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가 랄라에게,
뒷마당에 낙엽이 소복이 쌓였구나. 이런 감미로운 계절에 랄라가 태어난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라고 엄마는 늘 생각해 왔단다. 그래서 그런지 랄라도 사계절 중에서 가을을 가장 좋아하지? 엄마는 가을을 사랑해. 우리 랄라의 아홉 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4학년이 된 후, 급격히 많아진 시험들 때문에, 일주일에 며칠을 아예 날을 잡아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 랄라를 보면서 대견한 마음과 안쓰러운 마음이 공존하고 있단다. 너의 작은 머릿속에 계속 새로운 지식이 쌓이고, 점점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기도 하고, 두꺼운 책을 읽는 모습은 신비하고 자랑스럽지만, 이제는 엄마랑 소꿉놀이를 하거나, 낙엽을 밟고 놀거나, 장화를 신고 물 웅덩이를 텀벙거릴 수 없는 너의 일과가 때로는 가엾기도 하더구나.
그래서 어른들은 그런 말씀을 하시나 봐. 그때그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야 후회가 없다고.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랄라가 아기일 때 충분히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기에, 우리는 공유한 시간과 추억이 많다는 점일 거야. 엄마가 랄라의 엄마로서 랄라를 잘 보살피고, 듬뿍 사랑을 주면서 키울 수 있었던 건, 아빠의 협조와 더 큰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랄라가 잊지 않기 바란다. 랄라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한 사람들의 흘린 땀과 노력이 있기에 보다 많은 이들이 웃음과 행복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는 이치를 멀리서 찾지 말고, 아빠를 보면서 배우기 바란다.
마당에 쌓인 낙엽을 바라보며, 랄라의 지난 9년을 떠올려본다. 아주 자그마하던 손과 발, 보드라운 촉감의 랄라의 살결, 아기 냄새 배인 머리카락, 조그만 입으로 엄마 아빠를 부르던 모습, 잇몸을 보이며 해맑게 웃던 너의 모습,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하고, 어느새 걷고, 뛰고, 자전거를 타고, 보조바퀴를 떼어내고, 여러 문장을 구사하고, 글짓기를 하고, 하루를 되돌아보며 일기를 쓰게 된 시간의 흐름과 너의 성장의 변화를 생각한다. 엄마는 감사할 뿐이야. 우리 랄라가 건강하게 잘 자라준 점. 웃음이 많은 아이라는 점. 열린 마음과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점. 자신을 사랑하는 당당한 아이라는 점. 소신껏 행동하는 용기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함께 가진 아이라는 점.
랄라야,
엄마가 올해 랄라 생일을 맞이하여 가장 축하해 주고 싶은 건 너의 한글 공부에 관한 거야. 여름방학 다음날부터 시작된 랄라의 한글 공부는 개학한 뒤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었지. 엄마가 너를 키우면서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가르쳐 본 건 한글이 처음이었어. 그런 엄마의 애타는 마음을 알고 있는 듯, 랄라가 진짜 훌륭히 잘 따라와 주었지. 고맙다. 우리 아기. 최선을 다해서 공부한 랄라. 그래서 이제는 한글로 책도 읽고, 할머니께 편지도 쓸 수 있게 된 랄라. 네가 자랑스럽고, 이제는 엄마의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어. 그래서 올해 생일 랄라가 한글을 익힌 점을 가장 칭찬해 주고 싶은 거야. 엄마 마음 알지? 언어는 사용하지 않으면 쉽게 잊히게 되거든. 그러니까 우리 랄라 꾸준히 한글 받아쓰기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하자.
올해 생일날, 랄라는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과분할 정도로 큰 선물을 받았지? 엄마는 태어나서 저렇게 거대한 천체망원경을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없어. 랄라도 깜짝 놀랐겠지만, 엄마도 정말 깜짝 놀랐단다. 매번 랄라에게 너무도 관대한 선물을 해주시는 두 분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 잊지 말자. 더불어 랄라에게 알려주고 싶은 건, 선물의 크기나 값어치로 그 사람의 마음을 측정해서는 안된다는 점이야. 사랑하지만 형편이 안되면 큰 선물을 할 수 없기도 하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숨찬 일상에 쫓기다 보면 누군가의 생일을 잊고 지나가기도 하고, 축하해 주고 싶지만, 그 표현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더 많단다. 눈에 보이는 것, 랄라가 손으로 움켜쥘 수 있는 것이 랄라가 아는 전부라고, 랄라가 가지고 있는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렴. 눈에 보이지 않고, 랄라의 품에 가두어 둘 수 없는 수많은 가치들 까지도 모두 헤아릴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주길 바란다.
랄라야,
엄마는 매일매일 행복한 꿈을 꾸듯 하루를 살고 있단다. 랄라가 있어서 엄마는 너무 좋아. 엄마랑 얼마 전에 같이 읽은 “딸은 좋다”라는 책 기억하지? 엄마의 마음을 채인선 작가에게 들킨 것 같았어. 엄마는 랄라를 사랑하고, 솔직히 랄라가 아들이 아닌 딸이어서 더욱 감사해. 랄라야 고마워. 이 세상에 태어나 줘서, 그리고 엄마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줘서. 엄마는 9년 동안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꾸준히 노력했는데, 지나온 날들을 뒤돌아 보니 그 노력이 엄마를 보다 성숙한 여인으로 거듭나게 도와준 것 같아. 엄마는 앞으로도 랄라를 존중하고 랄라를 응원할 거야. 때로는 랄라를 혼내고 꾸짖기도 하겠지만, 랄라야 엄마는 늘 너를 사랑한단다.
엄마 아가. 아홉 살 생일 다시 한번 축하한다. 사랑해. 랄라야.
2011. 10. 30.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