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하고 런던>을 시작한 이유
나는 정말로 이 일을 사랑하는가?
나는 10년 동안 몸담았던 회사에서 잠시 벗어나기로 결심하고, 런던으로 떠났다. ‘1년간의 글로벌 트레이닝’이라는 명분으로 떠난 것이었지만, 사실 그것은 나 자신에게 주는 안식년이기도 했다. 마흔을 앞둔 시점에서, 그동안의 나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하고자 했다. 이 시간 동안, 나는 새로운 시각과 경험을 통해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잃어버린 열정을 찾고 싶었다.
K-pop, 한류, 오디션, 서바이벌, 콘텐츠, 아티스트… 지난 10년 동안 내가 속했던 세계는 이 단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토록 열망했던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일을 정말 사랑하는지, 아니 최소한 좋아하기는 하는지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렸다. 케이팝의 폭발적인 인기와 한류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그리고 정신없이 변화하는 트렌드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일에만 몰두해 왔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무엇에 열정을 느끼는지 생각할 틈이 없었다. 이렇게 달려온 시간이 끝나고 잠시 멈춰 섰을 때, 나는 나 자신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로 이 일을 사랑하는가? 나는 여전히 이 일에 열정을 느끼는가? 그러나 그런 질문에 명확하게 답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내가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나 자신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PD라는 직업에 기댈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PD라는 직업을 동경해 왔다. 세상을 향해 내 아이디어를 보여주고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크리에이티브한 예술가이면서도 사회적 명예가 높은 지식인의 느낌이 동시에 있어서, 내가 PD가 되면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말을 보다 멋지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고 방송국 PD의 의미가 점점 모호해지면서 직업에 대한 내 확신은 줄어들었다.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의 등장으로 인해, PD라는 직업의 명예와 가치도 예전만큼 강력하지 않은 데다가 오히려 크리에이티브한 예술가의 이미지는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들에게 더 많이 귀속되고 있으며, 지식인의 명예도 서서히 감소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내가 무엇을 위해 남아 있는지, 여전히 PD로서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혹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했다. PD라는 직업에 기댈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선 내가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다.
PD가 되고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내 말이 맞다고, 내 말을 들어달라고, 내 말에 박수 쳐달라고 외쳐왔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보다는 내 말이 사랑받고 인정받는 것이 더 중요했던 시간이었다. 돌아보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내 말을 들어달라고 요구했던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게다가 과거에는 방송국이라는 힘이 세상을 움직였고 그래서 내 말이 상대적으로 쉽게 주목받았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더 이상 내 말에 귀 기울여 주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젠 내가 더 명확하고 분명한 방식으로 내 말을 전달해야 한다. 세상에 말을 걸고 싶다면, 내 진정한 목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내가 런던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그 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그래서 런던에서 나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런던에서 경험한 것들을 솔직하게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런던의 카페, 맛집, 우리 부부가 다닌 여행 코스, 데이트 코스 등 새롭게 알게 된 정보와 경험을 나누는 것이 현재 내 생활의 일부이자 나의 가장 솔직한 이야기이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10년간의 노동으로 방전되어 버린 나는 내 생활 이야기 외에는 어떠한 것도 말할 여력이 없다. 이것이 내가 런던에서 <휴직하고 런던>을 쓰기 시작한 이유다.
그동안은 PD로서 무언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것을 창조하려고 했다면, 지금은 그냥 내 솔직한 경험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아티스트의 리얼리티는 꺼내려고 애를 썼지만 정작 내 이야기는 솔직하게 말한 적이 없어서 어색하고 불편한데, 내가 진정하고 싶은 말을 찾기 위해선 이 방법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 자신을 재발견하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을 찾기를 바란다. 그 과정에서 내 말이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나에게 작은 위안을 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내 글이 런던에 관한 이야기로만 채워지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내가 다른 이야기들도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경험을 통해 나를 더 채워 나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