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부터 이러기야?
뭐라도 붙들어놓고 하소연하고 싶을 정도로 길이 얄궂었다. 경사가, 높이가, 무엇보다 날씨가 미워지는 중이었다. 어디선가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종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고,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저 멀리 퍼져나가길 반복했다.
문득, 몇 시간째 땅만 보며 걷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고개를 들어 눈앞에 있는 풍경과 마주했다. 수십 마리의 양이 풀을 뜯어먹고 있었고, 몇몇 양들은 목에 방울을 달고 움직일 때마다 맑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 바로 옆에는 구름이 있었다. 급할 것 없는 순례길인데 왜 길을 원망하며 걷고 있었을까. ‘원하면 언제든지 쉴 수 있다’며 스스로 타이를 때는 언제고.
잠시 앉아서 쉬기로 했다. 한 시간에 한 번씩, 그리고 멋진 풍경을 마주할 때, 무엇보다 외로운 순례길을 달래줄 친구들을 만났을 때도 잊지 않고 잠시 쉬어가는 버릇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출발이었다.
.
.
저건 뭐지?
빨간색 점이 줄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개미들은 자기들의 곳간을 채우느라 바빠 보였다.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나의 길로 발길을 돌렸다.
순례길을 걸을 때는 잘 보이지 않는 친구들을 밟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양심껏 고백하건대, 나 또한 달팽이를 몇 마리인가 밟았던 기억이 있다. 윽. 그 찰나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되도록 해가 뜨면 길을 나섰고, 습한 곳을 지날 때에는 발 밑에 달팽이가 있는지 살피며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나름대로 열심히 걷고(?)있는 달팽이를 보며 뜬금없이 위로를 받은 적이 있기에, 나 또한 그들을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
.
어릴 적 종종 할머니댁에 맡겨졌다.
친구 하나 없는 시골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버스 정류장에서 부모님이 나를 찾으러 와주길 소망하고 또 기다리는 것, 놀거리를 찾아 동네를 어슬렁 거리는 것, 마구간에 있는 소를 괴롭히는 일 따위였다.
가끔씩 소에게 여물을 주기도 했지만, 나는 소가 왜 그리도 얄미웠을까. 그 시절의 나는 소 옆에서 가만히 젖을 물고 있는 송아지를 질투했을 수도, 아니면 어떤 짓궂은 장난을 쳐도 평온해 보이는 소가 못마땅해서 심술이 났던 걸 수도 있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순례길에서 소를 참 많이도 만났다.
그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라
괜스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