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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May 20. 2024

아주머니가 "같이 가요."를 외친 까닭

놓치면 안 될 것을 놓치며 사는 건 아닌가 싶다. 또각또각

아주머니가 "같이 가요"를 외친 까닭.


  여행은 일상 탈출의 긴요한 방법이다. 화창한 날씨, 소중한 이와 함께 한다면, 무엇보다 귀한 순간이 만들어진다. 여행을 떠난 날엔 날씨까지 도와준 모양이다. 한 참 걷고 있다, 인간이 참 자기중심적이라는 생각이 피어났다.


  별스럽지 않은 이야기. 별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출출했다. 호수 겉 면을 따라 한 바퀴를 돌고는 경전철로 발걸음을 옮겼다. 횡단보도를 기다리며 맛집 블로그 사진을 집중하며 서로 심각한 이야기를 하듯 나눴다. 


  "같이 가요!"


  경전철에 거의 다다른 횡단보도를 걷고 있으니,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낮고 잔잔하던 목소리는 반복될수록 날카롭게 변해갔다. 또각또각. 불편한 신발이 발걸음을 늦추게 한 모양이다. 누굴 부르시나 보니 멀찍이 앞서가던 남성분이 휙 돌아보시곤 갈길 가신다.


  또각또각. 한참을 먼저 가시던 분이 멈춰 서나 했더니, 휴대전화를 뚫어져라 보시곤 작은 골목으로 쏙 하고 들어가신다. 횡단보도에 걸려서 기다리다 보면 아주머니는 우리 뒤에 따라오시고, 다시 멀어지길 반복했다. 눈으로 좇던 아저씨는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경전철 앞 마지막 횡단보도. 아주머니는 전화를 거신 모양이다. "OO 아빠"로 시작한 대화. 어디냐는 한숨 섞인 말이 휴대전화를 다 넘어가지도 않았다. 전화를 끊으셨다. 멀리서 보이던 골목길 방향으로 가신다. 또각또각.


대구 수성못

  함께 간다는 건 무엇일까? 거창한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인생이 길에 비유되니 그런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정말 단순히 우린 함께 걷거나 함께 간다는 것 무엇인지 생각게 한다. 아주머니는 결국 도착지에 잘 가셨을 테다. 목적지에서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만났다. 함께 갔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린 제각기 속도를 가진다. 속도는 늘 변한다. 어떤 때는 아무런 노력조차 하지 않았지만, 덜컥 덜컥 편하게 간다. 순풍에 밀려가는 배처럼. 때론 간절히 소망하고 노력했지만, 정말 허무하리 만치 간단하게 끝나버리기도 한다. 거대한 태풍을 만난 조각배처럼. 모두 다른 속도다. 함께 간다는 건 타인을 관찰하고 속도를 맞추겠다는 의지가 아닐까?


  느리게 가더라도, 상대방 덕분에 늦게 되더라도 말이다. 함께 했다는 일이 중요하지, 목적지에 성공적으로 도달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우린 가끔 목적지를 향해 달려간다. 운 좋게 도착했다. 의기양양해진다. 세상 모든 것을 가지 게 된 것일까? 그런 마음은 그럼 얼마나 오래갈까? 뒤따라 오는 사람. 아니 함께 가고자 한 사람이 결국 오지 못하면 그곳에서 자신은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조금 거창하게 보자. 자신이 이룬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 따스한 시선을 나눌 수 있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이룩한 무언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난 꽤나 걸음이 빠르다. 종종 곁에 있는 사람이 시선에서 멀어지는 경우도 왕왕 있다. 무섭다. 그렇게 혼자 가다가 함께 가고자 한 이들이 시선에서 사라지고,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진부한 문장이 떠오른다. 여기다 한 문장만 더 붙여 볼까? 속도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 정하는 일이다. 모든 것이 과정이다. 놓치면 안 될 것을 놓치며 사는 건 아닌가 싶다. 또각또각. 소리가 멀어진다 싶으면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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