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어른들이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요즘 그린 마더스 클럽이라는 드라마를 보다 예전에 SNS에 올라온 글을 하나 읽었던 게 생각이 났다. 자신의 잘 나가는 배우자가 아직은 부족한 친구들의 재력이나 상황에 맞춰 그들과의 만남이나 경조사에 옷과 가방을 바꾸어 가는 모습에 너무 멋있다고 느끼는 내용이었다. 그 얘기를 읽는 그날 이후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려면 돈이 많아야 했고 자신을 낮춤으로서 보이는 배려심이 돋보여야 했다. 반대로 나는 가진 게 없기에 있어 보이고 싶고 그러기엔 보이는 게 전부 같아 신념을 거스르는 것 같아 짝퉁 구입이나 거짓말은 못하겠더라.
그리고 이런 딜레마가 가장 크게 일어나는 곳은 사실 '부부 동반 모임- 결혼한 친구들과 (그들의 배우자들과)의 모임'이다.
부부 동반 모임이라고 하면 어색하겠지만 이러한 형태를 띤 모든 모임들을 부부 동반 모임이라 표현하겠다.
이십 대 초중반 우리의 모임은 남자 친구 혹은 여자 친구를 데려오는 것에 그친다. 가끔 상대가 바뀌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여서 술 마시고 노는 게 다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나를 포함한 친구들의 결혼으로 하나둘 배우자가 생기기 시작하니 그 형태가 비슷하면서도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아마,
단순히 술이 당겨서 혹은 쇼핑을 하고 싶어서가 아닌 날을 잡고 청첩장을 받거나 돌려야 하는 자리가 우리에게 주어진다. 수많은 전 여자 친구 남자 친구들을 뒤로한 채 그리고 00의 남자 친구가 아닌 예비 신랑으로 다시 마주하는 자리는 생각보다 어른스러움을 요구하면서도 우리의 돈 계산이 시작된다.
더치페이도 아니고 누가 쏘는 날도 아니다. 그들의 정산 금액을 눈여겨보고 우리의 추억과 애정의 시간을 살피며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의 조율 하에 그리고 개인적인 판단을 더해 축의금을 들고 결혼식에 간다. 가는 시간 동안에도 금액을 다시 생각해본다. 너무 적을까 너무 많은 걸까. 이후의 집들이 선물까지 고려하면 신랑 신부와 덩달아 몇 달을 보내게 된다. 그렇다. 우리의 우정 사이에 처음으로 큰돈이 개입을 했다.
우리는 슬슬 시댁과 친정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감추고 싶은 것 혹은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한다. 전셋집부터 집을 매매하는 것까지 우리는 어느 정도를 공유해야 하는지 곱씹어 보고 입 밖으로 꺼낸다. 어디까지가 배려일지 혹은 어디까지가 선일지를 가늠해본다. 더 이상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사춘기 소년들의 부모님과의 갈등이 아닌 두 집안과 나의 가정의 문제를 혹은 자랑을 넘나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는 투명할 필요가 없다. 적당한 자랑과 적당한 고민은 서로에게 적당한 선을 지켜준다. 그렇다. 우리 사이에 남의 집 가정사가 개입을 했다.
그녀의 그의 애인이 아니다. 그들의 배우자가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의 어색한 장벽이 어느 정도 극복하게 되면 우리는 착각한다. 우리는 그들의 배우자와 친한 관계인가? 우리의 우정이 우리들의 배우자들과도 공유되는 것인가? 우리의 만남에는 이제 그들이 함께한다. 누가 돈을 내냐에도 기싸움이 벌어진다. 서로 밥 값을 내겠다며 싸우는 우리의 우정 사이에 남편들도 한 몫한다. 때로는 원치 않아도 합석한다. 그렇게 모두가 대화를 하고 있으면 우리의 관계의 선이 어디인지 헷갈린다. 농담의 선은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지. 그들과 우리는 다 같이 친해질 수 있는지. 그렇다. 우리 모두의 우정은 분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때론 농담 한마디로도 골칫거리가 된다.
우리는 서로의 SNS를 넘어 서로의 배우자의 SNS에도 태그가 되기 시작한다. 혹은 팔로우를 해야 할지 애매한 상황이 온다. 이럴 때면 SNS를 안 하는 척하거나 상대가 안 하길 바라거나 혹은 살갑게 지내거나 등의 여러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직장 동료와의 계정 팔로우를 하는 듯한 조금은 어색하면서도 찜 짐 한 기분으로 팔로우를 할 때면 잘한 건지 다시 고민하게 된다. 그렇다. 우리의 사생활이 가장 친한 친구의 가장 애틋한 관계에게 하지만 서로는 아직은 아닌 관계에게 오픈되었다.
우리는 이제 재력도 학력도 취향도 더 달라지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만난 친구들과의 소중한 추억과 애정으로 쌓은 관계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이러한 다른 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앞으로도 우리의 자동차, 집, 가족의 형태 차이는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혀 올 것이다. 나도 모르게 '우리'를 평가한다. 그들을 마주할 때마다 얻어지는 정보들로 그들을 재보기도 하고 스스로를 평가하며 부러움 혹은 자랑스러움을 다양하게 느낀다. 우리는 우리의 개인적인 신념으로 결혼식을 하지 않았다 생각했는데 막상 결혼식을 다니다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좋은 차를 필요로 하지 않았는데 가지고 싶어 진다. 이러다 보면 이 모든 관계가 지겹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다. 우리의 감정이 소모되고 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같이 놀던 학창 시절과 20대 초중반을 기억하며 그리워하면서도 지금까지 함께해온 그만한 애정이 있다는 것도 새삼 놀란다. 그렇게 우리는 다 같이 알고 있던 작은 사회에서 그보다 더 큰 사회로 자연스럽게 걸어간다. 2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되어버린 우리의 모임.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차이와 다름을 우리가 만들어온 우정에서 비롯되었음을 느끼기 시작한다.
나쁘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도 스스로 찌질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들의 집이 우리의 집과 비교돼서. 그들이 가진 차가 혹은 돈 많은 그 시댁이 가끔 부러워서? 이런 글을 쓴 나는 진심 어린 우정이 없는 것인가.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한 후 나의 배우자에게 미안한 감정이 드는 건 당연한 걸까.
SNS에서 읽은 그 남자의 배우자 같은 여자가 되고 싶었지만 아직까지 그다지 내세울 게 없어서 배려할 것이란 게 많이 없게 느껴진다. 혹은 그 배려마저도 판단인 거 같아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생각이 너무 많아지는 부부 동반 모임.
그리고 이런 고민이 많은 하루.
술 먹고 전화 온 또 다른 결혼한 친구가 "난 네가 부러워."라고 말하는 이유를 잠잠히 생각해 본다.
우리는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을까. 혹은 또 다른 판단 기준이 생기고 있는 걸까.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