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시간들을 위하여, 쿵푸 허슬

주성치의 영화

by 검은 산

세상에는 두 가지의 부류의 사람이 있다. 주성치 영화를 본 사람과 보지 않은 사람. 주성치의 영화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그의 영화를 본 사람은 주성치 영화가 가진 독특한 매력에서 쉽게 벗어날 수가 없다. 그의 영화는 코믹이 주류지만, 단순히 웃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지금 세상에는 흔하지 않은 약자에 대한 연민이 있다.


주성치 최고의 영화가 뭐냐고 묻는다면, 답은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서유기 <선린기연>과 <월광보합>을 꼽을 것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놓아주는 절절함이 원숭이 분장을 하고도 배어 나왔다면 말 다한 것이 아닌가? 많은 대사들이 패러디와 오마쥬이지만 어떻게 저 장면에 저런 대사를 넣었을까? 하는 탄성과 함께, 어이없어 웃기면서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런 '웃픔'을 그의 영화는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무협영화와 무협지에 한 세월을 바쳤던 많은 사람들에게는 <쿵후 허슬>이야말로 꿈의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기본적으로는 코미디 장르이지만 도입부에는 도끼가 등장하는, 생각보다 잔인한 액션 시퀀스가 펼쳐진다. 그 짧은 도입부를 통해 잔인한 힘의 논리만이 작동하고, 선과 악이 극명하게 구별되는 세계관이 순식간에 구축되지만, 삼류 양아치 아성이 등장하면, 순식간에 영화의 분위기는 다시 익숙한 주성치의 내러티브로 바뀐다. 가진 것은 없지만, 부와 명예, 권력과 힘을 가지고 싶어 길거리와 어둠의 세계 언저리를 헤매고 다니면서도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한 발을 빼는 아성은 그야말로 구제불능 찌질이다.


이 영화의 주된 무대가 되는 돼지촌에는 그런 아성이 혐오하는 사람들이 한가득 모여 산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마치 자신 같은 이들을 아성은 자신을 우습게 보듯, 우습게 보고 덤벼들다가 호되게 당하고 도망친다. 도끼파는 생각보다 강한 저항에 부딪히자, 암살자를 보내, 실력자들을 제거하지만, 이 돼지촌의 주인인 소용녀와 양과가 등장한다! 신조협려의 주인공 소용녀와 양과의 이름을 가진 인물들의 충격적인 비주얼 앞에서 어렸을 때 신조협려의 주인공을 상상하며 느꼈던 아련함이 박살나버렸지만, 저 멀리 떠나버린 그 둘을 여기서 다시 만나니 너무 반갑고 기쁘기까지 했다. 화운사신의 등장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지만, 결국 선을 택한 아성은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하지만 이는 모두 영웅이 다시 태어나기 위한 과정이었다.


클라이맥스는 돼지촌에서 벌어진다. 두꺼비처럼 바닥에 엎드려 합마공을 시전 하는 화운사신을 상대로 아성은 번데기에서 나온 한 마리 나비처럼 날아 올라 여래신장을 시전 한다. 그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화운사신은 굴복하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방심한 듯 등을 보인 아성에게 쏘아진 암기는 악의 그 자체였지만, 그 암기는 아성 손에서는 한 송이 연꽃이 된다. 사람의 목숨을 앗아버리는 무기는 그렇게 한 송이 연꽃이 되어 하늘을 나르고, 폭력이 아닌, 용서의 손을 내미는 아성에게 화운사신은 진정으로 무릎을 꿇게 된다.


이 영화에는 새로울 것이 없다. 켜켜이 쌓인 시간 동안 만들어진 이야기들이 한 장면, 한 장면으로 응축되어 등장하고 사라진다. 마치 '시네마 천국'에서 어른이 된 토토가 알프레드가 남겨둔 유산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느낌과도 같다. 그의 영화는 어른이 되기 전, 의義와 협俠을 목숨처럼 여기며 천하를 주유하는 영웅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순간들을 떠오르게 한다. 여전히 그 시간들이 그립지만, 과거를 재해석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 주성치처럼, 이제는 다른 사람이 만든 이야기에만 울고 웃는 것이 아니라, 나의 울고 웃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