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개단>을 통해 본 감정형과 사고형이 공존하는 이유
나는 영화도 좋아하지만 드라마도 즐겨 본다. 최근에는 중드를 가장 많이 보게 되는데, 중국 사람들이 참 성격 급한 걸로 아는데,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남녀 사이의 감정은 느긋하다 못해 느려 터지게 천천히 발전하는데 그 부분이 내 성격과 잘 맞는다. 올봄 중국에서도 크게 히트 쳤던 <개단>이라는 드라마를 나도 재미있게 봤다. 남녀 사이의 사랑이 주된 내용은 아니지만 버스 폭탄 테러를 막으려는 두 주인공의 성격이 여주는 감정형, 남주는 사고형으로 극명하게 구분되는데 왜 세상에는 감정형과 사고형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 드라마를 보며 크게 느낀 바가 있어 썰을 좀 풀어보고자 한다.
드라마는 버스 폭발 시점으로 두 주인공을 자꾸만 되돌려 놓는다. 먼저 여주가 시간 순환의 반복 속에 갇힌 상태라는 것을 알아채고, 곧 남주도 실제 타임 슬립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두 사람 모두 폭발 사고를 막고, 승객들을 구하고 싶은데 경찰서에 가서 '타임 슬립' 얘기를 꺼냈다가는 미친 XX 소리를 들을 게 뻔하다. 드라마 초반 경찰에 신고하고 솔직하게 얘기했다가 하루 종일 갇혀서 심문을 당한 두 사람은 버스 폭발 직전이 아니라 더 전에 버스에서 하차한다. 그런데 버스에 내려서 여주가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것 아닌가.
할 말 없음...
... 이번엔 남자가 할 말 없음..
여주 마음 따숩....
남주 팩트로 반박..
남주 논리 봇물 터짐..
다 맞는 말인데.. 아 아프다...
뼈 사고형인 나는 이 부분을 볼 때까지만 해도 고개를 무한 끄덕이며 남주의 말에 200% 동의를 했다.
하지만 이후 두 사람은 어찌 됐든 폭탄 테러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타임 루프 안에 규칙을 찾고, 동시에 범인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여러 번 죽었다 살기를 반복하며 폭발을 막으려고 죽을힘을 다해도 막을 수가 없고, 사고 당시의 고통이 가혹해 다시 돌아가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남주는 여주를 설득한다. 폭발하기 전에 우리 둘만이라고 버스에서 내리자고.
어느새 두 사람 사이에 동지 이상의 애정이 싹틈.
남주의 손에 이끌려 버스에서 내리던 여주는 비장함이 담긴 이 한 마디로 남주를 멈춰 세운다.
역시 논리.. 살 수 있는 우리만이라도 살자..
하지만 여주는 자신이 살 수 있음에도 남주의 손을 놓고 다시 버스로 뛰어들어가 범인에게서 폭탄을 빼앗으려고 한다.
폭탄을 빼앗기자 숨겨뒀던 칼을 꺼내 여주를 찌르려는 범인.
남주는 여주를 구하기 위해 내렸던 버스에 다시 올라타 여주 대신 칼을 맞고 범인과 몸싸움을 한다.
결국 왜 범인이 폭탄 테러를 하려고 했는지 이유가 밝혀지고, 경찰 한 명이 희생되기는 했지만 승객들을 구해내고 남주 여주도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면서 훈훈하게 마무리..
내가 똑같은 상황에 처했더라도 나는 남주처럼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했을 것이다.
아무리 시도해봐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면 나라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도 살아야 한다고. 그러니까 버스에서 내려야 한다고 결심하고 내렸을 것이다. 절대 여주처럼 한번만 더 해보자고 말하지 못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여주를 사랑하게 된 남주는 그녀 혼자 죽게 둘 수 없어 다시 그 버스에 오른다. 그리고 그녀를 보호하고 다시 함께 폭발 사고에 휘말려 죽고, 타임 루프가 되어 폭발 직전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끝까지 머리를 맞대고 서로 힘을 주면서 사건을 해결한다.
솔직히 고백한다. 나는 내가 사 고형인 게 좋다. 어쩌면 우월감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면서 세상은 확실히 감정형이 바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고형이 아무리 논리로 무장하고 맞는 말을 한다고 해도 누군가 자기 목숨을 걸고 버스에 뛰어들지 않는다면 폭발은 막을 수 없고, 사람들을 구할 수 없다. 버스에 뛰어들게 하는 건 논리가 아니라 가슴이다. 또 죽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 해 보지 않은 것을 해보기 위해, 할 수 있을 거라 믿고서 뛰어든다. 승객들이 아니라 여주를 구하기 위해 남주도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는, 그녀를 위해서라도 방법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세상은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뛰어드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더 좋은 쪽으로 변한다. 이것이 먼저다. 그리고 이성적인 사람도 사랑하는 이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고통을 함께 할 수 있고 희생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장점을 발휘해 다양한 방법들을 찾아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꿈꾸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감정형과 사고형이 공존하나 보다. 감정형이 없으면 세상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사고형이 없으면 이상적인 세상의 실현이 요원하다. 그렇다면 사고와 감정이 5:5이면 가장 바람직한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는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기에 결점 없는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고, 타인의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말만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 서로 잘 보완하고 맞춰가며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