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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y Soul Kim Feb 18. 2024

기안84는 핑계고

기안84가 상징하는 '리얼리티'에 대하여

2023년 MBC 연예대상은 예상대로 기안84가 차지했다. KBS는 <1박 2일> 팀이, SBS는 탁재훈이 대상을 차지했지만 화제성 면에서는 기안84가 압도적이었다. 기안84의 연예대상 수상이 매우 놀라운 이유는 천하의 유재석과 전현무를 꺾은 대상이라는 점도 있지만, 더 놀라운 것은 유튜브나 웹툰과 같은 뉴미디어가 아닌 TV시장에서 그가 대상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남녀노소, 가장 넓은 범위의 국민을 타깃으로 하는 보수적인 올드 미디어에서도 기안84가 대세가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기안84가 이렇게 대중의 큰 사랑을 받는 이유는 결국 그의 ‘리얼함’ 때문이다. ‘리얼’이라고 할 때 우리는 보통 ‘날 것의’ 리얼함과 ‘거짓 없는’ 리얼함을 함께 떠올리는데, 기안84는 이 모두를 대표한다. 태어난 김에 산다는 그는 그동안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유통기한이 넘은 음식을 요리해 먹고, 수건과 걸레를 구분 없이 사용하고, 가위로 자기 머리를 자르는 그런 기괴한 날 것의 일상을 공유해 왔다. 최고의 웹툰작가라고 알려진 그였지만, 예상보다 훨씬 열악하고 볼품없었던 그의 일상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고 그런 그의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 대중에겐 호감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기안스러움은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에서도 확실히 이어지는데, 애초에 아름다운 유럽이 아닌 볼리비아, 인도, 마다가스카르로의 여행이라는 사실부터 그랬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거짓 없고 솔직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동시에 인도 여행 중 시신을 화장하고 빨래를 하는 갠지스 강 물을 퍼 마시거나 마다가스카르에서 현지인도 안 먹는 날생선을 뜯어먹는 등의 모습들은 역시 한결같이 기이하고 기안스러웠다. 그리고 이러한 기안84 덕분에 <나 혼자 산다>나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유튜브보다 더 유튜브스러운, 가장 리얼한 TV 프로그램이 될 수 있었다.


기안84가 출연한 콘텐츠뿐 아니라, 이 시대 모든 콘텐츠에 있어 ‘리얼함’은 콘텐츠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근래 가장 인기 있었던 예능 콘텐츠들을 뽑자면 <미스터 트롯>, <스트리트우먼파이터>로 대표되는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 <환승연애>, <나는 솔로>로 대표되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등인데, 하나같이 일반인 출연자들의 가장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는 프로그램들이다. 욕심, 질투, 사랑, 야망, 경쟁심, 이기심 등 우리가 기본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가장 날 것의 감정들을 프로그램 속에서 온전히 느낄 수 있을 때 시청자는 콘텐츠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같은 이유로 <놀면 뭐 하니>, <런닝맨>, <아는 형님> 등 연예인 중심의 예능 버라이어티 스타일 프로그램들은 이전만 한 화제성을 끌지 못하고 있다. 대신 유재석의 <핑계고>,  성시경의 <먹을 텐데> 등 연예인의 가장 리얼한 모습을 노출하는 콘텐츠들이 대중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특별한 기획과 콘셉트 없이 일상에서 수다 떨고 밥 먹는 가장 일상적인 모습에 대중이 편안함과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이영지의 <차린 건 없지만>을 비롯해 최근 유튜브 '술방' 콘텐츠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 역시 술을 통해 출연자의 가장 솔직한 모습을 끄집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기안84의 연예대상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지금 대중은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한 ‘리얼리티’를 원한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SNS의 허상 속 이미지들에 둘러싸여 매일매일 상대적 박탈감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큰 위로와 공감이 되는 것이 ‘리얼리티’이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너무 힘이 들 때 위로가 되는 것은 대단한 조언이나 기적의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너의 모습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너 T야?"라는 유행어가 보여주듯이 지금 우리는 힘든 만큼 공감에 매우 예민하고 또 그만큼 공감을 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공감을 잘하는 F들의 해결책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냥 잘 들어주는 것이다. 최근 인기 예능 콘텐츠들 역시 초현실적인 비주얼, 거대한 미션, 혹은 국뽕 같은 판타지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굳이 큰 감동이나 교훈을 남기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출연자의 가장 솔직하고 사적인, 대단하지 않은 일상의 작은 단면들을 열심히 공개할 뿐이다. 우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이 시대 예능 콘텐츠의 핵심이고 예능 콘텐츠가 대중을 위로하고 공감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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