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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미 Feb 21. 2022

1년 치 기획안의 마감은 내일모레

마케터의 지옥에 도전하게 된 마린이 (6)

'그래도 버텨봐요.' 

한참을 들어주던 그분은 이런 말을 남기고 지하철을 내렸다.


버텨야 맞는 걸까? 언젠간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일까? 내가 참을성이 부족한 걸까? 어떤 문제가 생기면 모든 잘못을 내 안에서 찾는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오만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고민은 결국 나의 퓨즈를 끊어버렸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화요일에 출근을 한 나는 회사와 오랜 기간 관계를 맺어온 광고주의 내년 마케팅 기획안을 작성하는 업무를 얻게 되었다. 입사한 지 1주일이 겨우 넘은 나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설명을 들은 적 없는 기획안에 참여하게 되었다. 가안으로 이제까지 제작된 컨셉부터 차근차근 혼자 스터디를 이어나갔다. 컨셉과 기획안 속 내용은 전부 틀려먹었다고 판단이 되었다. 통일감도 연결성도 없이 대충 여기저기서 끌어온 마케팅 기획안일 뿐이었다. 내가 대학생 때 하던 기획안보다 허접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때의 친구들은 전부 좋은 곳에서 일을 하고 있을 텐데 나는 여기서 이 정도 기획 밖에 못하는 걸까.. 너무 큰 현타를 직격으로 맞았다. 주니어들 대리들은 제외하고 팀장은 제대로 길을 잡아야 하는데 길을 뱅글뱅글 돌고 있다. 이렇게 인원도 많고 매출액도 많은 회사가 이 정도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면접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회사에 오기 전에 작성해둔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그대로도 더 좋은 조건 더 좋은 곳에서 나를 원하고 있었다. ( 물론 합격은 아니지만 면접은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 면접 시간을 잡고 나니 다음 주 월요일이었다. 그래 다른 곳으로 가는 마당에 기획안을 딴지 걸어 뭐하겠나 알아서 수습할 일이지 생각하고 그냥 진행하게 되었다.


수요일 어제의 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기획안 작성에 모두가 붙었다. 그 중 나는 세부내용 파트를 맡게 되었다. 제일 중요한 부분을 신입에게 맡기다니, 심지어 adobe 조차 결제해주지 않는 회사에서 피피티 디자인 작업을 할래도 어디서 템플릿을 구해오란 이야기를 했다. 아아 진짜 마케터로서 비참했다. 디자인 작업은 본인의 생각을 확실하고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인데 겨우 템플릿을 구해보라니


'그래도 버텨봐요'라는 말이 떠오르며 이왕 주어진일은 잘 마무리하고 떠나자라고 생각했다. 입사 당일과 촬영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정시퇴근한 적이 없었지만 업무적으로 큰 일이기도 하고 주어진 책임도 크기 때문에 마지막 피를 토해보자라고 생각했다. 


'마감은 내일모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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