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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연춘추 Dec 26. 2021

1.3 하우스호퍼의 태평양 지정학

단순히 자연환경과 역사적 이벤트의 상관성을 주로 다룬다는 점에 있어 매킨더, 페어그리브의 연구는 지정학보다는 정치지리학, 또는 역사지리학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리학이 발달한 독일에서는 영국과는 사뭇 다른 또 다른 인문학적 지리 연구 방법론이 형성되고 있었는데, 그들 스스로 자신들을 가리켜 지정학자라고 이름했다. 이들은 공간을 국가라는 정치적 생명체가 자신의 의지를 투영하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민족국가의 생존을 위한 레벤스라움과 자원 확보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매킨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신에 대한 세간의 비판을 무마하고자 자신과 하우스호퍼와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강조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킨더의 심장지대론이 독일 지정학파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하우스호퍼의 글을 살펴보면 우리는 그가 매킨더와 미국의 지리학자 아담스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 같은 성향 때문인지 그는 단순히 자연환경이 만들어내는 풍경뿐만 아니라, 특정 지역의 역사·문화·경제·사회구조와 자연환경 변화의 상관관계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같은 연구 성향은 그의 지정학 저서 《태평양 지정학(Geopolitik des pazifischen ozeans, 1925)》에서 두드러진다. 그는 거대한 바다와 해안가에 가까이 위치한 산맥(안데스 산맥, 시에라네바다 산맥, 캐스캐이드 산맥, 코스트 산맥, 추가치 산맥, 알래스카 산맥, 콜리마 산맥, 쥬그쥬르 산맥. 태백산맥 등), 그리고 이들 사이에 위치한 좁디좁은 생존공간 등 일정한 자연환경적 공질성으로 인해 태평양만의 독자적 일체감(Solidaritätsgefühl)이 형성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같은 지정학적 통일성에 기초해 만들어진 가상의 협력체는 운명공동체(Schieksalsgemeinschaft)로 불렸는데, 하우스호퍼 장군은 이 같은 공질성에 기반한 범국가적인 단일체를 만드는 것만이 태평양 연안 국가들의 경제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생존공간 문제에 있어 하우스호퍼는 생존공간을 둘러싼 정치 행동이야말로 지정학의 과학적 목표라고 생각했다. 태평양의 지리적 풍경 때문에 이 일대 주민들은 태생적으로 생존공간의 제한성을 체감할 수밖에 없으며, 이 때문에 이 일대 주민들은 생존공간의 자원 부족 해소를 위해 인구 증가를 억제하거나 새로운 생존공간을 찾아 떠난다고 봤다. 무엇보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시작된 백인들의 태평양 진출은 이 일대 주민들로 하여금 생존공간 부족에 대한 위기감을 극도로 느끼게 만들었으며, 이 같은 위기감은 생존공간 확대를 위한 군사 정복 내지는 대규모 민족 이동으로 이어졌다고 믿었다. 물론 하우스호퍼는 일본과 중국의 인구 정체와 북태평양 항로의 번영, 중국 연안 도시들의 쇠락을 지적하며, 이 같은 인구 감소 요인에 대해 고민했는데, 그는 이를 생존공간 부족으로 인한 자발적 인구 억제 정도로 치부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 조선의 인구 급증 현상은 하우스호퍼의 이목을 끌었는데, 그는 조선의 빠른 인구 증가는 주변국에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원 부족으로 인한 다양한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봤다.


중국에 대해서도 하우스호퍼는 통찰력 있는 다양한 견해들을 제시했다. 그는 미국의 지정학자 아담스의 견해를 받아들여 중국이 언젠가는 심장지대 진출을 시도할 뿐만 아니라,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하는 지도자가 중국의 미래를 이끌리라 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영토는 이미 지정학적 한계치에 도달한 상황이라 영토 확장보다는 자연적 통일감을 추구하는 상황이고, 문화와 경제적 수단을 통해 제국의 통일을 유지하는데 전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매킨더의 학설을 독일에 체계적으로 소개한 만큼, 하우스호퍼는 대륙과 해양의 충돌을 태평양 지정학에도 적용했는데, 그는 국가를 대륙형 국가와 해양형 국가로 나눈 다음, 다시 대륙형 국가를 고원형 국가와 하류형 국가로 나누고, 이들의 충돌 지점으로 인도 편자브와 중국 둥베이, 양자강 유역 등지를 지목하며, 이 일대야말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지정학 전장이 되리라 예상했다.


중국의 운하와 수로 운송에 대해서도 하우스호퍼는 색다른 견해를 제시했는데, 그는 태평양 연안국가 주민들이 모두 바다와 연안지대를 자신들의 삶의 터전으로 보는 것은 아니라며, 이 같은 현상의 예시로 중국의 운하를 예로 들었다. 하우스호퍼가 보기에 운하는 연안지대 주민들이 바닷가에서 내륙지대로 물러난 결과물이며, 중국과 러시아의 아무르강 하천 운항권을 놓고 벌이는 다툼 또한 이 같은 내륙지대로의 후퇴 때문이라 생각했다. 이처럼 하우스호퍼는 막연히 공간의 지리적 특징만을 분석한 페어그리브식 역사지리학에서 한층 더 나아가 지리와 사회 현상, 경제구조와의 관계를 다루었는데, 이 같은 연구방법론은 당대 독일 지정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독일의 외교정책에 있어 하우스호퍼는 미국과 영국의 대일, 대중정책을 앵글로-섹슨 국가들의 지정학적 예술품이라고 극찬하면서도, 일본의 팽창과 함께 미국의 대일 정책이 점점 강압 일변도로 변함을 지적하며, 독일은 일본 등 태평양 국가를 우방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일본의 대외 팽창에 대해서도 하우스호퍼는 일본이 자신들의 생존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조선과 중국 둥베이로 진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으며, 중국은 일본의 이 같은 위기감을 알고 일본의 둥베이 진출을 묵인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가 보기에 태평양 지역을 일체화된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만이 세계화를 완성하는 길이며, 세계 무역과 세계 경제를 완성하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대체로 하우스호퍼의 주장을 살펴보면 그는 지정학을 생존공간 확보를 위한 생존투쟁이자, 정치, 경제, 문화와 지리학을 결합한 학문이라 이해했다. 이 때문에 그는 공간의 자연환경만을 다루는 매킨더, 페어그리브와 달리 공간의 경제, 사회구조, 문화 등 다양한 요소들이 정치적 행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분석했다. 일례로 그는 자연환경 외 공간구성요소에 따라 민족(Volk)의 거주 형태를 문화 구역(Kulturboden), 언어 구역(Sprachsboden), 제국 구역(Reichsboden)으로 나누는 등 지정학을 단순한 공간의 지리적 특징과 역사적 사실의 연계성을 찾는 학문에서 생존공간 확보를 위한 종합 예술로 승화시켰다. 당시 독일 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던 육상 진출과 해상 진출 문제에 있어서도 독일의 지리적 위치와 공간적 특징에 기초해 대륙 진출이라 할지라도 해양 진출과는 또 다른 방법으로 세계 패권을 거머쥘 수 있다고 주장함과 동시에, 내륙 심장지대로 진출한 다음, 그곳에 지정학적 성채를 만들어 심장지대의 자원과 접근성, 노동력을 이용해 세계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우스호퍼의 이 같은 주장은 매킨더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우스호퍼가 매킨더의 주장을 막연히 받아들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일례로 하우스호퍼는 매킨더와 패어그리브의 대륙형 국가와 해양형 국가 간의 이원 대립구도에서 벗어나, 인종과 문화, 자연환경 등을 고려한 거대생존공간(Grosslebensformen)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는 대륙을 근간으로 하는 지정학적 실체로 거대생존공간에 위치한 민족에게 있어 이 공간은 자신들의 운명의 공간(Schicksalsraum)이기도 했다. 이 같은 학설에 기초해 하우스호퍼는 세계를 범-유럽과 범-아시아, 범-아메리카 등으로 나누었는데, 이는 독일과 일본, 미국이 지배하는 신 세계질서 구상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하우스호퍼의 지정학 이론은 루돌프 헤스를 통해 히틀러에게 전해진 것으로 보이는데, 히틀러의 저서 《나의 투쟁》 에는 이미 하우스호퍼의 지정학 용어들이 여러 개 등장한다. 이 젊은 정당 총수는 노학자의 권유를 받아들여 독일인들이 흩어져 살고 있는 중부 유럽을 통일한 직후, 심장지대로 진군하여 세계제국을 세울 구상을 가슴속에 품게 됐으며, 프랑스를 점령하고 유럽 대륙의 지배자가 된 직후 이 구상을 실현에 옮긴다. 물론 이 같은 구상을 하우스호퍼 본인이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상술한 내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하우스호퍼 본인은 태평양 연안지대를 하나의 지정학 구역으로 보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었으며, 유럽 대륙에 나타날 수 있는 제국 형태에 관한 하우스호퍼 류 구상은 대체로 매킨더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우스호퍼가 매킨더의 학설을 독일에 소개한 주요 인물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며, 자신의 제자 루돌프 헤스를 통해 이 같은 “과학적 주장”을 히틀러에게 전하였기에 나치의 전쟁 범죄와 그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노학자는 자신의 제자 루돌프 헤스의 영국 탈출로 인해 아들과 함께 구금되었으며, 이후 지정학은 나치 독일에서 금기시되다시피 한다. 그리고 전후, 지정학은 나치 독일이 저지른 전쟁범죄와의 연관성 때문에 오랜 시간 금지되어왔으며, 히틀러와 한통속으로 분류되기 싫었던 지정학자들은 자신들의 학문을 정치지리학이라 이름함으로써 하우스호퍼가 구상한 새로운 형태의 지리학은 프랑스 신-지정 학파가 등장하기 전까지 오랜 세월 자취를 감추게 된다.


하우스호퍼의 지정학은 그야말로 생존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학문이자, 민족의 생존 안전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위해 지리학을 사용한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자연환경과 공간의 역사성만을 다룬 매킨더, 스파이크먼과 달리 하우스호퍼는 지정학의 학문적 탐구 대상을 경제와 문화, 인종, 언어, 사회 전반으로 확대시켰다. 이로서 지정학은 순수 지리학적 연구에서 벗어나 공간 확장의 정치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변모하게 됐으며, 정치적 도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생존공간 문제에 있어 하우스호퍼는 태평양에서 생존공간 부족이 가져오는 사회적 문제와 경제구조 변화, 인구 이동 등을 목격했으며, 생존공간 확보의 정치적 목표는 자본 축적이 아닌 생존 안전이며, 생존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생존공간 확보만이 자원 부족이 가져올 비극으로부터 민족의 운명을 구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하우스호퍼는 생존공간 확보를 위한 전쟁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이 같은 사상을 히틀러에게 전함으로써 나치 독일의 전쟁범죄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게 됐다.


역설적이게도 하우스호퍼의 지정학 담론은 한국에 가장 필요한 담론이기도 하다. 스파이크먼 이래 강대국 간의 힘의 균형만을 중시하는 지정학과 달리 하우스호퍼는 인종·언어·문화 분포 등을 토대로 공간을 재조직화再組織化할 수 있다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지역 강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미국과 러시아, 중국, 대영제국 등 강대국의 정치적 의지만을 고려하는 기존 지정학에 비해 하우스호퍼는 한국과 같은 내셔널리즘 국가에게 부국강병의 길을 제시하는 지정학 담론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학문이 나치 독일의 전쟁범죄와 연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단 오랜 냉전과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해 한국은 해양형 국가가 된 지 오래고,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전장은 인도차이나와 타이완, 편자브 등지로 이동한 지 오래됐다. 만일 우리가 세계제국이 되고자 한다면 좋든 싫든 심장지대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해야 하는데, 이는 중국·러시아와의 전면전을 감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일부 극단적 내셔널리스트들은 중국 해체를 모스크바가 도울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는데, 모스크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친미 성향의 제국이 만주와 한반도를 통합하는 것이 더 위협적이겠는가? 아니면 지금처럼 전제주의 체제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는 자신들과 협력하는 중국이 둥베이 지역을 지배하기를 원하겠는가? 하물며 이 일대의 인종 분포는 우리에게 극도로 불리하다. 현재 중국 국적을 가진 조선족 인구는 200만 명에 불과하며, 이중에서도 절반은 한국에 거주하거나 중국 대도시로 이주한 지 오래다. 실상 둥베이 지역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조선족 공동체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오히려 우리 언론에서 둥베이 일대에 대한 우리의 문화 주권을 주장할수록 둥베이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만주족들은 우리를 불신하거나 불쾌한 감정을 가지게 된다. 이는 훗날 중국이 정치적 혼란에 빠지고 이 틈을 노려 한반도를 통일한 세력이 만주로 다시 진출하게 될 때, 강력한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는 한반도를 위한 지정학 이론을 새로이 세울 때, 우리의 운명의 공간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해양형 국가이며, 필요한 자원을 대체로 바다를 통해 얻고 있다. 당연히 우리의 미래는 둥베이와 극동 지역이 아닌 끝없이 펼쳐진 바다 너머에 있다. 만일 우리가 스스로의 운명의 공간에 대한 이해 없이 막연히 과거 둥베이 남부를 지배했던 영광을 되찾겠다고 무리한 대륙 진출을 시도할 경우, 이는 (하우스호퍼가 말했듯이) 바다로부터의 후퇴일 뿐만 아니라, 이미 둥베이 지역 조직화를 끝낸 중국 정부의 군사적 공격을 받게 되는 위험한 상황에 몰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어찌 바람직한 일이겠는가?


히틀러의 교훈은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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