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포루스 해협을 따라 걸으며
가장 먼저 도착한 낯선 땅의 이름은 이스탄불이었다. 2000년의 역사 동안 무려 3대 제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비잔티움과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오스만제국의 이스탄불로 자리 잡기까지의 유구한 역사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절로 경이롭다. 이곳에 터 잡았던 국가들의 세계사적 의의와 영향력을 떠올려보면 가히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도시로 꼽힐만하다.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절에 지어진 아야 소피아 성당 바로 옆에는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의 푸른 돔이 반짝이고 있다.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오스만 제국의 톱카프 궁전이 나온다. 영영 공존할 수 없을 것 같던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어우러져 있다. 이곳을 가로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은 흑해와 마르마라 해를 잇고, 아시아와 유럽을 나눈다. 페리를 타면 15분 만에 유럽과 아시아를 오고 갈 수 있다. 너무나도 다른 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붙어있다.
강 너머 보이는 모스크의 첨탑과 돔, 아잔(이슬람교에서, 예배 시각을 알리기 위하여 큰 소리로 외치는 일) 소리, 튀르키예의 차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차이(Çay), 아라베스크 무늬, 숙소에서 20분 거리에 있던 오스만 제국의 정궁, 택시에서 흘러나오는 뽕끼 잔뜩 들어간 터키 가요. 생경함 속에서도 선명히 느껴지는 도시의 역동성과 생동감이 나를 즐겁게 했다. 그저 도시를 거닐었을 뿐인데 말이다.
그러나 정작 이토록 화려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내가 담은 것은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분명 대단한 무언가를 느끼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매번 생각이 곧장 단어나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너무 새롭고 생소한 나머지 1분마다 느끼게 되는 감정이 다 달랐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은 그 여느 때처럼 흘러가는데 여행객이자 관찰자인 나만 늘 정신이 없는 듯했다. 기뻤다가, 경이롭다가, 놀랐다가, 슬펐다가, 재밌다가, 무섭다가, 두려웠다가, 고요했다가 수없이 반복했다.
모든 감정을 분리하고 조각내서 이름 붙인다는 게 어리석다는 것은 알지만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의 동요를 기록하고 싶었다. 낯선 곳에 가면 사람은 결코 단순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순히 해방감과 두려움, 그 언저리의 감정을 느끼겠지 단언했던 어제가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정형화된 삶의 양식과 일상 속 루틴으로 인해 억눌렸던 모든 감정이 밖으로 비집고 나온 듯했다. 지극히 평범한 순간들도 낯설게 보였다. 편하고 익숙한 것이 없으면 더 날 것의 감정을 마주할 수 있나 보다.
자주 벅차고 즐거웠으나 때때로 적적했다. 아마 원체 기쁨과 슬픔이 많은 인간이라 그랬을 테다. 이스탄불에서의 우울은 대체로 이랬다. 선박장에 앉아 페리를 기다리며 오고 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내 한국에 두고 온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한국에서 정말 사랑했던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들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지 않아 왔음에 후회스러웠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배경으로 두고 아들의 사진을 다정히 찍는 아랍인 부모에 시선이 머문다. 국적과 인종을 초월한 부모의 사랑의 만 분의 일을 헤아리는 순간 저항할 틈도 없이 묵직한 슬픔을 떠안게 된다. 바다 너머 노을을 보며 맞잡은 손을 흔드는 연인들, 친구와 함께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그리고 그 항구를 가득 메우던 사랑들. 부디 사랑하던 것을 더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사랑하는 것이 사랑으로 존재하게 해달라고. 튀르키예에서 중얼거리는 소원인지라 괜히 탁 트인 풍경 위에 솟아있는 모스크를 보며 빌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