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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

by allen rabbit

어째서인지 나는 <프랑켄슈타인>을 두 번이나 더 띄엄띄엄 봤다. 처음 볼 때 너무 재미가 없던 탓이다.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됐는지 기억이 안 나서 띄엄띄엄 다시 봤고, 이 글을 쓰려고 다시 또 띄엄띄엄 보게 됐다. 재미없는 영화인데 손도 많이 간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이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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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해의 얼음에 갇힌 군함. 근처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그곳에서 한 사내를 구하자, 병사들은 무시무시한 크리처와 마주치게 된다. 바닷속에 크리처를 빠뜨리고 위험에서 벗어나는 사람들. 그리고 함장은 빅터라는 사내의 이야기를 듣는다. 완고한 아버지의 교육을 받고 자라는 빅터. 어머니의 죽음이 남긴 상처로 인해 죽음을 극복하고자 한다. 그의 능력을 알아본 전쟁 무기상 하인리히의 도움으로 마침내 그는 죽은 자를 조각조각 이어 붙여 크리처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크리처는 이번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한다. <라쇼몽>처럼 같은 이야기가 전혀 다른 입장에서 보여지는 이야기 방식은 아니다. 빅터가 크리쳐를 죽였다고 생각했던 때로부터 살아남은 크리처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식이었다.


나는 주연인 배우 오스카 아이작을 “그저 그럴싸하게 연기하는 배우”라고 평가하는 편이다. 다른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 그 목적이 보이는데, 어째서인지 나는 이 배우의 연기에서는 그런 목적을 읽지 못하겠다. 그런데 이 영화는 더 큰 난관을 가지고 있다. 자그마치 빅터가 동생의 아내 엘리자베스를 좋아하는 거다. 그는 어떤 윤리적인 고민도 없이 그녀를 쫓아다니고 구애한다. 이 배우의 연기에 더해 빅터와 엘리자베스의 이 이상한 관계까지. 도무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지 알 수 없었다.


영화의 초반에 엄마는 어린 빅터와 있다가 갑자기 하혈하고 죽게 된다. 빅터는 아버지에게 엄마를 죽게 내버려둔 거냐고 추궁한다. 그러나 빅터는 자신을 지원하는 하인리히도 죽게 만들고 자신이 살려 낸 크리처도 죽이려 한다. 엘리자베스는 직접 총으로 쏴 죽이고, 이 일로 동생도 죽게 만든다. 때문에 나는 영화가 끝날 즈음에는 “사실 엄마도 빅터가 죽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아주 엉뚱한 생각도 하게 된다.


이 영화에는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엘리자베스의 행동도 빅터만큼 이해하기 힘들다. 그녀가 왜 크리처에게 마음을 주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등장할 때부터 뭔가 그럴싸하지만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를 해괴한 소리를 한다. 그런데 크리처에 대한 그녀의 말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크리처의 품에서 죽어가며 말한다. “내 자리는 애초에 이 세상에 없었어. 이름도 모를 무언가를 찾고 갈망했지, 그걸 네 안에서 발견했어. 잃어버리고 되찾는 것. 그게 사랑의 생애야. 그 덧없음과 비극 속에서 이건 영원이 됐어. 차라리 이렇게 떠나는 게 나아. 네 눈이 내게 머물고 있을 때.”

뭔가 멋진 말처럼 들리긴 하지만 대체 무슨 뜻인지 나는 도통 모르겠다.


마침내 나는 영화를 보면서 종종 허탈한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어마어마한 불길로 건물이 붕괴했지만, 그 안에 던져 놓은 편지는 안 타고 멀쩡하게 남아 있는 장면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결혼식장에서부터 시작된 크리처에 대한 추적이 북극까지 이어지는 장면도 그렇다. 어떻게 북극까지 갔단 말인지 전혀 설명이 없다. 앞서가는 크리처를 빅터가 총을 들고 쫓으면, 다음 장면에서는 북극에서 개 썰매를 몰고 있다. 이것을 보고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너무나 기초적인 실수를 해서 보는 내가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크리처가 숲속의 정령 노릇을 하는 것도 웃기는 장면 중 하나다. 양을 키우는 농부 가족은 하룻밤 새 엄청난 장작을 집 앞에 쌓아 놓고, 밤새 망가진 울타리를 고쳐주는 것이 숲의 정녕이라는 눈먼 노인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정작 눈먼 노인은 집에 크리처가 있다는 걸 아는데 말이다. 아주 기가 막힌다. 게다가 이 장면에 나오는 늑대 CG는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엉성하기 짝이 없다.


이 집에 사는 포수들도 웃긴대, 사슴과 같이 있는 크리처를 보고 냅다 총부터 갈긴다. 사람 모양을 하고 있으면 누구냐고 물어는 봐야 하는 거 아닌가? 무작정 총부터 쏘다니. (어쩌면 크리처가 대머리라 그냥 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조심해야겠다) 모습이 흉측하다고 다짜고짜 총질하는 인간들이 숲속의 정녕이라는 말은 또 그냥 믿으니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프랑켄슈타인>은 북극이라는 미지의 장소에서 거대한 폭발과 함께 마주하게 된 정체불명의 사내와 괴물. 괴물을 만든 창조주 빅터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를 받아 크리처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런 이야기 구조는 야심 찬 부분이 있다. 진실이 여러 번 바뀔 수도 있고, 간과했던 사실이 엄청난 이야기로 되돌아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캔슈타인>은 둘 중 어느 것도 아니다. 인간 빅터는 혼란스럽기 그지없고, 크리처는 어떤 점을 공감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이 영화는 정말 무슨 이야기일까? 영화는 마치 엘리자베스의 말처럼 뭔가 그럴싸한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영화 <프랑켄슈타인>은 도대체 뭐 하나 건질만한 것이 없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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