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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guri Sep 06. 2021

작은 시작은 도시락에서부터

본격 보기 좋은 떡 먹기도 좋은 떡 만들기

일상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아침에 시원하게 먹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신호에 맞춰서 바로 건너는 횡단보도 타이밍 맞추기,

일찍 일어나서 멍 때리면서 침대에서 뒹굴다 일어나기 등등.. 

나는 어려서부터 성공에 대한 큰 야망이나 욕망이 들끓지도, 커다란 행복을 뭉게뭉게 꿈꾸지도 않았다. 인생에 권태를 자주 느끼고 앞으로 달려가자는 그런 인생설계에 큰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밤마다 삶이 허망했고 건조했다. 하지만 아침해는 매일 뜨고 시간은 흐른다는 기본 이치에 순응하며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내가 어떻게 하면 일상에서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지 연구했고 그 결과 흔히 말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내 인생철학이 되어 버렸다. 




"우리 점심 도시락 싸올까?"


초등학교 때 잠깐 점심 도시락을 싸온 것 빼고 일상에 도시락이라는 존재는 대부분 소풍이나 나들이 갈 때에

먹을 수 있었던 일종에 이벤트였으므로 단어만 들어도 뭔가 두근두근 설레는 기분을 주곤 했는데

막상 먹을 일이 그렇게 크게 없자 그 욕망이 내심 차곡차곡 쌓이다가 대학교 때 점심을 맨날 사 먹게 되는 것을 핑계로 대학 친구들에게 점심 도시락을 권유했었다. 물론 작심삼일도 되지 않고 젊은 혈기 밖에서 뛰 다니느라 구석에서 도시락을 까먹는 건 저 먼 목표로 사라졌지만.


그래서일까 직장인이 되고 나서 그 미련이 스멀스멀 다시금 올라왔다.

점심은 매일 사 먹어야 했고 점심값으로 들어오는 추가 급여는 턱없이 모자랐으며 그 와중에 점심시간 만은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던 소확행 성취!라는 나의 인생 모토가 자꾸자꾸 떠올랐다.

그리고 아주 운 좋게 이번에는 동참하는 직장동료도 곁에 있었다. (그래 좋아요.라는 말이 얼마나 반갑던지)


초기 '신경 쓴' 도시락




여자 직원들이라서 그런지 다들 도시락을 싸와도 간단한 샐러드나 간편식 위주였다. 밥은 제대로 먹어야지! 했던 나지만 아무래도 맨날 나만 그득그득 싸오는 것이 좀 그렇기도 하고 다들 금방 소화도 하고 가뿐하게 업무를 보는 와중 나만 더부룩한 채로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건 어쩐지 좀 소확행스럽지 못했다. (내가 먹고도 내가 손해 보는 그런 기분이었달까)


그래서 이왕 내가 내 손으로 챙겨 먹는 거 다이어트도 되고 건강하고 기분 좋게 먹을 수 있는 식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좋아하는 음식을 고르고 사는 재미가 생각보다 크기도 했다. 내가 구성한 [오 이 집 내가 좋아하는 것만 잔뜩 있는 행복한 도시락을 팔고 있어..!]이란 콘셉트 도시락은 점심시간을 목표를 하는 직장인(=나)의 오전 근무에 큰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깔끔하게 오전 근무를 끝내 놓으면 아무 찝찝함 없이 온전히 점심시간을 즐길 수 있어서 소확행 실천에 더할 나위 없었다.


처음에는 그냥 다이어트 닭가슴살을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다가 이러다가는 평생 이 순간 때문에 닭가슴살이 쳐다도 보기 싫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점차 구워도 보고 튀겨도 보았던 것 같다. 괜한 욕심에 단백질 함량이 높은 닭가슴살만 골랐는데. 지금은 그냥 맛있는 닭가슴살 고른다. (아직 다이어트 닭가슴살을 벗어나진 못한 게 티가 팍팍 나지만) 원래 달걀을 좋아하기도 했고 생각보다 더 달걀은 다양하고 괜찮은 반찬이 되어 주었기 때문에 다른 건 몰라도 달걀 한 판은 우리 집에서 필수 식재료다. 뭐 이건 대부분에 가정집이 그럴 것 같긴 하다.





"음.. 오빠 것도 싸줄까?"


내가 아침마다 도시락 싸는 재미를 늘려가던 중 남자 친구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점심으로 먹었던 집밥 표 도시락을 준비하기가 힘들어졌다. 본인이 매일 싸기에는 그는 요리에 대해 별 감흥도 없었고 자연스레 점심을 대충 때우는 형식으로 밥을 먹었다. 그 부분이 나는 상당히 맘에 안 들었다. 럴수럴수 이럴 수.. 밥을 때운다고? 나는 지금 점심시간을 나름 행복하게 보내려고 이렇게 연구를 하고 있는데 저 녀석은 없으면 그만이라니... 인생의 즐거움을 하나 놓치고 있어.. 아니야.. 그건 아니야.. 


결국 보다 못해 내가 싸줄까란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은 식재료 값을 받고 오빠 몫까지 아침에 2개의 도시락 미션이 생겼다. 

은근히 욕심히 자꾸 생겨서 나도 귀찮아서 잘 안했던 도시락 꾸미기를 도전했다.


물론 이 도시락 2개 싸기 미션도 코로나에 따라 그리 길게 한 노동은 아니었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영양 있는 식단을 검색해보고 도시락을 먹고 나서 남자 친구가 들려주는 시시콜콜한 리뷰 아닌 리뷰가 나에게 또 다른 행복감을 더해 주었다. 약간에 인생에 활력이 더 추가된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에 작은 목표와 목표 달성, 그리고 소확행 보상이 차곡차곡 적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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