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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존재 Mar 24. 2023

17. 내 발로는 나와도 해고는 싫어

G사, M사, A사...

어떤 위기에도 거뜬할 것 같던 굴지의 빅테크 기업들이 연이어 인원삭감을 발표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는 IT업계와 전혀 상관없이 홍보 담당자로 일했던 내가 아일랜드에 와서 처음 구했던 첫 직장부터 포르투갈에서 지금 일하고 있는 직장까지 공교롭게 모두 IT 관련 회사다.


코로나가 꺾일 즈음 IT 업계에서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됐고 전 직장 동료들의 해고 소식이 들려왔다.

해당 프로젝트 규모를 줄이면서 인원을 정리한 것인데 이런 경우 다른 프로젝트로 옮겨가는 경우도 있지만 100% 보장되는 것도 아니라서 결국은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함께 한 사무실에서 일했던 동료들이기에 그들의 고충이 나의 것처럼 고스란히 느껴졌고 동시에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조 조정', '정리 해고'

이런 묵직하고 달갑지 않은 상황 앞에서 어떤 직장인(노동자)이 유력해질 수 있을까.

일개 직장인으로서 그 어느 때보다 무력해지는 순간 아닐까.



 

첫 직장 동료들의 소식이 들리던 1년 전쯤만 해도 솔직히 크게 실감하지 않았다. 포르투갈에서 일하게 될 회사의 오퍼를 받은 상태였고, 이주 준비로 바빴다.


아일랜드에서 다니던 두 번째 회사를 그만두고 포르투갈에 오고 나서도 종종 동료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몇 개월이 지났는데도 공석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회사에서 신규 채용을 전면 중단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원 감축을 하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사람들의 온라인 비즈니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 회사는 호황을 제대로 누렸고, 대대적으로 직원을 뽑았다. 이 때문에 코로나가 끝났을 때 받을 영향이 상당히 크리라는 것은 내부 직원 누구나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사업 규모를 줄이다 보니 몇 팀은 아예 없앴고 팀 리더, 팀원 할 것이 없이 모두 해고당한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IT 업계의 칼바람은 불고 불어

이윽고 내 코 앞까지 왔다.


고객사의 구조 조정은 내가 속해 있는 프로젝트에도 영향을 미쳤다. 같은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미국 팀은 80%, 내가 속해 있는 리스본 팀에는 20%의 인원 감축이 시행됐다. 공식적인 구조 조정 발표가 있기 전 해고 대상 직원들은 회사와의 면담을 가졌고, 이에 따라 팀도 4월부터 재편된다.


우리 팀에서는 한 명의 동료가 자신이 그 해고 대상이 되었다고 먼저 밝혔는데 본인이 이렇게 먼저 커밍아웃하지 않으면 매니저가 아니고서야 알 수 없다. 평소와 다름없이 같이 일하고 사무실에서 만나지만 다들 어떤 상황 가운데 있는지 물어보기도 조심스럽다.


포르투갈로 이주한 지 이제 6개월도 안 됐는데 해고까지 당하면 이건 또 무슨 인생의 쓴 맛인가 했을 텐데 다행히 (적어도 지금은) 변동 없이 같은 팀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아일랜드에서도 몇 번의 이직을 했지만 사직서를 쓰고 내 발로 나왔기에 해고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그것이 내게 실제로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요즘이다.




포르투갈에 오기 직전까지 남편과 나는 같은 회사를 다녔고, 비슷한 시기에 퇴사했다.

그 후 남편은 다시 취업하지 않고, 지금까지 자신의 비즈니스를 키우는데 몰두하고 있다.


회사를(누군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늘 즐겁고 유쾌하지는 않다.

하지만 때맞춰 들어오는 월급의 매직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나와 달리 남편은 자주 얘기한다.


'어떤 조직을 위해(누군가를 위해) 일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서 다시 없을 거라고.'


누구보다 열심히 직장에서 일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그 집중력과 열정으로 1년 가까이 온전히 그것에 매달리더니 사고방식과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사업의 성과가 원하는 대로 바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기에 맥이 빠질 때도 있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다른 것을 적용해 보고, 결과를 확인하고,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체계를 만들고...


그렇게 온몸으로 부딪혀서 자신의 의도한 것을 얻게 될 때의 짜릿함, 소위 그 '맛'을 알아버린 것 같다.

나도 남편이랑 비슷한 시기에 사이드 잡에 대한 생각을 키우고 있었는데 남편처럼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기지 않았고,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았다.


늦었다는 생각보다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

다시 생각한다.


그것보다는 Gray의 노래처럼 '하기나 해'가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고.



https://www.youtube.com/watch?v=udkrTgTMuc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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