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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Oct 01. 2023

고정된 시간

그때 그 골목 

궁금했다. 노인의 시간은 어떤 속도로 지나가는지 말이다. 가끔 골목길을 오가다 보면 의자나 대문 앞에 앉아 멀거니 허공을 바라보는 노인을 만날 때가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곳저곳을 서성거리는 내 시간과 같은 크기의 시간인지. 그도 아니면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시간이 지나가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예산군청이 있는 사직동 마을에 사는 할머니를 만나러 갔다. 사직동은 군청, 경찰서 등의 기관들과 예산농업학교가 있던 마을이다. 공무원과 교사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그에 비해 주민들은 먹고살기가 어려웠다. 농지가 없으니 농사를 지어먹고살 수 없어 품을 팔아 살았다. 1980년대 이후부터 작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예산농업학교는 1993년 대회리로 이전한 뒤 그 자리에는 462세대의 아파트가 건설되었다. 언덕만 있던 곳에 차츰 주택들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직동으로 시집온 할머니는 올해 아흔한 살이다. 대문을 두드렸다. 조용하다. 길 건너에서 나를 보고 있던 다른 할머니가 부른다. 대문 위에 쇳대를 꺼내라고 손짓을 한다. 손을 뻗어 아무리 더듬어봐도 할머니가 말한 쇳대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눈을 돌려 할머니를 보며 멋쩍은 웃음을 보이니 할머니가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짓는다. 다시 한번 손을 뻗어 더듬는다. ㄷ자로 굽은 알루미늄 부속품이다. 대문과 대문 틈 사이에 걸어 쇳대로 사용하고 있다. 


건너편에 앉은 할머니는 내가 만나려고 한 할머니와 동갑내기다. 할머니에게 쇳대를 들어 보이며 자랑스럽게 웃는다. 숨겨진 보물을 찾은 기분이다. 막상 집으로 들어가니 아무도 없다. 맥이 빠진다. 다시 쇳대를 건다. 대문 앞에 차가 한 대 정차한다. 한 할머니가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서 내린다. 내가 만나려 했던 할머니다.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 했다. 오전 8시 55분이다. 대문은 어떻게 열었냐고 했다. 아직도 길 건너에 앉아 있는 할머니를 가리켰다. 도로를 가운데 두고 두 할머니가 손을 흔든다.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집으로 걸어간다. 보조를 맞추며 옆을 따라 걷는다. 똥을 누운 지 오래되어 병원에서 약을 지어왔다고 한다. 뼈에 살가죽이 겨우 붙어 있는 할머니는 묵은 대변이 무거운지 힘겹게 말을 이어간다. 


할머니 집은 골목길 초입에 있다. 대문 앞에는 나무 전봇대가 있다. 전봇대가 도입되던 초기에 만들어졌으니 족히 60년은 넘었을 것이다. 할머니가 거주하는 집은 지은 지 40년 된 흙집이다. 다만 툇마루를 덧내어 새시로 매서운 바람을 막아내고, 재래식 부엌을 입식으로 바꾸었을 뿐이다. 


할머니가 방에 들어서며 제일 먼저 할 일은 뒤란으로 난 방문을 여는 일이었다. 방 창문 하나 정도 크기다. 창문인지 방문인지 잘 잘 모르겠다. 창호지가 곱게 발라진 나무 창살은 고즈넉한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할머니 혼자 사용하는 방에는 침대와 텔레비전, 장롱이 전부다. 방바닥에는 휴대용 가스버너와 주전자가 있다. 할머니는 커피를 한 잔 마시라며 부탄가스를 넣고 스위치를 올린다. 할머니가 건네는 커피를 마시며 창문 밖을 보니 텃밭에 심어져 있는 대파가 눈에 들어온다. 우측 창밖으로는 생강이 심어져 있다. 아직 이런저런 먹을거리를 심으시냐고 물었다. 누가 줘서 심은 거지 지금은 아무것도 못 한다고 한다. 다른 이들은 배추 심었을 텐데, 하며 말을 어물거린다. 


침대에 걸터앉은 할머니는 옆에 앉으라고 한다. 할머니 손에 잡힌 겹겹의 주름을 묵묵하게 본다. 오래된 나무껍질 같다. 바짝 말라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이 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메마른 풍경 같은 손이다. 잠시 침묵이 지나간다. 어디에서 시집오셨느냐고 묻는다. 삽교라고 했다. 몇 살에 오셨냐고 했다. 오래전이라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죽은 남편 이름도 생각나지 않고 죽도록 고생한 것만 생각난다고 한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냐고 묻는다. 전부 다 어려웠단다. 자식들 공부 못 시킨 것도, 배우지 못한 당신 자신도, 품 팔아 겨우겨우 먹고살았던 일도, 쓰러져가는 집 한 채 장만한 것이 전부라며 눈을 감는다. 무릎에 펼쳐놓은 노트 위에 나는 겨우 할머니 이름만 적은 채 볼펜만 만지작거린다. 


마을회관에 가기 위해서는 할머니 걸음으로 30분 정도는 걸릴 것 같다. 어렵지 않냐고 했더니 그마저도 하지 않으면 할 일이 없다고 한다. 매일 가는 것도 아니니 괜찮다고 한다. 평소에는 무엇을 하며 지내냐고 묻는다.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한다. 누웠다 일어났다, 텔레비전도 이제는 시끄럽단다. 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뒤란으로 난 창밖을 바라본다.    


할머니는 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먹어야겠다고 한다. 약을 먹고 난 할머니는 힘겹게 다시 침대에 걸터앉아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는 침대에 누워야겠다고 한다. 나는 얼른 침대에서 일어난다. 쉬시라고 하며 다음에 다시 뵙자는 말을 남기고 문을 닫는다. 


밖으로 나오니 습한 바람이 꾸역꾸역 밀려온다. 손수건으로 목덜미로 흐르는 땀을 닦아낸다. 할머니 집이 있는 골목길에 들어선다. 햇빛만 내리쬘 뿐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인다. 굳게 닫힌 대문, 한가롭게 널려 있는 빨래, 전선에 앉아 있는 참새들만이 고요하게 내려앉아 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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