솔직히 쾰른은 중부 유럽 국가들 중 여러모로 긍정적인 인상을 남겼던 독일에서도 특히 좋아했던 도시라 아쉽기 짝이 없었음. 사실상 런던 여행이라기보다 프리미어리그 투어에 가까웠던 일정이라 런던에 대한 혐오감이 딱히 심하진 않았음. 당시에 토트넘이 공사 중인 구장 대신 홈으로 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경기 내내 풀타임으로 날아다니는 SON을 직관한 건 축덕이 아니더라도 꽤나 기억에 남는 경험. 에이스 호텔 체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쇼디치의 에이스호텔 런던에 숙박한 것도 좋았고, 자주 식사한 플랫아이언은 늘 그렇듯 중간 이상은 했고, 이밖에는 글쎄, 스톤헨지 가느라고 들른 솔즈베리도 그럭저럭 괜찮더라 정도? 이만하면 런던도 괜찮지 않나 싶었는데 갑자기 2020년 에이스호텔 쇼디치가 영구 폐쇄를 되고, 리버풀가 인근의 파란 외관이 무척 예뻐서 좋아했던 스벅도 없어지고, 아무튼 런던에서 그나마 좋아하던 장소들이 자꾸 사라지는 걸 목도한 후 다시 한번 정뚝떨.
아무튼 런던에 또다시 갈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난데없이 업장 요청(이라 쓰고 강요라 읽는) 장기 출장. 올 상반기부터 꾸준히 언급이 있었음에도 근무 정황과 개인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어필하며 요리조리 피하던 중이었음. 실제로 잘 얼버무리며 도망 다녀서 실로 올해 안에 나갈 일은 없겠다고 마음을 놓은 순간 덜컥- 명령 하달. 2022년 10월, 런던 분사로 출장 확정. 미친 듯 극딜을 넣어 석 달을 두 달로, 두 달을 한 달로 줄이는 데는 가까스로 성공했지만, 어쨌거나 세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버려지다니. 아주 거지 같이 짝이 없음.
(딱히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사진·본문 불펌 안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