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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데드 Oct 26. 2023

여긴 어떻게 왔어요?

The Backrooms [STAGE 1]

 어느 간 밤에 인척이 스치는 느낌이 들어 루시는 화들짝 놀랐다. 그가 본 세상은 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는 몸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감각을 느꼈다. 혹시 눈이 멀어서 그랬나 눈을 비볐지만 그래도 공허한 세상은 티 하나 없이 똑같았다. 적막과 침묵, 그 사이에 다른 적막.

루시가 어둠 속에서 몸을 뒤척이자 누군가 근처에 서 있었다. 그 사람은 자신과 키와 얼추 비슷해 보이는 사내일 것이다. 입이 있을만한 위치에서 헛기침이 나왔으므로 여성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지레짐작 남자로 예상하는 것도 이상하다. 이곳으로 오자마자 그 역시 같은 시각에 이곳으로 도착했던 모양이다.

둠 속에서 몸을 뒤척이자 누군가가 근처에 서 있었다. 키가 비슷하지 않을까?


"저기요. 앞에 뭐가 보이세요?"

"뭐가 보이냐고? 그걸 질문이라고. 당연히 칠흑이지."


그렇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방은 온통 검은 사각형 형태의 복도였고, 우린 마치 어딘가에 갇힌 것 같았다. 누가 뒤로 와서 복면을 덮어씌운 기억은 없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이상한 곳까지 왔을까? 이 사람에게 물어봐도 모를 것 같아서 어떻게 왔냐는 질문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도 여기가 처음일 거야, 아마.

앞을 바라보았을 땐 개방된 공간에서 옅은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복도 같은 밀실인 이곳에서 정말이지 걷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퇴보는 가능했다. 그만한 공간은 있었으니.  


"어라, 저 빛이 보이는 정도면 '보인다'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러게. 아주 잘 보여. 검은색, 검은색이 아주 선명하게 보이네."

"아니, 그 빛 말이에요."

"빛?"

"네. 저기 은은하게 보이잖아요."

"으응-. 자세히 보니 그렇네."


시종일관 그는 불편한 기색을 내며 반말을 해댔다. 언제 봤다고. 안 그래도 불편한 장소에 있는데 재수에 옴이라도 붙었나. 웬 괴한이랑 동행하는 이 괴상한 운명은 대체 누구의 것인가. 뒤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빛이 있는 곳의 반대는 그야말로 처음에 발을 디뎠던 암흑 그 자체니까. 그도 저길 가고 싶진 않을 거다. 좋다, 일단 저기로 가야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덩이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예전보다 밝아졌다. 그런데 아무리 걸어도, 걸어도 가까워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종아리 근육을 많이 쓸수록 오히려 더 멀어지는 것 같았다. 습, 로프라도 걸어야 하나. 대체 이 장소는 무엇이고 이리 무서운 걸까? 저 구덩이를 건너야만 탈출할 수 있는 걸까? 온갖 잡생각으로 인해 공포감이 잦아들었다.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뒷장딴지에 한껏 핏대를 세운 뜨거운 발구름은 빨라졌다. 땀에 미끄러지다 못해 기어이 쓰러진 상태에서 역류구토까지 이어졌다. 검은 백 룸의 공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시큼하고 씁쓸 비릿한 구토향이 목에서부터 울대, 식도 앞까지 올라왔다. 찔끔 짠 눈물이 앞을 가리고 역한 냄새에 어지러움을 가눌 수 없게 되자 온 세상이 핑핑 도는 것 같았다. 제길, 제길.

세상이 왜 기울지? 어어...


쿵.

 

"이봐, 이봐! 정신 차려! 야! 야! 나는 너 이름도 모르는데...!"


그 사내는 죽기 살기로 나를 흔들어 깨웠다고 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네가 없으면 내가 죽을 것 같다는 둥, 혼자서 어떻게 여길 나가냐는 둥. 그 사람은 꽤나 귀여운 구석이 있다.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갸웃거렸다. 웃긴 사람을 볼 때마다 하는 작은 습관이었다. 당신, 제법 귀엽다고?

우리는 뛰지 않고 천천히 걸었다. 그렇다 해도 성과는 없었다. 지쳐가는 마당에 식은땀이 온몸이 나기 시작했다.


"이것 봐. 이 양반아. 뭣하러 계속 가냐, 좀 쉬어라."


그도 지치기 시작하자 나도 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검은 벽에 등을 기대었다. 주르륵 앉아 숨을 고르면서 구덩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쉿 쉿 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그림의 떡이겠지. 당신도, 나도. 구덩이와 우리가 쉬는 처음부터 뛰었던 구간과의 거리는 불과 30보 채 되지 않았다. 나는 서로 빛을 의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소정의 안도감을 느꼈다.


"이봐, 자네, 어디서 왔어?"

"전 채드예요.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고요."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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