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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존재 Dec 18. 2022

9. 운전해도 안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리스본 시내 중심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살고 있다.


시내 중심에 살면 교통도 편하고 나름대로의 장점이 많지만 우리는 더블린에서처럼 리스본에서도 시내 중심에서 다소 벗어난 곳에 자리 잡게 됐다.


남편은 이제까지 큰 도시에서 살아본 적이 없고 천성이 도시보다는 늘 자연과 가까이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이며, 나는 그 둘 사이에서 늘 왔다 갔다 하는 편인데 서울에서 10년 넘게 살며 도시에서의 편리한 삶을 원 없이 경험했고, 아직까지도 가끔은 그 맛이 그립기 때문일 거다.


더블린은 아일랜드의 수도이지만 서울보다는 훨씬 작은 도시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내 중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한적한 주택가 펼쳐지고 어떤 때는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런 환경에서 몇 년을 살다 보니 포르투갈에서 살 집을 고를 때도 시내와 아주 가깝지 않으며, 주변에 높은 건물보다는 나무가 많이 보이고, 조용한 외곽 위주로 찾게 됐다.


사실 이 때문에 우리가 계획했던 것보다 더 빨리 구매하게 된 것이 '차'다. 트램과 버스로 웬만한 곳은 다 다닐 수 있어서 차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살았던 우리가 포르투갈에 오자마자 서둘러 '차'부터 알아보게 된 것이다.


리스본 시내에서는 버스와 트램, 지하철, 기차로 어디든 편하게 이동할 수 있지만 여기에는 지하철이나 트램이 없어 버스와 기차를 이용해야 하는데 차로 20분 걸릴 거리가 대중교통으로는 1시간이 넘어가고 최소 2회 이상 갈아타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더욱이 매주 사무실을 출근해야 하는데 차가 없이 살자니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나는 운전면허가 없다.


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운전면허가 없다'라고 얘기해야 할 때마다 민망함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10대일 때는 나이가 안됐고, 20대가 되어서는 대중교통이 편리한 곳에서 살았고, 차를 살만한 재정적 능력이 없었으며, 30대에 접어들어서는 아일랜드로 떠나면서 다시 재정이 바닥이 됐고, 따 볼까 하는 생각이 올라올 때쯤엔 코로나가 시작돼서 한국에 갈 수 없었다.


물론 아일랜드에서도 딸 수 있었지만 방향이 한국과 반대이기도 하고, 워낙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시험을 영어로 쳐야 하니...)


코로나가 잠잠해진 후 한국에 오랜만에 갔을 때도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귀했기 때문에 운전면허는 뒷전이었다.


이런 이유들로 운전면허를 아직 안 딴(못 딴) 것도 있지만 사실 다른 큰 이유는...


나는 운전하는 것이 무섭다.


내 심리상태가 불안할 때 꼭 꾸는 몇 개의 단골 꿈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운전하는 꿈'이다.


꿈속에서 노련한 운전자였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실제 내 모습처럼 운전면허가 없는, 운전을 전혀 할 줄 모르는 꿈속의 내가 어쩌다가 운전대를 잡고 있고, 아주 위태롭게 운전을 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어떻게 운전대를 잡게 됐는지,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 어떤 결과를 맞이하는지 꿈에서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현실에서 그렇게 운전하다가는 끔찍한 교통사고를 몇 번이고 냈을 것이다.


꿈속에서 느껴지는 불안함과 공포감에 압도되어서였는지 몰라도 뭔가 큰일이 나려 하기 직전에 항상 깼다. 다행이라고 한다면 꿈속에서도 현실에서도 나는 교통사고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Photo by Alex Chernenko on Unsplash




'내가 사고를 내면 어떡하지.' '누군가를 치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운전에 대한 상상은 항상 기분 좋은 쪽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아직 경험해 보지 않아서 더 막연하고, 그래서 더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남편 덕분에 차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건고맙지만 나도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남편에게 부탁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가고 싶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노을이 아름다운 해변 도로를 원 없이 달려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국에 가서도 부모님을 모시고 여기저기 좋은 곳을 많이 다녀보고 싶다.


이렇게 쓰면서도 '꼭 굳이 따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려고 하지만…


더 늦출 순 없다!

새해에는 동승자에서 '운전자'로 승격되고 말리라.



어느 날, 정말 말도 안 되게 아름다웠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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