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엄마 등판
나는 오늘도 소리 지르고 화를 낸다.
역시나 요인은 타인에 있다
정확히 말하면 '타인을 인식하느라 스트레스받는 나'이다.
어린이집 하원 후 동네 놀이터에서 한참 놀던 중이었다.
아들은 이제 그만 집에 들어가고 싶고
딸은 좀 더 놀다 가고 싶단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그 사이에 딸의 어린이집 친구가 지나가다가 세운이를 발견하고는
같이 놀자며 놀이터 전방으로 뛰어든다
나는 불편해진다
모르는 아이 엄마와 어설프게 자리한 그 자체가 불편하다
놀이터가 시시해진 아들은 집에 가자고 연거푸 엄마를 재촉한다
여기까지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점점 말의 강도가 세진다
"아 집에 좀 가자" "엄마 집에 갈래"에서
"동생 놓고 가" " 동생 버리고 가"
결국 "동생 죽었으면 좋겠어"
이걸 어떻게 그냥 놔둘 수가 있겠는가,
물론 저 말의 속뜻은 "집에 가서 티브이 보며 간식 먹고 싶다"인 것인데
안 들어주니 점점 더 세게 말하는 것이다
고집쟁이 세운이가 그런 말에 반응할 리가 없다
그저 좋다고 지 친구와 위험하게 미끄럼틀 위를 뛰어다닌다
나는 세운이에게 그만 가자고 몇 번을 사정해 보고
짜증 내는 세로를 어느 정도 달래 보다가
슬슬 화딱지가 난다
엄마 말은 개똥처럼 안 듣는 세운이와
무차별하게 험한 말을 뱉는 세로 때문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그렇다.
나만 있는 것이라
세운이 친구의 엄마가 근처에 있기 때문에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이제 폭발하기 전 단계이다
얌체 세운이는
놀이터에서 오빠가 협박하면서 " 더 이상 네가 해달라는 거 아무것도 안 해준다"
라는 말을 기억하고 "오빠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하고 오빠를 끌어안아준다
그러면 대인배 세로는 그새 마음을 풀고 "괜찮아" 라며 서로 눈 맞춤을 하고
이에 놓칠세라 "오빠, 그럼 내가 해 댈라는 거 이제 해 줄거지~?" "응 그럼 "
10분 전에 밀어 재끼던 모습, 대체 어디 간 건데?
문제는 나다.
화가 안 풀린다
집에 오자마자 들고 있던 가방을 내팽개 치는 퍼포먼스를 하고
간식 따위 주지 않겠다며 윽박지르고
분위기를 아주 차갑게 얼려버린다
괴물엄마의 쇼타임
문제는 '아 이건 너무 과한데'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계속 괴물의 꼭두각시놀이에 몸을 휘젓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아까 놀이터에 우리만 있었다면
강한 어조나 행동으로 세운이를 데리고 왔을지언정
돌아와서는 평소와 다름없이 아이들을 대했을 텐데라고 인지한다
내 속에 콤플렉스 혹은 눌려있는 잠재의식 속 자격지심이
훨훨 날개치도록 만든 '타인의 시선'에서 아직도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ㅣ
어렸을 때 탈없이 사랑받고 자라왔고
내가 못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에 집중하며 살아왔다
'나 정도면 괜찮치' 하는 자뻑도 있다
학창 시절 소심하여 아는 답도 손들고 대답하지는 못했지만
대학에서 밴드 보컬을 할 정도로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하는데 부끄러움은 없었다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 때 전교생 앞에서 자기주장 발표회 2등 (너무 웅변톤이라고 박빙의 승부 끝에 2등) 한 경험도 있고 심리학에서 말하는 '사회불안'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식당에서 "깍두기 좀 더 주세요"는 어렵다. → 이건 이제 좀 극복한 것 같음
회사 후임이 실수하면 따끔하게 말할 수 있는 카리스마는 없다
유독 내 아이나 가족에게만 심한 말로 상처 주는 것은 그들을 '나'와 동일시하기 때문일 것이고
그들(나)의 행동이 성에 차지 않을 때 내안의 괴물이 심하게 꿈틀거린다는 것은 알겠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지 않아도 인지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존재하고 있을 때 더욱더 말이다
타인이 문제인가, 내가 문제인가,
아이들이 문제인가, 나의 가르침이 문제인가,
무엇을 고쳐나가고 어떤 부분을 자각하고 끌어안아야
아이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을지 나름 고민하는 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