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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i Oct 22. 2022

나에게 주어진 내 목소리<브론테>

브론테 자매들이 세상으로 보내는 편지


요크셔, 히스꽃이 만발한 광활한 벌판
폭픙이 부는 날씨
그곳에 한 여자가 있었다



머릿속 글자가 흘러넘치는 경험을 해 본적이 있나요?

내 눈앞에 보이는 이 광경, 생각나는 장면을 표현하고 싶어 활자가 머리속을 빙빙 돌면서 펜이든 키보드든 빨리 손에 잡고 싶은 그런 경험


뮤지컬 '브론테'를 보다보면 저 뒷전으로 미뤄 두었던 글쓰고자 하는 욕구가 저 아래에서부터 밀려 올라온다.

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쓰고 싶어하는, 또는 그 글을 쓰면서 겪게되는 고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성들에게 사회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길은 두가지, 결혼과 가정교사. 하지만 여기 글을 너무 사랑하는, 그리고 그 글로 자유를 찾고자 하는 자매들이 있다. 

각자 글로 만들고 싶어하는 세계도 다르지만,  서로를 사랑하는 만큼 글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다. 어릴때부터 함께 같은 모습을 꿈꾸며 행복하게 글을 썼지만, 점차 서로의 글이 다르고 생각하는 그림이 다르다고 생각할 때 자매의 갈등도 시작된다. 


넌 나의 오지 않은 내일
넌 내가 아직 꾸지 않은 꿈


가난한 목사의 딸로 태어난 자매들. 위로 두 자매를 보내고 장녀가 된 샬롯, 그리도 동생인 에밀리와 샬럿.

서로의 성격은 다르지만 결혼은 뒷전이고 자신의 글로 독립할 수 있는 날을 꿈꾸는 어린 아가씨들.

하지만 글을 대하는 태도나 고민은 어느 작가들 못지않게 진지하다. 

어느날 날라온 편지 한 통에 자신감을 얻게된 에밀리의 글이 완성되고, 샬롯은 그 글이 일으키는 허무와 불쾌한 감정에 대해 비평한다. 세상에 알려진 그들의 글에 대한 반응은 상반되지만, 현재에 와서는 그 평가가 반대로 뒤집힌다. 



허무한 인간의 삶을 써내린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

자신이 처한 현실을 벗어나 스스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낸 샬롯의 제인 에어.


재밋게도 이 두가지 소설이 내가 초등학생 때 유일하게 읽었던 세계명작이었다. 

어릴때는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끝났던 제인에어가 좋았는데, 지금은 폭풍의 언덕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분노와 그 바닥에 있는 허무함이 더 내 취향에 맞는다. 같은 집에서 같은 세상을 보던 자매였는데 글로 그려낸 그림이 이렇게도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기도 하고, 같은 사람인에 시간에 따라 마음에 드는 게 달라지는 내 스스로도 재미있기도 하다. 


모든 인간이 천국에 갈순 없고
모든 사람이 숭고한 얼굴을 하진 않아


세명의 자매 중 사실상 주인공은 샬롯이지만, 난 내성적이면서 내면의 해결하지 못하는 허무함을 안고 사는 에밀리가 더 끌린다. 자신의 글을 다른사람이 보는게 싫어 서랍속에 꽁꽁 숨겨놓아야 하는 아가씨, 자신이 죽기 전 모든 원고를 태워버린 그녀의 삶 속에서 '폭풍의 언덕'의 완성은 자신이 무엇이라 설명하지 못한 내면의 소용돌이를 타인의 이야기로써 바깥으로 표출한 작품이었지 않나 싶다. '이건 그들의 이야기야. 난 숨만 불어넣었을 뿐이고'라고 자신의 소설을 설명한 그녀의 말처럼.

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지 못해 혼자 속으로 삭히면서, 너무도 표현하고 싶지만 정작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는. 어쩌면 누구보다 자신을 믿지 못해 박으로 표출하지 못한게 아니었을까. 이건 가족도 아닌 제 3자에게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만들어 낸 큰 벽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편지에서 쓰여진 그녀를 지지하는 말에 에밀리의 펜은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하다못해 빵반죽도 맛있으려고 태어나는데

빵 반죽도 태어난 이유가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있지 않을까?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일까, 내가 세상에 말하고 싶은게 무엇일지 나 스스로가 항상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줘야 한다. 타인들도 자기들 보느라 바빠서 날 돌봐줄 시간은 없어. 내 말을 오래동안 듣고 있을 수 없어. 



나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나를 위해 만들어 줘야 해

그것이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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