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부사이 돈 가지고 치사하게 굴순 없지

D+30

by 세로운

한 달이 지났다.

한 시간 반 거리를 매일 지하철로 출퇴근하던 사람이 집에서만 점심을 먹은 지 딱 한 달.

그 사이 그는 혼자서 안방 도배를 했고 정리되지 않았던 작은 방 책상 위를 말끔히 하고 아무렇게나 물건을 올려두던 주방 수납 장 위를 단정히 치웠다.

그리고 정화 작업이라며 되게 뿌듯해했다.

여전히 성실하고 부지런하다.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늦게 자고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

집도 매일 깨끗이 치워 놓는다

그런데 돈은 못 번다.


오랜 기간 남의 눈치 보며 평일을 메여 살았으니 리프레쉬 휴가라도 떠나야 할 것 같은데 그럴 수가 없다.

현실이란 그렇게 맘 같지가 않다




우리 부부는 돈 관리를 각자 했었다.

남편이 쓰는 모든 돈은 다 남편 지갑에서 나갔고 사는 집 담보 대출금을 갚는 건 남편

나와 자녀들(올해 초3, 만 4세)이 입고 쓰는 건 내 지갑. 생활비도 내 지갑. 여행도 거의 내 지갑.

주말에 트레이더스나 같이 장을 보면 남편 카드를 썼다.

누가 그러자고 한건 아닌데 그래도 살림을 하는 건 나라서, 생활비나 자잘하게 신경 쓰는 비용은 내가 벌어 내 가 쓰게 된 것 같다.


남편이 직장에 나가지 않자 남편의 소비는 줄었고 반대로 나는 늘었다.

집에서 먹는 밥이 많아졌고 장 보러 가서도 이제 내 카드를 쓰라고 한다.

은근슬쩍 무임승차 하는 건 아는데

그래도 치사하게 뭐라 할 수는 없다.

이제까지 서로 돈에 대해 묻지 않고 쿨하게 살아왔는데 갑자기 한 푼 두 푼 따져야 되겠는가?


되려 나는 내가 모은 돈을 남편에게 투자금으로 줬었다.

재작년인가 한참 투자 잘된다고 자랑할 때 말로는'경거망동' 하지 말라며 면박을 줬지만

그래도 그에게 3천만 원인가를 준 것 같다.


이번에 보험 재설계를 받아 해지 환급금으로 천만 원인가 들어왔는데

남편이 눈을 번뜩이며 자기에게 달라기에 삼백만 원 보내줘 버렸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속이 부글부글 하다.

어제는 뭐 그래도 투자가 잘됬다면서 수익이 났네 하는데

그 돈 나는 뭐 볼 수나 있는 건가?

내가 투자한 것에 대해서 이자는커녕 원금 회수는 되는 거냐고?


웃긴 건 퇴사(휴직) 한 사실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기로 해서

(다들 퍽이나 잘했다고 할걸 알기에...)

이건 나와 남편만의 비밀이다

아이들도 아빠는 회사를 가는 줄 안다.


아? 사무실을 가긴 간다.

역 근처에 공유오피스를 얻어서 2주 전에 입주를 했다

전문 트레이더 하시겠다고 노트북도 새로 사고 키보드에 장비 싹 갖추고

집에서 해도 충분하겠고만 그건 안된단다

그래.... 여름이면 에어컨 나오는 거기가 이득이겠지...=3


KakaoTalk_20250324_150443092_02.jpg 3월에 오픈한 공유오피스에 바로 입주, 모든것이 운명이라나 ~



가만 보면 내 속이 속이 아닌데

그래도 서운할까 자존감 떨어질까 잔소리도 못하고 그냥 둔다.

뭐 알긴 하냐고!



여유와 미래 계획으로 똘똘 뭉쳐 전진하는 그와

사십 평생 처음으로 가계부를 쓰며 속으로 곪아가는 나


우리는 부자가 될 수 있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가 먼저 그만두려고 했는데 남편이 선수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