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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승진변호사 Nov 05. 2021

영업비밀을 훔친 경우 절도죄로 처벌받을까?

사례로 알아보는 형사법(1)

"H주식회사의 만년 과장인 A는 부장 승진이 걸린 심사에서 또 다시 탈락하였습니다. 이에 불만을 품은 A는 H주식회사의 최신형 휴대전화의 설계도면을 빼내어 이를 이용해서 경쟁업체로 이직할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A는 결국 회사를 퇴사하면서, 자신의 업무용 PC에 저장되어 있던 휴대전화 설계도면을 회사의 프린터를 이용해서 출력한 뒤 이를 가지고 가버렸습니다."


이 경우 회사의 영업비밀을 훔친 A는 절도죄로 처벌 받을까요? 분명히 회사의 귀중한 재산인 영업비밀을 훔쳤으니 절도죄로 처벌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A를 절도죄로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형법은 절도죄를 ‘타인의 재물’을 훔치는 경우에 성립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형법

제329조(절도)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런데 문제는 영업비밀은 ‘재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법률적으로 ‘재물’은 고체·액체·기체처럼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는 실체가 있는 물체인 유체물과 관리가 가능한 동력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귀금속이나 현금 등은 유체물로서, 전기와 같은 동력은 ‘관리할 수 있는 동력’으로서 재물에 해당하지만 ‘정보’인 영업비밀은 절도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같은 이유로 타인의 전화를 무단으로 사용한 경우에도 음향송수신기능을 부당하게 이용한 것으로 이러한 서비스를 부당하게 이용하는 행위는 재물이 아닌 무형적 이익을 취득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절도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대법원 1998. 6. 23. 선고 98도700 판결, 1999. 6. 25. 선고 99도3891 판결 등 참고). 


뿐만 아니라 절도죄에 규정된 ‘절취’는 소유자 등의 이용가능성을 배제하고 자신이 소유자처럼 권리를 행사하려는 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영업비밀을 복사하거나 출력하였다고 하더라고 소유자가 그 정보를 사용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에서도 절도죄가 되기 어렵습니다. 쉽게 말해서 복사나 출력행위 자체로 소유자의 이용가능성이 사라지거나 줄어드는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한편 “그렇다면 업무와 관련된 문서는 출력한 순간부터 회사 소유니까 그 문서를 가지고 가면 절도죄가 되지 않나?”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례의 문서들은 애초에 회사의 업무와는 무관하게 A가 만들어낸 문서이므로 이를 H주식회사의 소유라고 보기 어렵지요. 


그렇다면 “적어도 종이는 H주식회사 소유잖아.”라고 생각하신 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예리한 지적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종이에 대한 절도죄는 인정될 수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다만 유사한 사안에 대해서 법원은 이에 대해서는 (검사가 종이를 절취한 것으로 기소하지 않았으므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법학 지식이 있는 분들을 위해서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자면, 직원이 회사의 용지 몇 장 정도를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회사의 ‘양해’가 추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업비밀을 빼가기 위해서 용지를 사용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양해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정이 있지만 절도죄의 경우는 하자가 개입되더라도 여전히 양해가 유효하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므로 용지에 대한 절도죄도 인정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 절도죄의 객체는 관리가능한 동력을 포함한 '재물'에 한한다 할 것이고, 또 절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 재물의 소유자 기타 점유자의 점유 내지 이용가능성을 배제하고 이를 자신의 점유하에 배타적으로 이전하는 행위가 있어야만 할 것인바,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 그 자체는 유체물이라고 볼 수도 없고, 물질성을 가진 동력도 아니므로 재물이 될 수 없다 할 것이며, 또 이를 복사하거나 출력하였다 할지라도 그 정보 자체가 감소하거나 피해자의 점유 및 이용가능성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므로 그 복사나 출력 행위를 가지고 절도죄를 구성한다고 볼 수도 없다.
 ○ 피고인이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를 출력하여 생성한 문서는 피해 회사의 업무를 위하여 생성되어 피해 회사에 의하여 보관되고 있던 문서가 아니라, 피고인이 가지고 갈 목적으로 피해 회사의 업무와 관계없이 새로이 생성시킨 문서라 할 것이므로, 이는 피해 회사 소유의 문서라고 볼 수는 없다 할 것이어서, 이를 가지고 간 행위를 들어 피해 회사 소유의 문서를 절취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대법원 2002. 7. 12. 선고 2002도745 판결).


그러나 절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서 A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사례의 A는 부정한 이익을 목적으로 영업비밀을 취득하는 행위 등을 처벌하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되고 업무상배임죄가 문제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절도죄의 객체는 재물이어야하므로 게임머니나 전자정보 등은 절도죄의 객체가 될 수 없습니다. 다만 타인을 속여서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는 경우 사기죄가 될 수 있고, 그 밖에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될 수도 있으므로, 절도죄로 처벌받지 않는다고 해서 형사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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