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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Aug 03. 2023

2023년의 여름휴가

- 꽉 찬 행복이 있었다.

직업 특성상 장기간 휴가를 쓸 수 없는 내겐, 주말 포함 5일이 맥시멈이다. 

금토일은 가르치는 청년들과 수련회로 잘 보내고, 월요일은 부모님과 함께, 화요일은 나 홀로 아주 알차게 휴가를 보냈다.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재능이 있겠지만 나에겐 확실히 '가르치는 일'에 대한 재능이 있다. 다른 건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재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어떤 것을 잘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잘 가르치는 사람이다. 가르치는 일에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쉬울 리만은 없다. 아이들 특성과 상태가 다 다르기 때문에 그런 아이들과 공통의 것을 한다는 것에 고충은 있다. 하지만 이번엔 우리 아이들이 너무 착하고 예쁘게 따라줘서 에너지 소진이 거의 없었다. 보통 사람보다는 많은 에너지를 갖고 있는 나는 그걸 가지고 부모님과도 나와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강화도 초입에 있는 카페 마레 616

아빠가 강화도 가고 싶다 하셔서 검색한 후 찾아간 곳이다. 강화 초입이라 멀지 않고, 더운 날씨에 시원한 카페 안에서 커피 마시면서 통창으로 바라보는 바다. 이것이야 말로 피서였다. 빵돌이인 아빠는 어김없이 빵도 드시고 싶다 하신다. 빙수 포함 가격은 꽤 나갔지만 남김없이 잘 드시고 기분 좋아하시는 모습 보니 그것으로 만족. 



아빠는 다음 날도 여동생과 조카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면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물어보시지만

아니 된다. 휴가 마지막 날은 나 혼자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다. 


호암미술관 - 루이스 부르주아



작년에 <한스 울리히의 큐레이터 되기>라는 책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그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현대예술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구글링 하면서 작품을 보고, 전시가 있으면 찾아다녔다. 그 책에서 알게 된 아티스트 중 한 명이 바로 루이스 부르주아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이 우리나라에도 있는데 바로 호암미술관에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용인은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거리는 아니고, 주말에 움직이는 건 싫어서 시간 나기만을 기다렸는데 이때다 싶어서 다녀왔다. 급한 마음에 잘 알아보지도 않고 서둘러 출발한 탓에 사전예약제인 것도 모르고 갔다는. (그 사실을 알리 없는 나는 가는 길 내내 너무나 신났다) 평일 점심 때라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어했는데, 휴가철이라 그런가, 예약 없이는 올 수 없는 곳이어서 그런가, 남녀노소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어쨌든 매표소 앞에서 예약제냐며 거의 울면서 말했더니 '다음엔 꼭 예약하고 오세요' 하고 들여보내 주셔서 감사히 잘 관람(구경)할 수 있었다. 정확한 미술관 위치도 모르고 사람들이 가는 곳을 따라갔더니 호수 건너편에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 '마망'이 보인다. 와!!


영상도 찍고 사진도 찍고, 사람들 거들떠도 안 보고 돌아다니는 공작새도 찍고, 또 사람들이 가는 곳을 따라 걷다 보니 주차장. 인포를 찾아서 미술관 위치를 물어보고 '네!' 하고 걷기 시작한다.  그런데 미술관이 이렇게나 아름답다니. 호수와 나무와 돌과 시냇물 사이에 있는 건물.  그곳에서 '김환기 작가' 전시회를 열고 있었다. 



김환기 작가는 20세기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아니던가. 작년 초 국립미술관에서 열렸던 이건희 컬렉션에서 작가님 작품을 몇 점 봤는데 그때도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회고전 형식으로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하나같이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운 작품들. 


새벽별


작품도 작품이지만 작품 사이사이 작가님의 일기 글도 같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게 더 좋았다. 

예술가란 무엇인가, 예술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마음으로 나는 나의 것을 만드는가. 


하나같이 와닿고 이해되어서 (난 예술가는 아니고 예술가 지망생이다) 거의 대부분 사진을 찍어 남겨놓았다. 하지만 단연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용인 소재지에 또 하나의 미술관이 있는데 바로 '백남준 아트센터'이다. 아주 오래전, 리움미술관에 처음 갔을 때 거기서 백남준 작품을 처음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통예술(회화 같은)에 우위를 뒀던 나는 기대 없이 백남준 작품을 보았다가 아주 놀랐었다. 사람을 사로잡는 확실한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영적이라고 하는가. 그 이후로 백남준은 내게 꽤 훌륭한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있다. 그래서 이곳도 가야지 가야지 벼르고 있었는데 역시 용인 소재라 쉽게 가지 못했던 것.


2시쯤 호암에서 나와 차로 25분쯤 달리면 도착. 역시 휴가철이라 그런지 주차 대기 줄이 길다. 바로 맞은편 신갈고에 넓은 주차장이 보여 그리로 턴했더니 아트센터에서도 그쪽에 주차하라고 하네. 

호암미술관과 사이즈 면에서는 비교할 수 없지만 작품들이 너무 재밌고 좋아서 꽤 오랫동안 관람했다. 전에는 설치미술 작품만 봤는데 이번에 영상 작품을 보는데 너무 재밌어서 조금만 보고 일어나야지 해도 다 보게 되더라. 

아이디어도 시그니처도 너무 분명하고 재밌어서 역시 훌륭한 아티스트구나 했다. 



마르코 폴로


율곡


바이바이 키플링이라는 31분짜리 영상을 굉장히 재미있게 봤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일본인 한 사람이 아무래도 내가 아는 사람 같다? 혹시 사카모토 류이치? 의심하면서 끝까지 봤는데, 맞았네! 백남준은 그와 대담을 나누고, 그를 자기 작품에 등장시킬 만큼의 친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더 좋아졌다.





예술가라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과, 그것을 받아들여줄 사람들 사이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제아무리 대단한 예술성과 기술을 가졌다고 해도 자기 작품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하고 만족할만한 애정을 받지 못한다면. 과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만들어냈다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애초에 '왜 표현하고 싶은가?" "왜 나는 이런 방식으로 이것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이 질문 자체에 소통에의 욕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작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누구와도 생각이 통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바로 예술가이다. 


예술과 소통의 교차점에 존재하는 사과 씨앗과 같은 것. 

백남준은 미디어 아트를 자신의  사과 씨앗으로 삼았다. 그의 고뇌가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나에게 말을 건다. 아주 열려 있는 방식으로, 하지만 솔직하고 진지하게. 무엇보다도 아름답게.


내게 '가르치는 것'에 대한 재능은 있으나, 역시 '아름답고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재능 역시 내게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온 세월이 짧지 않다. 오랫동안 내게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낼 만한 재능이 있을까의 문제로 고민해 왔다. 


하지만 얼마 전 아끼는 사람과의 대화 중에 사실 나는 '재능'보다는 그것을 꽃피우기 위해 애썼던 시간들과 노력들을 더 높이 평가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일말의 재능이라는 것은 이미 가지고 있다고 믿어왔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을 꽃피우기 위해 많은 땀을 흘리는 것, 재차 일어서는 것, 포기하지 않는 것, 어떻게든 이뤄내겠다는 마음 따위가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꾸 시선을 '재능의 유무'에 돌렸던 것은 아닌가 싶다. 내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폭양이 직사하는 생철지붕 밑에서, 그것도 허리마저 펼 수 없는 그런 다락 속에서 그저 그릴 수밖에 없기에, 일을 지속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가장 본질적인 원동력을 말하는 아티스트를 동경하며 그 말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 원동력이 없는 내가 과연 예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번 휴가가 너무 즐거웠어서 기록으로 남기려고 쓰기 시작했는데 막상 끝을 맺으려니 갑자기 떠오른 저 질문에 띵하게 된다. 나는 예술을 사랑하는 나를 사랑해 왔는데. 


나는 향유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향유는 내게 있어 취미이자 과정이다. 종착점은 아니다. 향유만으로 행복한 사람은 예술을 사랑한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예술을 사랑한다는 것은 예술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과 그 행위 자체를 사랑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검증은 내 몫이 아니다. 일단은 나도 나의 것을 만들어 보자. 

어떤 것도 핑계 삼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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