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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존재 Jan 07. 2023

11. 인간 좀 다룰 줄 아는 이 기계 녀석

연말을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 새로운 녀석을 하나 들였다. 애플 워치다.


앱등이까지는 아니지만 몇 개의 애플 제품을 가지고 있고, 모두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나로서 이 녀석을 2023년이 되어서야 들인 것은 내가 생각해도 조금 의아하긴 하다.


몇 년 전 기회가 한번 있기는 했다.


나는 옷 이외에 몸에 뭐가 닿아있거나 걸리적거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액세서리도 하지 않을뿐더러 시계도 잘 안 차는 편이다. 그러다 몇 년 전 러닝을 시작하면서 남편이 동기 부여를 위해 Garmin 시계를 선물해줬는데 그게 처음 사용해 본 스마트워치였다.


남편은 오랫동안 Garmin 스마트워치를 사용해 왔고,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업그레이드를 할 만큼 스마트워치와 삶 자체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다.


심장박동수 체크, 스트레스 레벨, 수면 트래커, 트레이닝, 온갖 활동 기록 등 스마트워치에서 제공하는 기능을 200% 잘 사용하는 남편과 다르게 나는 일단 시계를 계속 차고 있는 것도 불편해서 러닝을 할 때, 외출할 때 가끔 차고 나가는 것 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이때 스마트워치의 맛을 좀 더 들였으면 애플 워치로 갈아탔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그때 애플워치를 샀다면 스마트워치를 지금까지 쭉 사용했을지도?


어쨌든 2015년에 출시되어 이미 살 만한 사람들은 다 사서 차고 있는 애플 워치를 지금에서야 사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새해부터 러닝을 좀 더 즐겁게 해보고 싶어서였다.


기존에 갖고 있던 시계는 화면이 작아 모든 기록이 한눈에 보이지 않았고 달리면서 화면을 넘겨야 했는데 그게 참 불편했다. 그때마다 러닝 시간, 심박수, 페이스, 거리 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좀 더 큼직한 화면을 가진, 뛰면서도 수치가 눈에 잘 들어오는 컬러 액정 시계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여러 회사에서 나온 좋은 모델들이 워낙 많지만 애플 제품 간의 편리한 연동을 생각하면 역시나 난 애플 워치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제일 예쁘기도 하고...)


일주일간 사용해 봤는데 예상대로 러닝 할 때 기록 확인이 훨씬 편해졌고, 지금보다 조금 더 기록을 앞당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생긴다.




그런데 이 녀석 덕분에 불현듯 내가 잊고 있던 것 하나가 떠올랐다.


어렸을 때 선생님이 일기장과 숙제한 공책에 찍어주시던 보라색 도장.


참 잘했어요.


그때는 생각 없이 받았던 그 도장이 왜 갑자기 생각났을까.


30대 중반이 된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니 크던 작던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동기 부여와 꾸준한 격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했을 때 ‘참 잘했어요.'와 같은 보상을 받았던 적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보다 나는 나에게 제일 엄격했고, 칭찬과 격려에 늘 인색했다.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회사를 그만두고 아일랜드로 떠나 이방인으로 살면서도, 내가 가진 것보다 나의 결핍을 더 크게 보며 나를 다그쳤던 수많은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한 시간에 한 번은 움직여야 한다며 일할 때 잘 일어나지 않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

오늘의 운동 목표를 달성하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며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주고, 중간중간 잠시 쉬어가라는 듯 호흡과 명상을 권하며, 운동을 마칠 때마다 기분 좋게 동그란 뱃지를 짠 하고 보여주는 이 녀석처럼…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잊기 쉬운 나라는 존재에 대해 왜 한번 더 생각해주지 못했을까.


무언가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벽에 가로막힌 것 같을 때 ‘늦지 않았어요. 당신은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라고 상기시켜 주지 못했을까.


저물어 가는 하루의 끝에서 ‘오늘 하루 수고 참 많았어요.'라고 왜 도장을 찍어주지 못했을까.



기계는 인간이 만든 메커니즘으로 작동되는 것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작은 녀석에게 은은한 감동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소한 것 같지만 그 하나하나의 무브먼트가 내가 건강해질 수도록 이끌어 준다.


그리고 내 작은 성취에도 ‘Great Work!' ’Keep it up!’이라는 칭찬과 격려를 ‘분명하게’, 그리고 ‘한결같이’ 해준다.




이처럼 무언가 눈에 보이게 이룬 것이 있던 없던 내가 나아가는 발걸음과 움직임을 격려하고 그 하나하나를 나 스스로 의미있게 여길 수 있으면 좋겠다.


이 기계 녀석 덕분에 새롭게 다짐해본다.


‘참 잘했어요’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만들어서 내 삶 여기저기에 가득 채워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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