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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승진변호사 Nov 04. 2021

안경 쓴 사람의 얼굴을 때리면 살인미수인가요?

법률 이야기(5)

요즘 아이들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친구들끼리 티격태격하다가 안경을 쓴 친구의 멱살이라도 잡게 되면 “너, 안경 쓴 사람 얼굴 때리면 살인미수야.”라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릴 때는 막연히 안경 쓴 사람을 때리면 안경이 깨져서 위험할 수 있으니까 정말 살인미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정말로 안경 쓴 사람의 얼굴을 때리면 살인미수가 될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살인미수가 되기 어렵다. 그리고 이는 안경을 썼는지 여부와 무관하다.


예외적으로 과실을 처벌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고의’가 필요하다. 실수로 다른 사람의 물건을 파손한 경우 그에 대해서 배상은 해주어야 하지만 재물손괴죄로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타인의 물건을 파손하겠다는 ‘고의’가 없기 때문이다. 


고의가 인정되려면 ‘인식’과 ‘의사’가 필요하다. 나의 행동으로 인해서 어떠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도 그러한 결과를 발생하게 하려는 생각( 혹은 발생해도 괜찮다는 용인(容認), 이를 미필적 고의(未必的故意)라고 한다)에서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싸움을 하다가 안경 쓴 사람의 얼굴을 때리는 사람이 과연 상대방을 죽이려는 고의를 가지고 있을까? 


대부분 상대방을 때려서 다치게 하겠다는 고의, 즉 상해의 고의는 가지고 있을지언정 살인의 고의를 가지고 주먹을 휘두르지는 않을 것이다(정말 살인의 고의를 가지고 있다면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는 대신 흉기를 사용할 것이다).


한편 법률적으로 ‘미수’라는 것은 범죄의 실행에 착수했으나 행위를 완료하지 못하였거나 결과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 어떤 행위가 ‘미수’로서 범죄가 되기 위해서는 범죄를 완료해서 결과를 발생시키겠다는 ‘기수’의 고의로 행동해야 한다. 


쉽게 말해서 미수에 그치겠다는 생각으로 어떠한 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애초부터 범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총을 쏴서 누군가를 살해하려는 생각으로 총을 겨누었다면 이미 살인의 고의를 가지고 범죄행위를 시작한 것이므로 실제로 총을 발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살인미수가 될 수 있지만, 애초에 총을 쏠 생각이 없이 겨누기만 했다면 살인의 고의가 없기 때문에 살인미수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경 쓴 사람의 얼굴을 때려서 살인미수가 되려면 그의 얼굴을 때려서 죽이겠다는 고의를 가지고 행동을 하였는데 실제로 사망하지는 않은 경우여야 한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살인의 고의를 가지고 얼굴을 가격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얼굴을 때리는 행위가 살인미수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여기서 “죽이려고 한 건 아닌데 정말 죽어버렸다면?” 또는 “정말 죽이겠다는 고의로 때린 거라면?”이라는 두 가지 궁금증이 생길 수도 있다.


먼저, 죽이겠다는 생각이 없이 얼굴을 때렸는데 피해자가 뒤로 넘어지면서 뇌진탕으로 사망하는 등 사망의 결과가 발생했더라도 행위자에게는 살인의 고의가 없으므로 살인죄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이와 같은 경우에는 피해자를 다치게 하려는 고의는 있었고 그 행위로 인해서 사망의 결과가 발생하였으므로 상해치사죄로 처벌된다.


한편 정말 죽이겠다는 고의를 가지고 때린 경우라면 이론적으로 살인미수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범죄를 저질렀음을 입증해야 하는 것은 검사이다. 행위자가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게 아니라 검사가 행위자에게 고의가 있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행위자가 칼이나 벽돌 등으로 피해자를 공격했다면 객관적으로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기 용이하지만, 맨주먹으로 얼굴을 때리는 것은 행위자의 자백 없이 살인의 고의를 입증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영화 ‘아저씨’에 등장하는 원빈처럼 전문적인 킬러로서 혹은 격투기 선수로서 주먹 한 방으로도 사람을 죽일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결국, 다음과 같이 정리가 가능하다.


①안경 쓴 사람의 얼굴을 때리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살인의 고의가 아닌 상해의 고의로 행동하기 때문에 살인미수가 되기 어렵다. 


②실제 피해자가 사망하는 경우라도 살인미수가 아닌 상해치사로 처벌받는다. 


③그리고 설령 살인의 고의로 행동했어도 검사가 살인의 고의를 입증하기 어려우므로 살인미수로 처벌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한편 앞서 말했듯이 안경을 썼는지 쓰지 않았는지는 살인미수인지 아닌지와 별 상관이 없다. 요즘에는 플라스틱으로 된 안경알을 많이 사용하지만 과거에 유리로 만든 안경알을 많이 사용하였기 때문에 안경알이 깨지면 실명을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안경 쓴 사람의 얼굴을 때리면 살인미수가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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