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지요 카이 유후인에
카이 유후인 (界 由布院)
너무나 많은 일을 겪은 연말-연초를 보내고 간신히 정신을 차렸더니 문득 내 눈이 이런 걸 보고 있었음.
아니! 이건! 내가 좋아하는 (모내기 철의) 계단식 논이잖아! 너무나 개취인 풍경에 처음엔 헛것이나 빅데이터의 농간에 의한 합성짤을 보는 줄 알았음. 근데 아님. 진짜였음. 옆나라 큐슈 지역의 유후인에 새로 조성된 호시노야 계열의 카이 리조트, 카이 유후인(界 由布院). 2022년 8월 오픈해 아직 첫 돌도 맞지 않은 초신성의 온천 료칸. 도랏!
당장 예약 고고... 수순을 밟으려다 문득 떠오른 생각. 허. 계단식 논이렸다. 그럼 계절마다 풍광이 사뭇 다를 것이고, 내가 꼭 보고 싶은 건 모내기 전후의 물이 가득 찬 논과 푸릇푸릇한 신록. 그렇다면 언제가 적기인가. 무턱대고 갔다가 황금빛 벼 이삭이 무성하거나 추수 이후 황량한 풍경을 맞닥뜨리면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을 터. 그렇다고 카이 유후인과 직통을 하기에는 일본어가 그렇게까지 유창한 건 아니고 무엇보다도 귀찮.
그런데 기존에 이용해 온 여행컨설팅업체에서 카이 유후인 프로그램이 새로 업데이트된 것을 발견하고 이건 운명임을 직감. 바로 의뢰를 넣어 모내기 철의 계단식 논 풍경(이라 쓰고 논에 물이 가득해 파란 하늘이 비치고 갓 모내기를 마친 초록색 아기 벼가 심긴 채 주변에는 초록초록 신록이 가득한 풍광이라 읽어야 함)을 볼 수 있는 시기에 대해 문의.
담당 컨설턴트가 카이 유후인과 미팅까지 진행한 후 5월 하순-6월 초순이 딱 그런 모습임을 파악함.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45채의 숙소 가운데 단 두 채뿐인 계단식 논 중간의 독채에 묶는 것이었는데, 굉장히 인기가 높은 숙소인 까닭에 매우 험난하고 신속한 과정을 거쳐 5월 중 유일하게 남은 27일부터 29일까지 2박 예약에 대성공.
오직 카이 유후인의, 카이 유후인에 의한, 카이 유후인을 위한 일정이기에, 출도착 시일은 물론 항공권 예약까지 전부 카이 유후인의 계단식 논 독채 일정에 맞춤. 담당 컨설턴트가 3일씩이나 무얼 하려냐고 우려하기에 "카이 유후인을 할 것"이라도 답변. 카이 유후인의 계단식 논 풍광 속에서 온몸으로 모든 것을 겪어 주겠어- 라는 의지.
카이 유후인의 건축과 인테리어도 굉장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일본 목조 건축의 거장 쿠마 켄고(隈研吾)의 작품. 이쯤 되니 카이 유후인과는 이번이 아니었더라고 언제 어떻게든 인연을 맺었겠구나 싶었음. 어쩜 이토록 좋아하는 요소들을 한 데 구축해 둔 곳이 생겼는지. 정말이지 카이 유후인은 개취의 디즈니랜드임. (농담 아님)
그렇게 5월 하순의 일정을 2월 초반에 모두 예약 완료해 버림.
(딱히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사진·본문 불펌은 안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