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와 연말 휴가를 보내러 이탈리아 시댁에 와있다.
12월에도 낮 최고 기온 18도를 웃도는 포르투갈에서 잠시 겨울의 느낌을 잊고 있다가 이탈리아 공항에 나오자마자 얼굴이 시리고 코끝이 빨개지니 ‘그랬지. 이게 겨울이었지.’ 하고 기분 좋게 정신이 번뜩 들었다.
우리는 결혼 후 이탈리아에 주로 봄, 여름에 왔었는데, 작년부터는 크리스마스 연휴를 시부모님과 같이 보내고 있다.
더블린에 있을 때 남편은 이탈리아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늘 내비쳤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에게 크리스마스는 늘 맛있는 음식이 풍성히 차려져 있는 식탁과 트리 밑에 가득 쌓여 있는 선물이 기다리는 날이며, 가족들과 함께 선물을 나누고 왁자지껄하게 하루를 보내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명절 같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크리스마스를 30년 가까이 보내다 둘이서 그것도 타지에서 단출하게 보내려니 허전하고 뭔가 빠진 느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낸 작년에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남편이 얼마나 들뜨고 신났던지 아직도 그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마을 별로 아기자기하게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둘러보고, 사방이 눈으로 덮인 곳에서 트레킹을 할 수 있는 이탈리아 북부의 설산을 함께 오르고 내리며 정말 겨울다운 겨울을 누렸다.
그 덕분에 나도 남편처럼 이탈리아에서 보낼 크리스마스를 아이처럼 기다리게 된다.
우리는 결혼 5년 차로 아직 자녀가 없다.
결혼하고 초기에는 우리 둘 다 자녀 계획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더블린에 있을 때는 여러 가지로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생각해 미뤄온 것이 벌써 5년이 되었다.
우리 둘 다 집에서 막내인데 남편의 누나도, 우리 오빠도 자녀가 없어서 어느 가족 모임에 가도 아이가 없이 어른뿐이다.
아이가 있는 우리 집을 상상해 본다. 조금 정신없기는 할 테지만 손주의 재롱을 보며 함박웃음을 지으실 우리 부모님과 시부모님 얼굴이 떠오른다.
무뚝뚝한 우리 아빠에게 손주가 안기면 아빠는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이전에 본 적 없는 세상에서 제일 너그러운 할아버지의 모습이 나올 것만 같은데 이건 좀처럼 상상이 잘 되지 않아서 꼭 실제로 보아야겠다.
우리 부부는 1-2년 내로 자녀를 계획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이탈리아에서 살게 될 가능성이 높아서인지 몰라도 올해는 어딜 가나 유독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가 아직 생기지도 않았는데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혼혈인 우리 아이도 저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좋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탈리아어를 못해 아빠와 영어로 대화하는 엄마를 보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려면 나도 어느 정도의 이탈리아어는 할 수 있어야겠지 등등 여러 생각이 한순간에 겹친다.
30대에 접어들고서도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참 힘들다고 생각했기에 나에게 출산과 양육은 사진에서만 보는 에베레스트산의 정상처럼 느껴졌다.
신비하고 경이롭지만 도전해 볼 엄두가 나지 않는 미지의 세계.
20대 후반이 되면서부터 주변에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양육의 과정을 옆에서 보며 간접적으로 경험했지만 그것과 내가 직접 경험하는 것은 차원이 다를 거라 생각한다.
아직도 한 생명을 내 몸으로 품고 키운다는 것이 두렵긴 하지만 자녀를 주신다면 내 인생에 이에 비할 축복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해보게 되는 요즘이다.
남편과 이탈리아를 오면 꼭 트레킹을 한다.
남편은 산을 정말 좋아해서 아이가 생기면 데리고 다니고 싶은 산도 많고 가르쳐 주고싶은 것도 참 많다.
더블린으로 가지 않고 이탈리아에 계속 있었다면 남편은 Mountain Guide가 되었을 거다.
“우리에게 언젠가 찾아올 아이가 당신처럼 산을 좋아했으면 좋겠어. 아빠와 산을 오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어. 그리고 그런 아빠를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어.”
글을 맺으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남편의 마리오 시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