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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i Sep 24. 2022

찰나의 미, 짧기에 더 비극이었던 순간 <사의 찬미>

뮤지컬 사의찬미 10주년을 기념하며


1926년 8월 새벽 4시, 관부연락선 도쿠쥬마루.


작은 선실의 안에서 흘러가는 6년의 과거와 5시간의 현재.


누군가는 고국에 도착하는 두근거림과, 그리운 이를 만나기를 고대함이 교차하는 새벽 시간. 

사라진 한 남자와 한 여자, 현재의 삶을 끝내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순간


조선 최초 소프라노 윤심덕, 그녀의 이름은 몰라도 노래 '사의 찬미'는 짧게라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지직 거리는 노이즈와 흑백 사진이 나오는 그녀의 노래는 1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회자되고 있다. 음반을 녹음하러 갔던 일본에서 만난 윤심덕과 김우진. 한국행 관부연락선에서 두사람이 실종된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 사건이 두사람의 정사 스캔들로 번져 더욱 유명해 진 두 사람의 이야기가 영화 또는 뮤지컬로 만들어져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실제 두 사람이 연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우연히 실종 장소, 시간이 같았을 뿐일 수도) 



글루미데이 라는 초연 제목을 버리고 사의 찬미를 제목으로 삼아 그 이후로 컨셉이 더 명확해 진다. 작가는 1920년대의 조선 청년들을 극에 등장시켜 그 시대를 흐르는 좌절감과 희망, 비극을 이야기 하면서 '죽음=절망'을 벗어나고자 했던 그들의 발버둥을 이야기 하기에 현재의 제목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좁은 무대와 어두컴컴한 조명, 음악 감독의 비틀림(?)으로 대사가 있음에도 극 전체가 노래로 전부 연결이 되는 독특한 형식이 만들어 진다. 극 전체가 사의 찬미(과거 글루미데이)라는 하나의 곡이라는 컨셉으로 만든 작곡가의 의도와 선실 하나에 모든걸 표현(때려박은)했다는 연출의 설명이 이 극을 보면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그만큼 극을 한 줄기로 꾸욱 응축해 놓은 듯, 인물을 따라가다 어느 덧 2시간이 지나가 버려 끝나고 나면 휴우~ 하고 숨을 쉴 수 있게 한다. 


과거와 현재 시점을 제대로 표시하지도 않고, 3명의 캐릭터도 누구 하나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감정에 휘말리기도 전에 극이 무척이나 속도감있게 전개되어 극 내내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어두웠던 조선을 떠나 새로움과 자유가 넘치는 도쿄에서 신문물에 대한 갈망과 나라에 대한 죄책감 사이에서 고민하던 젊은이들의 방황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던 1921년. 그들의 모습이 안탑깝기도 하고 시대의 한계가 아쉽기도 하고.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노래 '사의 찬미'의 가수 윤심덕과, 그녀의 스캔들 대상 김우진, 그리고 그 사이의 한 사내. 


5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공간과 단편적인 회상 속에서 3명의 캐릭터가 표현하고 있는 그들의 생명력, Life Force가 명확하다.



찰나를 살아가는 한 여자, 윤심덕

강하고 에너지 넘치는 그녀,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들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여인.

그들과 비교했을 때 자신에게 없는 것은 성별과 자산일 뿐. 

언제나 강하고 찰나를 사랑하며 순간의 미를 즐기고자 하지만, 여성과 가난이라는 현실은 그녀를 떠나지 못했고 유부남(이라고 쓴 똥차)를 유혹한 탕녀라는 오명까지 더해 그녀의 총명함이 가려진다. 


난 찰나에 사는 사람이니까.
순간의 미.
그걸 얻을 수 없다면 난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나라의 장학생으로 떠난 일본에서 한국 최초의 여성 소프라노로 고국땅을 밟은 그녀였지만, 아직 소프라노가 뭔지 왈츠가 뭔지 모르는 조선에서는 그녀가 설 수 있는 곳은 없었고 그녀의 편이어야 했던 우진도 힘이 되지 못했다. 그녀의 선택을 찬성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녀와 김우진의 선택이 절망이 아니기를, 그것 만으로도 자유를 느꼈기를 바래본다. 



뮤지컬 계에서 몇명의 똥차인 역할을 떠올려 보자면 절대 빠지지 않는 김우진.

이 인물이 가장 많이 나오기도 하지만,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어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어 보인다. 



극을 보기 전 가장 기대를 했던 캐릭터는 '사내'였다

김우진과 윤심덕을 관통하는 존재, 시대와 시대를 흐르는 염세주의를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던 연출의 설명에 어떻게 표현된 캐릭터일까 정말 궁금했다. (그 뒤로 연출이 던진건 이미지 뿐이고 만든건 배우들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긴 했지만 말이다)

사내는 우진과는 다르게 자신만만하고 여유롭고, 그리고 직선적이다. 그러면서 뭔가 숨기는게 있는듯한 비밀의 남자. 이번에 가장 인상깊었던 것도 에녹의 사내였다. 심덕을 향한 추파와 우진을 향한 지배욕을 확실하게 표현한 덕에 어떨 때는 확실히 사람과 아닌 것의 그 중간 즘 되는 것 같았다. 




넘버도 너무 좋아하지만 이 극의 관람 포인트 중 하나는 그림자이다. 조명이 측면에서 비추면서 벽으로 그림자가 비치게 되는데 두 사람이 사내의 손 안에 있다는 표시가 그림자 연극처럼 보여 처음 발견했을 때 묘한 짜릿함이 있었다. 


이 극을 보고 나면 공연 시간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더이상 건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공존한다. 타이트하게 쪼여진 시간의 구성 안에서 맞춰져 '조금만 더...'라는 마음이 들기까지의 지금 이 상태가 딱 마음에 든다. 


앞으로 10년만 더, 그리고 조금만 더 길게 계속 이어지는 공연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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