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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가림 Sep 13. 2022

뚜벅이 부부, 5년 만에 150만 원짜리 중고차를 샀다

그동안 차 없이 어떻게 살았지?

인터넷만 봐도 집 있고 차있고 혼수 해오는 결혼 이야기가 너무 많다. 하지만 20대 초반에 '그냥 결혼한' 우리에게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 목록이었다. 결혼은 감염처럼 전염된다 했나. 주변의 친구들도 우리 따라 집 없이 차 없이 결혼하는 친구들이 늘기 시작했다. 사실 알고보면 이런게 지극히 평범한 다수의 결혼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결혼은 월세로 시작해서 낡은 집 전세까지 왔고 뚜벅이에서 150만 원 차리 중고 SM3가 생겼다.


이제는 장을 어떻게 보러 다녔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불과 몇 달 전인데.

차가 생긴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에코백에 둘이서 장본 것들을 나눠 들고 10-20분씩 걸어 다니며 그 많은 양을 소화했다. 가끔은 짧은 자동차 렌트를 하여 큰 짐을 싣고 옮기고 장을 보고 차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을 최대한 시간 안에 해내었다. 여행이 가고 싶으면 렌터카와 보험료를 비교하였고 여행의 대부분의 지출이 렌터카에서 나왔다. 고양이가 병원을 가야 하는 날이면 택시기사님께 전화해서 고양이를 태울 수 있냐고 묻고 차를 구하거나 차를 렌트했다. 이처럼 가끔 렌트하는 차는 비용도 들지 않고 포인트도 자주 쌓여서 차의 필요성에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150을 주고 얻게 된 오래된 SM3는 모든 기준을 바꿔버렸다. 낡은 차가 어쩜 이렇게도 쌩쌩 잘 달리는지 여태까지 잔고장 없이 너무나도 잘 타고 있다. 늦은 저녁에 먹고 싶은 게 생겨서 장을 보러 갈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날씨가 좋은 날 가까운 공원에 바로 갈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일이 끝나면 남편이 이벤트처럼 차를 끌고 와서 나를 데리러 온 하루는 너무 편하고 행복했다.


남편은 고속도로 위에서 달리는 람보르기니랑 속도가 같다며 신나 했다. 반면 람보르기니는 비슷하게 달리는 게 싫은지 붕 하며 앞질러 가버렸다. 그래도 남편은 너무 좋다며 행복해한다.


차를 천천히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뚜벅이로 데이트를 하고 결혼 후에도 손수 장본 짐을 들고 다니며 도란도란 이야기했다.

렌터카니까 차 한번 빌리면 여행의 폭도 넓어졌다. 기회다 싶어 가보고 싶은 곳 먹고 싶었던 곳은 다 들릴 수 있었다. 결혼 후에도 몇 시간씩 길을 걸으며 수다를 떨었다. 발이 아파도 택시비 아깝다며 안 탔지만 쉬자며 맥주는 마시러 펍으로 들어갔다. 그 돈이 결국 그 돈이 되었지만 어쩌다 발견한 예쁜 카페와 음식점들이 참 많았다. 무엇보다 원하면 맥주 한잔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그렇게 지내다 생긴 우리의 차는 또 다른 경험을 하게 해 준다. 큰 매장을 가고 멀리 여행을 즉흥적으로 갈 수 있고 고양이들을 언제든 병원에 데려갈 수 있다. 드라이브 가자며 그냥 나갈 수도 있고 신나게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그리고 그저 차가 생겨서 하루 종일 같은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하지만 정말로 자동차가 급하지 않았던 게 다행이었다.


너무 많은 추억이 우리의 시간을 알차게 해 주었다. 월세에서 전세로 옮겼을 때의 기분처럼 홀가분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의 기준이 당장 좋은 차가 아닌 것도 좋다. 물론 여유가 생긴다면 분명히 더 좋은 차로 바꾸겠지만 천천히 소유하려 하고 차곡차곡 성장해나가는 우리 같아서 좋다.




메인 사진 제공: 다음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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