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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 산 Aug 25. 2024

로路의 이해

문자를 읽다.

걷는 것을 좋아한다. 아니 삶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걸으면 어디서 비롯됐는지 모를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되면서 가벼워지기도 한다. 가벼워진 머릿속에서는 좋은 아이디어도 곧잘 떠오른다. 잠이 잘 오고, 화장실도 잘 갈 수 있고, 허리에도 좋다. 무엇보다 왜인진 모르겠지만 걷고 나면 부자가 된 것 같다.


길 로路자는 발을 의미하는 족足+각各 로 구성되어 있다. 족足이 의미 부분이며 各이 소리를 담당하여 만들어진 형성자이다. 상용자해에서는 신이 내려오는 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나는 길 로자를 볼 때마다 다리 족足자로 만들어진 것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길은 사람이 다니는 길 외에도, 차나 기차, 비행기가 다니는 길도 있다. 그 길을 만드는 것은 개인이라기보다는 국가가 주도하는 거대한 프로젝트에 가깝다. 한자는 현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에 이런 생각은 맞지 않지만, 인간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길을 만들었다. 기원전부터 마차와 수레가 다니는 길을 만들었으며, 피라미드도 나무에 무거운 돌을 얹어서 굴려 운반하기도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길은 문명을 부흥시키기도 파괴하기도 했다.


路자를 다시 들여다본다. 우리에게는 저마다 가야 할 길이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에 유명한 시, 가지 않은 길처럼The Rord Not Taken, 저마다 가는 길은 다르지만 방향을 선택하고 간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거기에 路자가 말하는 것과 같이 내 두 다리로, 내 몸으로, 내 존재로 가야 하는 것이 길이라는 통찰이 걸을 때마다 느끼는 명료하고 단순해지는 의식을 느낄 때마다 새삼스럽게 와닿는다.


때론 어디로 갈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 하고, 왜 가야 하고, 어떻게 가야 하고를 떠나, 내 몸으로 걷고 있다는 그 사실만이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두 발로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문명을 개척하는 곧고, 넓은 길은 아니지만, 삶 한가운데에서 기꺼이 감당하는 내 것이라는

점이 나를 부자처럼 느끼게 해주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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