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의 간절한 소망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감독 : 조나단 데이턴, 발레리 페이스
출연 : 그렉 키니어, 스티브 카렐, 토니 콜레트, 폴 다노, 에비게일 브레슬린, 앨런 아킨
조나단 데이턴, 발레리 페이스 감독의 2006년 작품 <미스 리틀 선샤인>을 보았다. 우연히 WGA (미국 각본가 조합)에서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각본 리스트를 접하게 되면서 알게 된 영화이다. 이 리스트 21위에 랭크되어 있는데, 디즈니 플러스를 이용해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너무 너무 재밌게 봤다는 거. 평점 확인하고 봤는데 설정이 별다르게 신선한 것 같지가 않아서 반신반의 상태로 보기 시작. 하지만 처음부터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아주 재미있는 영화이다. 내가 각본가라도 감탄할 만큼 재미있게 쓴 시나리오라고 생각할 것 같다.
리차드(그렉 키니어), 쉐릴(토니 콜레트), 드웨인(폴 다노), 올리브(에비게일 브레슬린), 아빠, 엄마, 장남, 막내딸로 구성된 평범한 가정에 요양원에서 쫓겨난 리차드의 아버지 (앨런 아킨)와 자살 시도 후 살아남은 쉐릴의 남동생 프랭크(스티브 카렐)가 같이 살게 된다. 가장인 리차드는 성공하는 인생만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면서 성공하기 위한 9단계를 설파하며 자신의 이론이 책으로 나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아내 쉐릴은 무능력한 남편에, 시아버지, 자신의 남동생에 아이 둘을 건사해야해서 여유가 없다. 큰 아이 드웨인은 비행사가 되겠다는 꿈을 부모에게 인정받을 때까지 말을 하지 않겠다며 9개월 넘게 묵언 수행을 하고 있고, 리차드의 아버지는 사사건건 불평불만을 하면서 리차드와 쉐릴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 그리고 프루스트의 전문가이지만 애인도 명성도 라이벌에게 빼앗기고 자살 시도 후 살아남은 쉐릴의 동생 프랭크가 이 집에 오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7살 막내딸 올리브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미인대회 '미스 리틀 선샤인' 대회에 출전할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대회는 머나먼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것, 프랭크를 혼자 둘 수 없어 드웨인을 두고 가려 하지만 이마저도 안심이 되지 않아 6명의 가족이 캘리포니아로 대이동한다. 비행기를 탈 돈도 없어 수동 기어의 낡은 차를 타고서.
가다가 기어가 고장나 정비소에 들렀는데 옛날 차라서 부품이 없어 고치려면 이틀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엄마랑 올리브랑 둘이만 비행기 타고 다녀오겠다고 하지 정비소 사장님이 비책을 알려준다. 기어를 1,2단으로 바꿀 수는 없어도 차가 속력이 나면 3,4 상태로 기어를 바꾸지 않고 달리면 달릴 수는 있다고.
아빠는 운전대를 잡고 할아버지는 차에 타 있고, 온 가족이 차를 밀다가 속력이 붙으면 올리브, 엄마, 삼촌, 장남 순서대로 차에 오른다.
어찌됐든 목적지를 향해 가고는 있는데, 그 과정에서 이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 품고 있었던 소망이 차례차례 박살난다. 프랭크는 휴게소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또 그와 함께 여행 온 라이벌을 맞딱뜨리고 다시 한 번 처참해진다. 리차드의 책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한 친구에게서 물 건너갔다는 소식을 듣는 아빠. 남편이 곧 책을 출간하게 될 거라고 큰 소리쳤던 것을 믿었던 엄마는 망연자실, 미성년 손자에게 되도록 많은 여자를 만나서 자라는 말만 하던 할아버지는 왠일인지, 상심한 아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아들 리차드는 적잖이 위로를 받는다. 그 밤 허름한 모텔에서 하루를 보내는 가족, 올리브는 미인대회 출전을 함께 준비했던 할아버지와 같은 방을 쓴다. 그러나 발랄하기만 했던 올리브는
"할아버지, 전 패배자 되지 싫어요."
"그럴 리 없잖아. 왜 그런 생각을 해?"
"아빤 패배자를 싫어하시니까요."
"잠깐, 패배자란 어떤 사람인지 알아? 진짜 패배자는 질까 무서워서 시도도 안 하는 사람이란다. 넌 노력하잖아. 안 그래?"
"네."
"그럼 패배자가 아니야. 내일 신날 거야, 알았지? 남들이 뭐라든 신경 쓸 것 없다. 잘 자라 공주님. 사랑한다."
그렇게 아들과 손녀를 위로한 할아버지는 그 밤 세상을 떠난다. 할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을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가질 수도 없는 것이, 거주지가 속해있는 주를 벗어났기 때문에 장례 절차가 복잡해졌고, 그래서 올리브의 미인대회 출전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올 동안 프랭크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패배자로 만든 라이벌과 여행온 것을 보게 되고, 리차드의 책 출간은 물 건너가고, 손녀의 미인대회 출전 모습을 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아버지는 갑자기 죽게 되었지만, 리차드는 그래서 오히려 딸 올리브를 꼭 이 대회에 출전시키고 싶어진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물거품이 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할아버지의 시체를 몰래 차에 싣고 병원을 도망쳐 나온다. 마음을 다 잡고 올리브를 대회에 출전시켜서 살아생전 못 이룬 할아버지의 소원을 이뤄드리자고 다짐을 하는 가족들, 각자의 실패로 인한 우울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웃게 되었는데, 그만 드웨인이 색약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전투 조종사라는 간절한 꿈이 있어, 부모님께 허락받기 위해 9개월을 말을 안했는데, 드디어 허락을 받아냈는데, 아예 도전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드웨인은 차 안에서 절규하며 난동을 부린다. 어쩔 수 없이 차를 멈추고 드웨인이 진정되기를 기다리는 가족들. 울분을 토하며 가족이고 뭐고 다 싫다고 아이처럼 소리를 지르던 드웨인은 시간이 좀 지나자 진정이 되고, 가족들에게 사과를 한 후 다시 차에 오른다. 그리고 이제부터 말을 한다.
이런 여러 사건 사고 때문에 대회 시작까지 빠듯하게 시간이 남아 속도를 내보는 아빠. 하지만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매다가 5분 지각하게 된다. 관계자는 접수가 끝났다며 안된다고 고집을 부리고, 리차드는 애원하며 무릎까지 꿇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또 한 명의 관계자가 등록을 해주고, 올리브는 드디어 미스 리틀 선샤인 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그런데 돌아가는 판을 보니, 다른 출전자들은 성인들처럼 화장하고 머리하고, 난리도 아닌 거라, 통통한 몸매의 올리브가, 할아버지와 함께 준비한 요상하고 망측한 춤을 추었다가는 아이만 상처 받을 것 같아서 아빠, 삼촌, 오빠는 포기하자고 만류하는데.. 엄마는 올리브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하며 올리브의 의견을 묻고, 올리브는 무서워서 시도도 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패배자라고 했던 할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며 출전을 결심하고 무대에 오른다. 예상처럼 사람들은 조소하고 비난하지만, 이런 미인대회가 진력났던 한 아이의 아빠가 일어나 환호하고 박수치며 올리브를 응원한다. 그러자 아빠, 오빠, 삼촌, 엄마 차례차례 자리에 일어나 박수를 치고 같이 춤을 추고 올리브를 응원하고, 주최측은 올리브를 무대에서 끌어내리려고 하지만 가족이 필사적으로 막다가 경찰서까지 오게 된다.
그 결과, 다시는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리는 미인 대회에서 참여할 수 없게 되었지만, 올리브도 가족들도 크게 슬프지 않다. 우리가 함께 여기까지 왔고, 목표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수상은 운의 영역이지, 올리브가 미스 리틀 선샤인 대회에 출전하는 것, 그 자체가 목표였기 때문이다.
소망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누군가는 꿈이라는 말로, 어떤 이는 목표라는 단어로, 또 어떤 사람은 소원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어떠한 종류의 소망이 있다. 그 소망이 우리가 살아갈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소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통과해야 할 몇 개의 단계가 있다. 단계가 있을 뿐 아니라 내 힘을 떠나는 영역이 있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고,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것이고, 실력 외적인 면에서 매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인간 관계라든지) 소망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조건을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간절함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간절함이 성공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면서도 그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그만큼의 데미지를 입게 한다.
리차드가 9단계 성공 방식의 출간을 간절히 원하는 이유는 그가 가장이라는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가족에게 편안함, 안락함을 주고 싶은 가장의 마음은 오직 리차드만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쉐릴도 남편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는 것일테다. 남편이 기가 사는 모습을 보고 싶고, 남편이 원하는 것을 이뤄 행복하기를, 그래서 우리 가족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쉐릴의 마음 아닐까. 또 인생의 말년에서 자신은 비록 크게 이뤄놓은 것이 없어도 내 아이들만큼은 덜 후회를 하며 살기를 바라기 때문에 리차드와 쉐릴의 눈엔 어이 없어 보이는 조언일지라도, 손주들을 붙잡고 세뇌하듯 이야기하는 것일테다. 드웨인이 묵언수행을 한 이유는 부모에게 허락을 받고 싶어서이다. 가출할 수도 있고 난동을 부릴 수도 있지만, 이 가정에서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자신의 꿈을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사랑하는 이가 나를 사랑해줬으면 하는 것, 내가 하는 일에서 인정받고 싶은 것은 본능이다. 프랭크가 자살 시도를 한 것도 어쩌면 이것이 없는 삶의 무의미함을 느껴서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 모두의 소망이 이뤄지는 것이 요원해 보이고, 하늘은 내 간절함에 너무 냉담하다 느껴질지라도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생긴 7살 올리브의 소망은 그냥 넘길 수가 없다. 간절한 소망을 갖고 있는 사람은 다른 이의 소망도 귀중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나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사랑하는 너의 소망을 이룰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어떤 이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다같이 달려가는 여정에서 붙잡아 웅켜쥐고 있던 나의 소망이 부숴지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가혹하다. 하지만 이제 리차드는 다른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드웨인 역시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잃어버렸을 뿐이다. 이 세상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완전히 막혀버린 것도 아니다. 언제든 나는 조금 더 나은 것을 가지고 때로는 새로운 것으로써 인정받을 수 있고 그것으로 인해 꿈을 이룰 수 있으며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소망을 갖고 있을지라도 누구에게 먼저 기회가 찾아올 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때에 시샘하기 보다는 응원하고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자. 누군가의 소망이 이뤄진다는 것은, 나의 소망도 이뤄질 수 있다는 뜻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