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계 중소기업 VS K중소기업
2년이 지나도 연봉은 바뀔 생각이 없었고,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오직 말로 하는 칭찬 뿐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직장에 소속되어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보수'는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이자 동기로 작용한다. 그런데 보수가 오르질 않았다. 면접때 들었던 대표이사의 말에 의심이 생기기 시작하고, 못된 생각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뭐지? 내가 열심히 일해야 하는 이유가?
연차가 쌓이면서 대표의 말은 입에 발린 허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 그렇게 느꼈고, 필자보다 오래 일한 직원들의 증언이 뒷받침할 증명이 되어 주었다. 그들은 대표이사의 말이 사실인지 궁금해하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표는 잡은 고기한테는 물 안 주는 사람이야.'
즉 이미 자신의 직원이 되어, 자신이 원하고 시키는대로 일을 하고 있으니 챙겨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이 얘기를 들었을 때에는 설마 했고, 점점 그 말이 사실임을 느끼게 되었을 때는 어이가 없었다. 못된 생각은 점차 몸집이 커지고 필자의 머릿속에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필자의 연봉을 12개월로 나누면 월 200만원이었다. 그렇다면 필자가 할 일은 200만원을 받았을 때 부끄럽지 않을 정도이면 되는 것이었다. 회사가 능력에 대한 평가는 하고 있으나 보상을 하지 않는데 몸과 마음을 다해 일을 할 필요가 어디 있을까.
3년차가 되었을 때 겨우 월급 10만원을 올려 받았다. 그것도 필자가 하는 일에 비해 급여가 적다는 사실을 인정한 상사가 대표이사를 끈질기게 설득해 받아낸 금액이었다. 그나마 알아주는 상사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대표이사는 3년차가 되도록 입을 닫고 있던 '일본 진출 계획'에 대한 언급을 하기 시작했다. 준비하고 있으며, 곧 이루어질 것이라는 얘기였다. 필자는 그 말을 믿었다. 그리고 다음 희망을 품에 안았다. 이제 진짜 필자가 제대로 실력발휘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라고. 그때까지만 해도 가슴 한 구석에 대표를 믿는 마음이 남아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필자는 지사를 벗어나 본사로 투입되었다. 지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30분 거리였는데, 본사는 1시간 30분을 들여야 했다. 그나마 차로 이동하면 50분 거리라, 필자는 출퇴근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기 위해 작은 경차 한 대를 구입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시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분명히 거론되었던 일본 진출에 대한 얘기는 본사 출퇴근 6개월이 지나도 눈에 보일 기미가 없었다. 그래도 꿋꿋히 기다렸다.
일은 지사의 3배 이상으로 많아졌다. 지사에서는 정시퇴근만큼은 지켜졌는데, 본사로 이동하고 나서는 퇴근 시간이 기본 8시를 넘겼다. 월급은 그대로고, 들이는 시간과 노력만 훨씬 많아졌다. 따지자면 시급은 더 내려간 것이나 다름 없었다. 출퇴근에만 들이는 기름값은 어떻고.
필자는 기다림에 지쳐갔다. 회사를 위해 존재하는 기계, 아니면 그저 일을 해주는 노예에 지나지 않는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나는 날이 잦아졌다. 직원을 깔아 뭉개는 상사들의 태도도 필자의 화를 돋우는 데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어떻게 도망치는 것이 가장 이익일까를 생각하기 시작한 필자를 읽어낸 것은 10만원이라도 올려 주라 대표를 설득했던 상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상사가 직원을 하대하는 사내문화를 가장 신명나게 활용하는 상무이사였다.)
그는 싫든 좋든 할 일은 깔끔하고 똑부러지게 처리하는 필자의 업무 스타일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계속 일을 시키고 싶어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능력에 걸맞는 보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필자를 몇 번이나 자신의 방에 불러 '네 승진과 연봉 인상에 대해 강하게 어필 중'이라는 점을 피력했다. 자신을 믿고 기다리라는 말도 아끼지 않았다.
그 말에 거짓은 없어 보였다. 실제로 어필하고 있기도 했다. 받아들이냐 받아들이지 않느냐가 순전히 대표이사에게 달려있다는 점이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