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호퍼 이후, 지정학(Geopolitik)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지정학이라는 학술용어가 나치 독일을 떠오르게 할 뿐 아니라, 레벤스라움 이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자가 다름 아닌 지정학의 실제 창시자 매킨더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나치 독일의 정복 활동에 대한 서구 사회의 반감은 지정학의 운명을 결정짓게 된다. 일단 국제정치학에서 지정학은 오랜 세월 비주류 내지는 사이비로 인식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UN을 위시한 다양한 국제기구들이 출현하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새로운 국제기구들을 역할과 법적 지위에 대한 토론이 활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국제정치학 또한 발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애초에 지정학은 정치지리학 또는 역사지리학과 같은 인문적 연구방법론의 일종이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지리학자들이나 역사학자들이 지정학 담론을 주도하다 보니 태생적으로 국제정치학과 모종의 거리가 존재했다. 여기에 더해 하우스호퍼 사상과 나치 독일과의 연관성은 당대 학자들로 하여금 지정학이라는 이름 자체를 멀리 하게끔 만들었으며, 지정학자들이 진행하던 연구 또한 인문지리학 또는 역사지리학에 의해 계승된다. 그래서 오늘날 지정학이 발달한 나라들(러시아, 프랑스, 미국, 중국 등)을 보면 대체로 지리, 역사와 같은 기초학문이 극도로 발달했거나, 지리를 응용한 인문학적 연구가 자유로이 진행되는 나라들임을 알 수 있다. 이와 달리 지정학이 체계적으로 소개되지 못한 대다수 나라들의 경우, 지정학을 (지리학, 역사학과 같은 인문학이 아닌) 국제정치학의 하위분류로 오해하거나, 지정학과 인문적 내공과의 상관관계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지정학의 역사와 연구방법론에 대해 무지함을 스스로 자인하는 꼴에 지나지 않다.
오늘날 지정학의 학문적 틀을 닦은 사울 코헨 또한 지리학자다. 주로 20세기에 활동한 이 지리학자는 과거 매킨더에 의해 확립된 심장지대 이론을 발전시켜 냉전시대의 세계질서를 설명하려 했다. 그는 매킨더·페어그리브의 대륙·해양 대립을 받아들이고, 이를 소련과 미국에 적용, 냉전을 이데올로기 대립이 아닌 지정학적 대립으로 이해한 최초의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여기에 더해 코헨은 페어그리브의 분쇄지대론을 발전, 분쇄지대의 정치적 분열 요인을 대륙형 국가와 해양형 국가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는 장력 때문이라 이해하고, 이 같은 외적 요인의 개입과 인종·종교 등 내부 분열 요소의 결합으로 인해 정치적 분열이 끊이지 않는다고 봤다. 또한 페어그리브와 달리 코헨은 분쇄지대를 단순히 매킨더식式 반월지대의 동의이어同意異語로 보지 않고, 정치적 작용력에 따라 공간적 범위가 변하는 지정학 지대로 인식했다. 일례로 미·소 냉전 당시, 분쇄지대는 인도차이나와 아프리카 대륙, 중동 지역이었지만, 소련의 와해와 함께 분쇄지대 또한 공간적 범위가 서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축소된 것에 반해, 인도차이나는 해양 세계에 빠르게 편입되었다(반대로 스리랑카에서는 내전이 일어났다). 이처럼 매킨더의 반월지대를 가리킬 때 사용된 용어인 분쇄지대는 코헨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어, 심장지대와 대양 사이에 위치한 연안지대를 가리키는 학술적 용어에서 일정한 정치적 작용력을 가진 공간을 뜻하게 되었다.
물론 소련이 해체되면서 코헨의 대륙-해양 이원 대립 구조 또한 변화를 겪는다. 이와 같은 변화는 그가 집필한 지정학 개론서인 《지정학: 국제관계의 지리학(Geopolitics: The geography of international relations, 2009)》에 잘 나타난다. 이 책에서 그는 지정학을 ①전략지대 분석, ②정치지대 분석, ③국가 분석으로 나눈 다음, 매킨더식 범-세계적 구조 비평을 전략지대 분석이라 이름했다. 여기서 그는 중국과 인도차이나를 해양형 세계로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대륙형 세계와 해양형 세계의 경계를 이란과 파키스탄 일대에서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으로 이동시켰다. 또한 코헨은 국제질서에서의 역할에 따라 국가를 강대국(미국, EU, 중국, 러시아, 일본, 인도), 지역 강국(한국, 이란, 터키, 이집트, 파키스탄, 베트남, 베네수엘라, 태국, 호주 등), 약소국으로 나누고, 강대국에 대한 정치·경제적 의존도에 따라 이들을 ①이데올로기적 기치 또는 자원을 무기로 강대국과 경쟁하는 국가(북한, 쿠바, 시리아, 칠레, 콜롬비아 등), ②국경을 인접한 이웃에게만 최소한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수단, 잠비아, 모로코, 에콰도르 등), ③국제사회에서 아무런 역할도 감당할 수 없는 국가(네팔, 부탄)로 나누었다. 물론 코헨은 이 같은 분류가 일정한 것은 아니고, 국제사회에서 이들이 하는 역할에 따라 변할 수 있다고 봤다. 일례로 인도의 경우, 이미 남아시아의 패자를 넘어 전 세계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로 성장한데 비해,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는 점차 주변부에 대한 영향력만을 행사하는 나라로 추락하는 중이기에 진정한 의미의 강대국으로 보기에는 어렵다. 이처럼 특정 국가가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 여하에 따라 세계질서 속에서의 역할과 위상이 달라지므로 항구적인 강대국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의 국제적 지위 또한 가변적이라고 봤다.
아울러 코헨은 문호門戶 국가(Door State)라는 개념을 새롭게 제시하는데, 이는 민족 이동, 문화 교류, 물류 유통 등 정치·경제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국가·지역을 뜻한다. 대체로 이 같은 문호 국가들은 교통의 요지에 위치해 있다 보니, 대규모 인구가 밀집된 도시가 필연적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으며, 해양 세계 또는 주변부와의 거래를 통해 자신들의 부족분을 채워야 함을 의미한다. 문호 국가에 해당하는 나라들로는 싱가포르, 자메이카, 케이만 제도, 모나코, 핀란드, 홍콩, 키프로스, 오스트리아, 에스토니아, 슬로베니아, 남수단 등이 있으며, 문호 국가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문호 지대로는 카슈미르, 아프가니스탄 북부와 동남부, 팔레스타인, 이라크 남부, 트란스니스트리아, 코소보 등이 있다. 비록 한국은 (매킨더에 따르면) 교두보 지역에 해당하지만, 코헨은 통일된 한반도가 잠재적 문호 국가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을 뿐, 분단된 한반도를 문호 국가로 보지는 않았다. 간혹 우리 보수 언론에서 우리나라를 문호 국가 또는 교두보 국가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학문적 오류다. 분단된 한반도는 크림반도, 우크라이나, 중국 황금해안과 같이 잠재적 성장 가능성만 있을 뿐, 결단코 문호 국가로 볼 수 없다. 한반도가 지정학적 문호 국가로서 역할을 하고자 한다면 일단 통일이 되어야 한다. 물론 통일된 한반도는 블랙홀처럼 주변부의 기술 인력과 자원을 빨아들이는 중국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겠지만, 반대로 중국의 태평양 진출 교두보 역할을 자임하여, (정치적 요인으로 인해 문호 역할을 상실한) 홍콩과 타이완이 누리던 경제적 이득을 대신 누릴 가능성이 있다. 이는 한반도에 새로운 물류·금융 중심지가 형성될 수 있음을 뜻한다.
현 정부에서 추진 중인 종전 선언은 이와 같은 한반도의 체제적 안전성을 파괴할 것이다. 아마도 종전 선언 이후, 남북한은 연방제 통일을 시도할 것이며, 서울의 정치인들은 베이징의 지지를 이끌어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중국의 지정학 전략의 일환이며, 연방제 국가 선포화 함께 중국은 원산, 부산과 같은 한반도 내 천혜의 항구와 자국을 철도로 연결하는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이때부터 베이징 지도부는 한반도 전역에 대한 경제적 지배권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새롭게 탄생한 연방제 국가의 정치에 개입하려 들 것이다. 반대로 미국은 일본의 안전을 위해 한반도에서 최소한의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마지막까지 노력할 것이며, 이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한국 내 친미파들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즉 휴전선이 철거됨과 동시에 한반도는 미·중 양국의 각축장으로 전락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정은 정권은 안개처럼 사라질 것이며, 한국은 친중파와 친미파의 지난한 싸움에 돌입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런 친중파와 친미파의 싸움은 결과적으로 중국의 군사적 개입을 다시 불러와 한반도에 대한 자신들의 전통적 영향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이 같은 중국의 군사적 개입을 피하는 방법이 있는데, 바로 플라톤적 권위주의 정부 수립이다. 비록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겠지만, 권위주의 정부는 내부적으로는 반대파들을 숙청할 것이며, 대외적으로는 베이징과 워싱턴이 설정한 레드 라인을 넘지 않으면서 한반도의 정치적 독립을 지켜낼 것이다. 그러나 과연 민주주의 체제를 희생하면서도 권위주의 정부 수립을 환영할 이들이 있겠는가? 나는 어렵다고 본다.
어쩌면 한반도의 미래는 이미 정해진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